전쟁일기Ⅱ.戰爭日記Ⅱ(삿 20.24-48)

20211212(묵상)

  

 

 

전쟁일기(戰爭日記)

Jdgs. 20.24-48

 

    본문 관찰

 

    전쟁: 이스라엘 연합군의 패배2(24-28)

    딜레마에 빠진 베냐민 지파(29-35)

    연합군의 승리 vs 베냐민 지파의 몰락(36-48)

  

 

성패(成敗), 그 공존의 그늘

 

본문에는 서로 상이한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성공 성공 실패의 그림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실패 실패 성공이라는 그림이다. 전자는 베냐민의 일기이고, 후자는 이스라엘의 일기다. 그러나 이 전쟁일기(戰爭日記)라는 그림이 그려지기까지 이들 모두가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실로 엄청났다. 본문은 두 번째 전투가 가져다 준 성공과 실패,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실패와 성공의 교차를 보여주고 있다.

실패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반대로 행동한다. 말씀대로 살았는데(18,23) 그 결과가 실패이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26절이 귀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리고 있는 그림 앞에 오랫동안 조용히 서 있는 것이다: “나도 실패의 그림을 붙들고, 그럼에도 다시 그것을 26절처럼 그려가려고 하고 있는가?” 내 인생의 그림이 천국 벽면에 이처럼 걸리기까지 실패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는 그런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베냐민은 이 그림을 보고,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이 다 성공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실패라는 그림에서도 하나님을 보고, 자신들을 돌아보는 일에 승리하고 있다(26-28). 두 번의 성공이 세 번의 성공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두 번의 실패가 세 번의 실패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 이 두 그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바로 이 점을 베냐민은 놓치고 있고, 이스라엘은 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본문의 일기는 이렇게 읽혀진다.

   

 

여호와께서 치시매”(35a)

 

베냐민 지파의 파멸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35). 이스라엘은 마침내 기브아 온 성읍을 칼날로 쳤다(37). 이 전쟁에서 베냐민 지파는 칼 빼는 용사가 50,100명이나 죽는다(35,46). 민수기에서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26.2b)로 계수된 베냐민 지파의 수는 제2차 인구조사 시 45,600명이었다(26.38-41). 여호수아와 사사기를 지나오면서 어느 정도 인구의 증가가 있었으나 한 지파가 단지 600명만이 남았다(47)는 사실, 그리고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온 성읍은 이스라엘에 의해 다 불살라졌다(48)는 것은 사실상 한 지파의 멸문(滅門)을 의미한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총회는 베냐민 지파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20.13a) 그러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13b) 오히려 이스라엘과 전쟁을 불사하는 행동을 하고 만다.

베냐민은 회개의 기회는 이렇게 취급해 버렸다. 그리고 무지하게도 자멸(自滅)의 길을 선택한다. “하나님께나아갔던 이스라엘(18,23,26)의 모습은 베냐민에게서 찾을 수 없다. 이처럼 불량배들 몇 사람들의 언행을 동조할 정도로 베냐민 지파의 신앙은 추락해 있었다. 이런 베냐민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성도)끼리 서로 전쟁이나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전쟁은 가나안의 남은 족속과 해야 할 사명이다. 그런데 가나안 교회 안에 죄의 문제를 놓고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성도들끼리 서로 싸우는 꼴이다. 결과적으로 피아(彼我)를 식별하지 못하는 베냐민의 몰락은 충격이다. 비록 성공의 연속성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축복이 아니다.

   

 

너희가 만일 하면

 

모세의 경고가 눈에 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8.20) 그렇다면 베냐민의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의 요청(명령, 말씀)을 거부한 행위가 아닌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해서 -이 일은 광야에서 있었다- 받은 축복(33.12)의 지파가 아닌가.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와 살면서 정작 이 축복을 잃어버리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사사기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것 역시 심는 대로 거둔 것이다: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1.21) 이스라엘의 미래를 향한 모세의 유언(23.7-16)이 죽어 있는 활자가 아니라 변함없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그래서 사사기 20장은 그냥 삼국지 읽는 기분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쉽고 평범하게 읽을 일기가 아니다는 뜻이다.

베냐민처럼 사소한 것에 목숨 걸 이유가 없다. 자존심 대결도 아니다. 물매를 돌리는 700명을 더 믿고(16) -멸해야 할 대상이 어떻게 된 게 오히려 합세하여 이스라엘을 대항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께 시위할 때가 아니다. 베냐민에게 필요한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 마침내 큰 것으로 바뀌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돌아오기 전에 결단하는 회개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아이성을 정복할 때 매우 조그마한 범죄가 큰 실패를 낳았었다. 그들이 사소한 범죄를 과감하게 제거하자 아이성은 진짜 조그마한 성이 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아주 작을지라도 죄와의 결별은 이래서 중요하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b)

   

 

부스러기 묵상

 

베냐민과 이스라엘의 일기를 다시 읽는다.

일기장 검사를 하는 선생님의 마음으로 두 그룹의 일기를 평가해야 한다면 -주제 넘은 상상일까- 난 주저 없이 이렇게 할 참이다. 베냐민에게는 , 이게 일기라고 썼냐? 다시 써와! 먼저 회개하고 알아 들었냐?”,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참 수고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축제가 아니니 조용히 귀가할 것!”이라고 아마 썼을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은 연습이 불가능하다. 지우개로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없다. 인생에는 후진기어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책임 있게 살아야 하고, 후회할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다. 림몬 바위 틈에서 덕 달을 숨어 지내는 남은 베냐민 지파 600명의 모습(47), 저들은 거기서 무얼 생각하며 지냈을까?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편, 이것은 고난이 아니다. 주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아니다. 이런 것은 십자가라 말하지 않는다. 단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7) 우리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나의 불신앙과 죄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다. 그러니까 베냐민의 남은 600명이 넉 달이나 당하고 있는 일은 고난이 아니다. 나는 베냐민처럼 살아 놓고 그것 때문에 만난 시련을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깊이 돌아보아야 할 제목을 붙든다.

베냐민 지파, 이들 인생이 쓴 일기(日記)의 초라함과 부끄러움이 자꾸 내 마음을 때린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있는 인생보고서는 건강한가? 읽어도 읽어도 힘이 나고, 밝고 희망차게 쓰여지고 있는가? 다시금 하나님 말씀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 본다. 은혜는 하늘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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