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에는 신학이 있다(삿 21.25).

20211214b(묵상)

  

 

 

사사기에는 신학이 있다.

Jdgs. 21.25

 

    본문 관찰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가나안에도 영적 전쟁은 있다.

 

가나안에도 영적 전쟁은 있는가?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질문이다. 애굽이나 광야에 있을 때에 시련, 고통, 고난은 충분히 이해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 하나님이 죄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부르신 땅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애굽과 광야에서와 똑같이 동일한 싸움이 있다는 것인가?

   

 

바울신학

 

가나안 안에서도 전쟁은 있는가? 이 물음은 그리스도 안에서도 전쟁은 있는가?’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다. 가나안에 들어왔다는 것,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렇듯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어 버린 것은 아니다. 구원은 (A)받았고, (B)받아가고 있고, (C)받을 것이다(5.24).

사사기 교회는 분명한 A 안에 있으나 B에 있어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교회다. 마치 고린도교회와 유사하다. 사실 그것만큼 고통과 시련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B를 통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은 마치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사는 것과 같은 그런 삶이 아니다. 애굽과 같은 죄와 옛생활을 버리고 이제는 변하여 새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죄 많은 세상 속에 살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바울의 통곡이자 통찰이다. 바울에게서 힌트를 얻는다. 로마서 7장에 기술된 바울의 고백은 바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한 말이 아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한 능력의 사도다. 그는 지금 영적 가나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고백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1-25)

 

에베소서 610-17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역시 치열한 영적 전투에 임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렇듯 가나안은 더 이상 무풍지대(無風地帶)가 아니다. 이것이 사사기가 갖는 깊은 영적 교훈이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사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사사기는 우리네 신앙의 축소판이다. 죄의 넘어짐이 있고, 은혜로 다시 일어섬이 있다. 사사기의 무대는 애굽이 아니며, 광야가 아니다. 이미 약속의 땅 안에 들어왔고, 무수한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을 받아 누리던 길목이 바로 사사기의 무대다.

그곳에서도 동일한 싸움이 있다. 마치 예수를 믿었다고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지고, 그리하여 어떤 문제들로부터 차단된 진공상태(眞空狀態)거나 무균실(無菌室)이 아닌 경우와 같다. 모든 것이 잘 되는 만사형통일 것이다는 생각은 우리가 속고 있는 하나의 신화일 뿐이다.

이스라엘이 싸워서 이기고, 정복하는 것만큼이 그들이 누리는 복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심, 그리고 기도를 통해 치열한 영적 전투로부터 승리하는 것만큼이 우리가 누리는 복이다. 그러나 반대로 가나안에서도 실패하면 그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우리 역시 그렇다.

 

 

부스러기 묵상

 

성도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무엇으로 사는 것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악순환을 청산할 수 있는가를 사사기를 통해서 배웠다. 가나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스라엘의 형통과 축복이 보장되지 못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이 말씀 안에서 약속하신 크고 놀라운 은총이 다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영적 통찰이 사사기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맛보았던 우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 패역무도(悖逆無道)한 사사기에도 하나님은 계신다. 그분은 사사기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묵묵히 인내하시며, 인간이 뿌린 모든 죄의 씨앗들이 자람에 따라 더 소망 없어 보이는 이 사사기를 떠나시지 않는다. 잠깐씩 정신차리라는 뜻에서 채찍을 들어 자녀들을 교육시키시지만 그러나 아무리 불효(不孝)하는 사사기 교회라 할지라도 부자(父子)의 관계를 깨지 않으신다.

사람의 심령은 차갑게 식어 있지만 하나님의 심장은 뜨거운 사랑으로 얼어붙은 사사기를 녹여 가신다.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사사기를 은혜의 품에 보존하신다. 사사기는 2125절로 끝나지 않는다. 기록은 거기까지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사기 이후의 가나안과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여전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렇지만 사사기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표요, 하나의 경고다. 그날까지 하나님은 사사기처럼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끝까지 인생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게으르게 살아도 된다거나, 사사기 백성들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사사기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면 이겠는가? 사사기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지켜보면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해 본다. 어제도 역시 세상과 말씀이라는 이질적인 두 지평 사이에서 방황했으나 하나님은 변함없는 은혜로 날 품어주셨다. 사사기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될 수 없다.

사사기 앞에만 서면 나는 초라하지만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깨닫는다. 사사기를 이렇게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고, 일상의 생활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이다. 좀 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겠다. 정말 하나님이 나의 전부임을 인하여 벅차게 살아야겠다. 하나님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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