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봉헌 이야기[1](대하 5.1-14)

20201105(묵상)

   

 

 

성전봉헌 이야기[1]

2 Chr. 5.1-14

  

   본문 관찰

 

   성전건축 공사를 마치다(1).

   언약궤를 여호와의 성전 지성소에 들이다(2-10).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다(11-14).

   

 

영광이 가득한 하나님의 성전

 

   솔로몬의 건축: 20(8.1)

   성전건축 시작 422(3.2; 왕상6.1 참조)

   성전건축 완공 118(76개월, 왕상6.38)

 

마침내 성전건축 공사가 마무리된다(1a; 왕상6.1,38 참조).

이에 따라 성막시대를 마감하고 성전시대를 열기 위해 먼저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7)로 메어 들이는 일에 제사장들이 율법을 준행한다. 이렇게 되자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하게 임하신다(13b-14). 이제 성전봉헌을 위한 준비까지 이루어진 셈이다.

   

 

성전건축 공사를 마치다(1)

언약궤를 지성소로 메어 들이다(2-10)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1a)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본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7)

 

76개월이라는 성전건축의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먼저 솔로몬부터, 아니 이를 준비한 다윗으로부터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까지 모두가 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 헌신했다. 한편 건물로서의 성전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이 할 일은 얼추 끝났다. 이제 이어져야 할 것은 건물로서의 성전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 과연 이후로 무엇이 이어질 것이며, 거기에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인가.

레위인들이 여호와의 궤를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처소로 메어 들였다(2,4,7). 이는 앞서 다윗의 실패(삼하6.1-8)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규례대로 진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언약궤는 광야 40년은 물론 사사시대와 사울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왕정시대까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하심의 사인(sign)이다. 물론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언약궤가 성막의 지성소에서 성전의 지성소로 안치되는데 언약궤에는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시내산에서 받은 바 언약의 두 돌판이 들어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임재하시고,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지성소 두 그룹 사이에 좌정하사 말씀(임재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다스리시며 인도해 가시는 분이시다.

   

 

여호와께서 성전에 임재하시다(11-14)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13b)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14b)

 

마침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신다. 이는 포로기를 마치고 귀환한 역대기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임재하시는 때와 장소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또한 다시는 이 영광이 떠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무엇과고 바꿀 수 없는 큰 도전과 배움(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옛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성전의 영광을 잃어버렸지만 귀환한 새 이스라엘은 이런 일이 다시 있지 않아야 한다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닌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고, 예배하고, 순종하는 일의 중심이 성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과 얼마 전 다윗시대 때에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었다. 비록 그것이 부정적인 방식이기는 했으나 하나님께서 공적(公的)으로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신 것이 언약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었다. 정복시대를 거치면서 성막은 시야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고, 남은 것은 언약궤(법궤)였다는 점, 그리고 이것을 성막을 지나 이제 세워진 성전의 지성소에 메어 들이고 있다.

 

과연 모세시대의 성막처럼 여호와께서 성전에 임재하실 것인가. 그래야만 성막에서 성전으로의 이동이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러해야만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제사)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성전의 정통성이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님이 건축하라 명하신 일이 진정 언약대로 준행되어 성전이 건축되었는가에 대한 확증도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순간이다. 따라서 성전 지성소에 레위인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들였을 때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13b)하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14)하게 된 것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잘 순종한 것이고, 이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사 잘 했다!’ 하시는 것이어서다.

   

 

부스러기 묵상

 

   [에스겔] 포로기의 이스라엘이 받은 약속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10.18)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43.2)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43.4)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지라”(43.5, 44.4)

       [역대기] 포로 귀환한 이스라엘의 회상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5.14b)

 

역대기의 첫 독자들은 누구인가.

이는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대하36.22-23). 이들은 에스겔의 성전 예언을 알았고(10.18, 43.2,4,5, 44.4 참조), 70년 포로기를 마치고서 마침내 이 말씀대로 다시 고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됨을 놀랍고도 영광스럽게 경험한다. 이들에게 첫 성전인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고 성전봉헌이 준비되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14b)이라는 성전의 영광에 대해 역대기를 통해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새롭게 시작된 예루살렘 귀환과 그 이후에 삶에 대해 새로운 의미와 결단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성전의 영광을 볼 것인가, 아니면 성전이 무너지고 다시 포로가 되어 나라를 잃을 것인가.’

포로기를 마감하고 다시 고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잃어버린, 무너져버린 성전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선조들처럼 성전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각오 또한 강렬하게 밀려왔을 것이다. 또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어지고, 그 중심인 지성소에 언약궤가 들어오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기억(간증, 증언)은 저들의 심장을 뛰게 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와 같이 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빛을 드러내어야 하고, 그 빛을 세상에 비추게 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솔로몬의 성전 역시 단지 건물로서의 성전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의 의미도 같다. 성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고, 보여주고, 나타내는 사명을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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