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1]: 개혁의 깃발을 들다(대하 34.1-13)

20201216(묵상)

   

 

 

요시야[1]: 개혁의 깃발을 들다.

2 Chr. 34.1-13

  

    요시야(34.1-35.27, 31)

    ① 8(즉위 1, 34.1-2) - 다윗의 길로 걷기 시작하다.

    ② 16(즉위 8, 34.3a) -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③ 20(즉위 12, 34.3b-7) - 종교개혁

    ④ 26(즉위 18, 34.8-35.19)

       A. 성전 수리(34.8-13)

       B. 율법책 발견(34.14-33)

       C. 언약 갱신과 여호와께 복종(34.29-33)

       D. 유월절(35.1-19)

    ⑤ 39(즉위 31, 35.20-27) - 무깃도대첩에서 전사

 

 

      본문 관찰

 

      다윗의 하나님 앞에 서다(1-3a).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다(3b-7).

      성전을 수리하다(8-13).

  

종교개혁 프로젝트

 

조부 므낫세(12+52)와 부친 아몬(22+2)의 유다는 영적 암흑기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요시야가 이들의 뒤를 이어 단지 8세에 왕이 된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선대에 걸친 우상숭배의 죄악이 온 유다를 덮고 있었고, 거짓되고 악한 방백들과 타락한 지도자들에 의해 유다는 마치 온 몸이 죽을 병이 든 몸처럼 그야말로 만신창이(滿身瘡痍) 상태였다. 그래서 즉위 8년까지 숨고르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어 4년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끝에 드디어 <종교개혁 6년 프로젝트>의 깃발을 올리게 된다(). 이 여세를 몰아 요시야는그의 왕위 18년부터 계속해서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시작으로 유다의 방향을 발 빠르게 하나님 쪽으로 이동시킨다(A).

   

 

다윗의 하나님 앞에 서다(1-3a).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다(3b-7).

 

   ① 8(즉위 1, 34.1-2) - 다윗의 길로 걷기 시작하다.

   ② 16(즉위 8, 34.3a) -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③ 20(즉위 12, 34.3b-7) - 종교개혁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으니 뭐 하나 쉬운 게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흔적(호흡)이 드러나고 있는 이어지는 8년의 시간표()는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펼쳐가야 할 왕으로서의 청지기적 소명과 사명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을 듯싶다.

마침내 즉위 8년인 16세 때 요시야는 방향을 정한다. 이것은 조부 므낫세(33.1-20)52년 통치와 부친 아몬(33.21-25)2년 통치의 패역하고 악한 길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일종의 방향 전환이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우상숭배의 나라와 결별하면서 다윗의 하나님을 찾고 구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어린 나이의 요시야에게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다. 무릇 정치란 왕 홀로 하는 게 아니어서다. 그래서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는 지 8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3a)으면서 마침내 지난 우상숭배의 과거사와 결별하고 있는 요시야의 모습은 다시 유다를 희망으로 밝아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깃발을 들고 다시 4년 후, 왕위 12년이자 그의 나이 20세에 마침내 요시야는 다윗언약을 회복하는 일을 실행에 옮긴다(3b-7). 이것은 이어지는 즉위 18년인 그의 나이 26세가 요시야가 요시야 되어지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 해라고 볼 때, 그렇다면 이에 앞서 왕위 12년부터 시작되어 실행된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즉위 18년 이전에 마쳐졌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종교개혁이 6년 프로젝트였다는 뜻이 된다.

이를 위해 왕위 8년인 16세부터 종교개혁의 깃발을 든 왕위 12년인 20세까지, 그러니까 먼저 4년이라는 종교개혁 터닦기를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에서 영적 배수의 진을 친다. 개혁은 단지 구호가 아니고, 일회성(단발성) 이벤트가 아니고, 나라와 백성들을 정치적이고 종교적으로 장학하려는 세속적 정치공학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가 8세에 왕이 되어 16세에 비로소 하나님을 구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왕으로서의 초발심은 오직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요시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성전을 수리하다(8-13).

 

   ④ 26(즉위 18, 34.8-35.19)

     A. 성전 수리(34.8-13)

 

요시야의 통치 31년 가운데 18년이 되었을 때 일어난 일들이 하나 둘 소개된다(A). 소위 <6년 종교개혁 프로젝트>(통치 12-17, 나이 20-25)가 완수된 여세를 몰아 요시야는 다시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유다 회복의 방향으로 정하고서 움직인다. 놀랍다. 왕의 명령이 성전의 헌금을 관리하는 자들인 방백들(8) 대제사장 힐기야(9) 성전공사 감독자들(10a,12-13; 레위 사람들) 일꾼들(10b-11; 목수들, 건축하는 자들)로 이어지면서 성전을 수리하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마침내 왕 요시야로부터 성전을 수리하는 일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같은 마음으로 맡은 바 성전을 수리하는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부스러기 묵상

 

어떻게 보면 형식(하드웨어, 프레임)을 정비하는 일이다.

먼저 종교개혁이 그렇고(3b-7), 성전을 수리하는 일이 그렇다(8-13). 이렇게 하는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이 세우신 유다와 그 백성들이 거룩한 내용(본질)인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나라와 백성으로 다시 거듭나는 것을 위해서다.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된 이후 이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유다의 겉모습과 속내용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나님 앞에서 진행해 낸다. 그러면서 16세가 되고, 20세가 되고, 또한 26세가 되어 유다를 다시 다윗언약 위에 견고히 세워간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은혜와 예배로 채울 준비는 되었다. 마치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다. 이제 여기에 생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그래야 생령 곧 사람이 된다. 진흙덩어리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는 없다. 마찬가지다. 각종 우상들이 깨끗이 정리되어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이제 성전까지 수리되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다가 거룩해 지거나, 그 결과로 모두가 다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들이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형식)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거나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대신할 수 없다.

역시 왕 한 사람 바뀐 것이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진 것 뿐이다. 그런데 유다는 선대(므낫세 55, 아몬 2)와 그 분위기와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 사람의 법칙이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한 사람이 있을 때 그 시대와 공동체는 희망이다. 무엇보다 유다를 향한 이 희망이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는 사람으로부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다윗의 길로 걷는 한 사람 요시야로부터 그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하고 있음이 희망이다. 곧 열매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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