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람, 아합의 길을 걷다(대하 21.1-20).

20201127(묵상)

   

 

 

여호람, 아합의 길을 걷다.

2 Chr. 21.1-20

  

   본문 관찰

 

   여호람의 악행, 하나님의 은혜(1-7)

      배반1, 에돔과 립나(8-11)

   엘리야, 심판 예고(12-15)

      배반2, 블레셋과 아라비아(16-17)

      죽음(18-20)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유다 5대 여호람의 8년 통치다(5,20).

여호사밧은 장자 여호람에게 왕위를 주고, 다른 아들들에게는 충분한 선물을 주었다(3). 하지만 여호람은 왕권을 잡은 후 동생들을 다 죽이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의 길로 행한다(6). 분명 위기다. 과연 유다는 어찌 될 것인가. 반복되는 죄악, 한 번의 실패가 주는 교훈을 읽어낼 수 없는 영적 무지가 유다와 여로람을 서서히 무너지게 하고 있다. 그는 하루 아침에 죽지 않는다, 왕이 되어 8년을 지냈다면 그는 서서히,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무너지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생각하자만 참 무섭고 소름 넘치는 일이다.

 

 

여호람의 악행, 하나님의 은혜(1-7)

엘리야: 심판 예고(12-15)

죽음(18-20)

 

왕이 무엇이라고 잠재적 위협일 수 있다 싶은 동생들까지 죽이는 것일까. 유다의 왕이라는 자리가 이렇게 지켜지는 것이란 말인가. 이러고도 잘 된다거나, 잘 되기를 바란다면 이건 도적이다. 남왕국 유다이지만 북왕국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모습이다(6). 지금껏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럴 경우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다윗언약(삼하 7)을 기억한다(7):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7b) 그래서 꺼내신 하나님의 카드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하신 심판 예고다(12-15): “여호와가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창자가 빠져나오리라.”(14-15) 결국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시매 이 예언대로 2년 만에 그만 죽는다(18). 하나님의 심판이다.

   

 

배반(8-11,16-17): 에돔과 립나, 블레셋과 아라비아

 

가정은 풍지박살이다. 여호람은 예언대로 병사(病死)하고, 블레셋과 아라비아 연합군에 의해 막내 여호아하스만 남고 모든 아들(왕자)들은 죽는다(16-17). 이뿐 아니다. 에돔과 립나가 유다의 지배하애서 벗어난다(8-10a). 이유는 간단하다: “이는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10b)

그렇게 나라가 거덜이 나고 있음에도 하나님을 찾거나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술 더 뜬다: “또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으므로.”(11) 겉모양은 유다이지만 실상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다. 이건 반역이고, 패역이자,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다. 겨우 ‘8’(5,20) 통치를 위해 이러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부스러기 묵상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6b)

 

아버지 여호사밧은 왕으로서의 통치는 합격점이다.

하지만 그는 가정을 하나님의 율법대로 세우는 일에 실패한다. 북왕국의 악명 높은 오므리 왕조의 씨앗이 유다 예루살렘과 다윗의 혈통에 뿌려지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결국 아버지는 심었고, 아들은 거두는 셈이다. 짧은 8(5,20) 통치는 지금껏 쌓아온 유다의 역사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허물어 버리고 만다.

이러한 때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무시되고, 여호람의 마음밭에 심겨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의 말씀 씨앗을 사탄이 여호람의 마음에서 빼앗아 버렸다(8.12). 아버지 여호사밧에게 베풀어진 그러므로 그러나’(19.2-3)의 은혜처럼 여호람 또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았다면 왕권의 이어짐만으로서의 다윗언약이 아닌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와 죄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고 바라는 회개와 하나님 앞에서의 무릎 꿇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32세에 왕이 되어 8년을 다스리고 죽었다면 그의 나이 40에 맞은 장례식이다(20). 그럼에도 아쉽고 마음 졸이는 것은 여전히 오므리 왕조의 중심인 아합과 그의 딸이 왕후의 자리에서 막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유다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맛을 잃은 소금처럼 지금 유다는 다윗왕국의 찬란한 역사를 잊고 잃고 지워가는 중이다. 율법이 있고, 제사와 제사장이 있고, 선지자가 있고, 솔로몬 성전이 있고, 레위인들이 국가의 대소사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앞날은 어둡고 알 수 없는 수렁이다.

어느 때 나라가 안팎으로 흔들리고, 어느 때 유다가 주변 국가들로부터 신적(神的) 두려움을 느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지내는가를 유다는 지금 돌아보는 중이다. 선왕(선대)의 열매가 자동적으로 후대에서 영광과 축복의 씨앗으로 뿌려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선하고 다윗언약에 충실한 왕일지라도 이어지는 왕이 이를 유지하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로 추락한다. 동시에 아무리 악하고 무능한 왕일지라도 그를 이어 왕이 된 아들이 다시 유다를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의 반석 위에 세우면 하나님은 그와 그의 나라를 영화롭게 하신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8년을 뒤로하고 이제 유다가 해야 할 일은 다시 한 알의 씨앗을 심는 것 아니겠는가. 이 어찌 유다에게서만 요구되는 하나님의 식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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