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4]: 승리 뒤에 찾아온 위기(대하 20.1-37)

20201125-26(묵상)

   

 

 

여호사밧[4]: 승리 뒤에 찾아온 위기

2 Chr. 20.1-37

  

   본문 관찰

 

   기도(1-1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드고아대첩(14-30):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라.

   통치 평가(31-37): 그러나

   

 

드고아대첩

 

그러므로’(19.2b)만이었다면 여호사밧은 그것으로 끝이다.

아합처럼 전쟁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중에서도 그러나’(19.3)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서일까. 이후로 여호사밧은 헛발질하지 않고 위기와 고난의 파도 앞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구한다.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침입해 왔을 때 보여준 여호사밧의 모습이 그러하다.

 

 

기도(1-13)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금식하라.”(3)

   “우리가 이 성전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9b)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12b)

 

길르앗 라못에서 벌어진 아람전쟁, 여러모로 뼈아팠다. 하마터면 아합에게 끌려들어가 전사(戰死)할 뻔하였다. 하지만 이 일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아하시야의 그러므로를 하나님은 그러나로 잇게 해 주셔서다. 이렇게 되면 배은망덕(背恩忘德)하면 안 된다. 단순히 위기모면용으로 하나님을 이용해 먹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여호사밧은 유다를 내적(內的)으로 개혁하고 있는데 외적(外的)인 문제가 터진다. 바로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유다를 침입해 온 것이다. 여호사밧은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유다 전역에 금식하며 구국기도회로 모이기를 요청한다(3-4). 먼저 여호사밧은 아브라함(7)과 솔로몬의 성전언약(8-9; 6.28-31, 7.12-16 참조)에 호소한다: “우리가 이 성전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9b)

무릇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를 모으고, 전쟁에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며 싸울 준비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유다는 금식하며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드고아대첩(14-30)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라.”(15b)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17b)

   “노래하는 자들을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21)

 

기도 이후가 아름답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어져서다. 하지만 여호와의 신이 선지자(선견자)가 아닌 레위 사람(야하시엘)에게 임한 것이 좀 특별하다(14-17). 놀라운 것은 전쟁은 이미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할 것이 예고된다(17). 이에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백성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한다(18-19). 이런 전쟁도 있을까. 놀랍다.

한편 여호사밧은 이미 승리전쟁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는데 이를 의심 없이 실행에 옮긴다. 전쟁인데 보라! 전사들의 행렬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21)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의 행렬이다.

하나님은 이 찬송(노래)이 시작될 때 모압과 암몬 연합군과의 드고아전투(20)를 승리케 하신다(22-23). 전쟁이 승전가로부터 시작되고(21), 동시에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26). 뿐만 아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개선 행렬 또한 영광의 찬양이다(28). 하나님은 이 찬송처럼 유다에게 승리를 선물하신다. 나라 안으로는 종교개혁, 나라 밖으로는 전쟁의 승리, 그리고 이런 와중에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흐른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 중심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이게 유다다.

   

 

통치 평가(31-37): 25

 

   “여호와 보시시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32b-33a)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35)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32)

         ↔ 그러나

      A. 산당(33)

      B. 아하시야[북왕국]와 화친(교제, 35-37)

 

여호사밧은 35세에 왕위에 올라 25년을 통치한다(31).

북왕국 아합과 연합하여 아람전쟁에 나섰으나 하나님의 도우셔서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일 외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왕으로서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소임(청지기)을 감당했다(32). ‘그러나역대기는 두 가지 약점을 분명히 한다. 하나는 통치 초기에는 산당을 제거하였으나(17.6) 후에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33).

다른 하나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인 북왕국 아하시야와 화친(교제)을 맺고 서로 연합(합작)하여 배를 만들었으나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37)는 엘리에셀의 예언대로 배가 부서진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과 우상을 섬기는 것, 그리고 악한 자들과 함께 동업(연합)하여 일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아마도 죄와 악이 이런 것들을 통해 침노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으신 듯하다.

   

 

부스러기 묵상

 

1패전(敗戰)과 같은 아람전쟁(18.28-34)을 기억하라!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끝내 다시 만회할, 이어갈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 수도 있었다. 북왕국 아합은 이 전쟁에서 전사하고 끝이 났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도우셔서 패전이지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20장이다. 이처럼 실패를 교훈 삼아 그 이후를 바르게 이어가는 자는 복되다. 여호사밧은 실패 뒤에 찾아온 승리와 회복을 통해 역대기 독자들에게 소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듣고 따랐으며, 그 자신 역시 하나님의 율법과 이것이 유다를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자식으로 가득하게 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는 전쟁에 승리하리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 그래서 전쟁을 시작하는 행렬이 무장한 군인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대를 앞세운다. 말이 쉽지 이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놀랍기 그지없다.

소를 잃는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거나,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의미가 있다. 물론 소 잃지 않도록 먼저 단도리를 잘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여호사밧은 비록 잃을 땐 잃더라도 그 이후가 달랐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일까. 이 여호사밧도 초심을 잃고 마지막엔 밀려간다. 바로 산당이 다시 활개를 친 것이고, 북왕국 오므리 왕조과의 화친(동맹)을 슬그머니 다시 잇고 있는 것이 그렇다.

다른 사람 이야기니까 허점도 보이고, 가능하다면 100점이기를 바라는 면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원래 바둑판의 남의 수는 잘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걸음은 늘 실수와 실패와 못남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이를 모른다. 여호사밧 역시 길르앗 라못에서 치러진 아람전쟁에서 북왕국 아합처럼 전사(戰死)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버전이기도 하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게 우리들의 인생행로다. 그러니 더 겸손하게, 더 믿음으로,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정말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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