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전사, 다윗의 슬픈 승리( 삼하 17.24-18.33)

20221018-19(묵상)

  

 

 

압살롬의 전사, 다윗의 슬픈 승리

삼하 17.24-18.33

 

 

    본문 관찰

 

    [압살롬의 죽음](17.24-18.33)

    압살롬(17.24-26) - 다윗을 쫓아 요단을 건너다.

        다윗(17.27-29) - 암몬 족속이 다윗을 돕다.

    압살롬(18.1-18) 패전과 전사하다.

        다윗(18.19-33) 승전과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듣다.

  

 

압살롬의 죽음, 무엇을 위한 전쟁이고 승리인가.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너니라.

      이에 이스라엘 무리와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치니라.”(17.24b,26)

 

압살롬은 요단을 건너 다윗을 쫒는다.

하지만 다윗은 아히마하스와 요나단을 통해 전달된 후새의 전갈을 듣고 요난을 건너 피신한다(17.22). 모든 이스라엘은 압살롬의 편이고(17.24), 오히려 이방 압몬이 다윗을 돕는(17.27-29), 그야말로 과연 이 희대의 부자전쟁(父子戰爭)은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압살롬, 패전과 죽음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을 따르는 온 이스라엘 사이의 <에브라임 수풀전쟁>은 압살롬의 패배와 수 만명의 명분 없는 무고한 전사자들을 가져왔을 뿐이다(18.6-8). 이어 압살롬은 다윗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요압의 창이 그의 심장을 찌름으로서 전사하고 만다(18.9-15). 놀라운 것은 그의 뛰어난 외모를 상징하던 머리털(14.25)이 그의 죽음을 가져오는 촉매가 되었다는 점이다(18.9-10,14-15). 하나님 없는 인간으로서의 탁월함이 압살롬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심판 집행의 도구가 된 점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비록 범죄했을지라도 다윗왕국은 하나님이 영원토록 꺼지지 않게 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사무엘하 7).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나라를 없이하겠다 하였으니 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다윗은 죄의 값을 치르는 하나님의 심판 집행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언약까지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압살롬의 나라를 세우려는 또 다른 죄가 승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윗, 승전과 슬픔

 

생명을 건 전쟁에서 요압과, 요압의 동생 아비새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각각 군사 1/3씩을 맡기며 전선을 정비하고 전쟁을 준비한다(18.1-5). 다윗의 군사들은 전쟁에 직접 참여가겠다는 다윗을 저지하자 그는 성읍에 남고,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에브라임 수풀에서 마침내 전투를 벌인다(18.6).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렸고,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요압은 창으로 그의 심장을 찔러 죽임으로서 전쟁은 끝이 난다(18.6-10,14-15).

하지만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전하는 전쟁의 승전보(18.28-30), 그러나 승리하였음에도 그 승리의 소식을 즐겁게 전하지 못한다. 이것이 이 전쟁이 갖는 무의미성이자 하나님의 심판 집행이라는 살떨림이다. 승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한편 정작 다윗이 기다리며 듣고 싶은 소식은 압살롬의 생사였다. 하지만 다윗이 듣게 되는 소식은 죽음의 소식이다. 앞서 밧세바가 넣은 첫 번째 아들의 죽음(12.19), 아들 압살롬에 의해 죽은 장자 암논의 죽음(13.22), 그리고 이 전쟁에서 죽은 압살롬의 죽음이다(18.31-32).

 

 

부스러기 묵상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18.33a)

 

아들을 잃은 아픔에 아버지로서 흘리는 눈물과 울음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다윗은 단지 아들을 잃은 것만을 슬퍼하고 있음이 문제다. 소위 <에브라임 수풀전쟁>에서 전사자가 많이 2만 명에 이르렀고,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던”(18.7b-8)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죽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윗은 생각했어야 한다. 이게 다 자신이 심은 죄가 장성하여 낳은 사망이 아니던가. 백성들이 다 죽었을지라도 아들 압살롬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이 기막히고도 삐뚫어진 부성(父性)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다윗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휘청거리며 전쟁의 참사만 남아있는 모습이 처량하기만 하다. 한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무너지듯, 한 가정 역시 부모의 죄에 의해 무너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동시에 한 가정이 그러듯,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한 사람 다윗의 죄 때문에 무모한 전쟁이 일어나고 수 많은 백성들이 죽었음을 역시 기억해야겠다.

그 한 사람의 자리가 나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라며 전쟁의 끝자락에 서 있다. 부족하고 못났으나 나 한 사람의 걸음이 또 다른 사람이 살아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어본다. 삶이란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기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 또한 주의 긍휼과 사랑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력하고, 무분별한 내게 뭘 기대할 수 있으랴. 그러니 더 납작 엎드려 볼 수 밖에

과연 다윗의 이 끝없는 추락, 어디가 그 종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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