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하나님 밖을 전전하다(삼상 28.1-25).

20220621(묵상)

  

 

 

사울, 하나님 밖을 전전하다.

1 Sam. 28.1-25

  

    본문 관찰

 

    사울_ 몰락하기(28.1-31.13)

 

    A 다윗(28.1-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B 사울(28.3-25): 여호와께 묻자오되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A' 다윗(29.1-30.30):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B' 사울(31.1-13):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블레셋 vs 이스라엘: 사울의 비극

 

다윗과 사울이 서로 교차(구조)하면서 파국, 즉 사울의 몰락을 향하고 있다.

사무엘상 28장에서부터 사울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것이 사사와 왕정이 서로 교차하면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시대(“사무엘이 죽었으므로”, 3a), 그러니까 하나님이 부재중인 이스라엘 왕정의 실상이다. 한편 가증한 접신녀(점쟁이 여인, 18.9-14 참조)에 의해 불러낸 사무엘에 의해 사울의 최후에 대한 심판이 예고되고 있음이 애처롭기만 하다.

 

 

아기스와 함께 출전하는 다윗(1-2)

 

다윗 역시 블레셋(아기스) 편에 서서 이스라엘을 쳐야 하는 묘한 긴장 앞에 선다. 다윗은 참으로 난감하고 묘한 상황에 처해있다. 전쟁에 참여하자니 블레셋 편에서 이스라엘과 싸워야 하고, 그렇다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자니 아기스가 보일 반응은 그 순간 다윗은 적군이 되는 것이어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다윗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다윗은 인간적인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블레셋(아기스)는 다윗을 이용해 이스라엘(사울)을 치려하지만 다윗은 그럴 수 없는 입장이다. 이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과연 다윗은 어떻게 해쳐 나갈 것인가. 다윗이 분명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하지만 사울과 일전을 벌이는 것은 선택할 수 없었고, 그래서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 아닌가. 선한 동기였기에 과정까지 선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은 이처럼 늘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밖에!

 

 

엔돌의 신접한 여인’(점쟁이)을 찾는 사울(3-25)

 

신접한 여인(사무엘)과의 만남(11-19)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만 공급 받아야 할 신앙에서 벗어나, 그러기 때문에 신접한 점쟁이 여인과, 이미 죽어버린 사무엘이라도 붙들어야 살겠다며 헛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11). 죽은 영을 불러내는 것은 당시에 행하던 종교적 관행이었다(15). 하지만 본문은 이것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사울이 하나님이 아닌 거짓 종교꾼(접신녀, 점쟁이, 종교무당)을 의지하여 자기 길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뭐 이 정도 선에서, 마치 사무엘과 사울이 만난 것처럼 우리를 혼돈스럽게 하는, 오늘 본문 류의 종교적 해프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이 죽음으로 사사시대는 막을 내리고(3),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사사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왕 질을 하고 있는 불완전한 왕정시대가 서로 교차하면서, 하나님이 부재중인 이스라엘 실상이 타락한 사울을 통해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신접한 여인의 위로(20-25)

사울은 신접한 여인인 점쟁이의 말을 듣고, 영육 간에 탈진한 상태가 되어 심히 고통스러워한다. 80이 가까운 나이에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정직하게 읽어간다면 이 여인이 사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나 해 줄 수 있는 육신의 양식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걸 먹고 기력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면 신접한 점쟁이와 사울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의 최상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용할 양식이 아닌 것을 구하고 있는 사울이나, 또 그렇다고 해서 그걸 주겠다는 하지만 이것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점쟁이 여인이나 헛 것을 찾고 구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영적 기상도를 읽어낼 수 있는 비참함 밖에 없음이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스리라고 맡은 사울도, 그와 함께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온 백성에게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할 신하들도, 누구 하나 하나님을 보여주고, 따르고, 순종하는 자가 없는 영적 무정부 상태가 사울왕 통치 40년의 마무리될 시점까지도 이게 개선되고 회복될 기미가 없다는 점, 이것이 엔돌의 신접한 점쟁이 여인이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보여주는 실상이다.

사울은 하나님 없는 풍전등화와 같은 이스라엘(6)의 앞날을 구하기 위해 신접한 여인에게서 금지된 답(19.31, 18.11)을 찾아야 하는 참담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이스라엘은 총체적 위기 앞에 서 있다(3- , 15장 참조). 사울은 지금 이스라엘에게 허락된 방법들(, 우림, 선지자) 중 어느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지금 사울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다. 바로 이때 절망 가운데 몸부림치는 사울의 참담한 모습, 결국 사울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사실 이때 사울이 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을 선택할 게 아니었다. 그럼 무엇인가. 회개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이 아닌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 그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기 바로 전,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는 여정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간 것으로부터 그는 이처럼 너무 멀리 벗어나 있는 셈이다.

선접한 여인, 곧 점쟁이에 의해 땅에서 올라온 노인’(8-14)의 영은 참일 수 없다. 거짓의 영이다. 사울은 끝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하나님의 답에 따라 언행하기를 포기한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결국 땅에서 올라온 거짓의 영의 예언 앞에 선다(15-19). 하지만 결과는 절망과 낙심이다(20-25). 이로써 사울의 말로(최후)가 희미하게나마 그러진다. 거짓의 영마저 사울 편이 아니라는 이 기막힌 사울의 운명, 이를 어찌할까.

 

 

부스러기 묵상

 

사울은 끝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지만 사울은 결국 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한다(B’, 31). 지금 이미 시작된 죽음의 길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고 있음에도, 그리고 다윗죽이기라는 작전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사울은 이미 자신의 실패와 다윗의 승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하나님을 향해 끝내 저항하는 불신앙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이는 다윗과 싸우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 일이 블레셋 전쟁이라는 밑그림이다.

한편 보이지 않는 28장의 속그림은 흥미롭다. 다윗은 블레셋 아기스왕 편에 서 있다. 하지만 그는 사울을 멸하고 죽이기 위해서, 이를 위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위해 블레셋의 힘을 의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망명한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어떠한가. 그는 다윗을 멸하고 죽이기 위해, 이를 위해 하나님의 힘과 능력과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거짓 영을 의지해서라도 인간 사울의 뜻을 이루겠다고 전의(戰意)를 불태운다.

그러니까 다윗은 죽음의 사선이 밀려오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묻고, 따르는 중이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역하면서까지 하나님이 세우실 다윗을 죽이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건다. 사울의 시작은 겸손과 순종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었다. 하지만 왕이 되고서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조라는 인간적 욕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미 다윗왕조를 다윗언약에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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