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하강기, 다윗 상승기(삼상 18.1-30)

20220606-07(묵상)

  

 

 

사울 하강기, 다윗 상승기

1 Sam. 18.1-30

  

    본문 관찰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1-5)

    사울 하강, 다윗 상승(6-16)

    사울, 다윗 사냥을 시작하다(17-27).

    다윗, 하나님이 함께 하다(28-30).

  

 

사울, 다윗 사냥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7)

 

사울은 블레셋과 골리앗 앞에 두려워 떨었다.

그런데 어린 다윗은 기골이 장대한 거인 골리앗 앞에 당당하고 담대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사울은 한 때나마 다윗을 능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울은 성령이 떠났고, 악령이 찾아와 심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결과 다윗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여기에 다윗은 승승장구를 넘어 온 백성에게 그 이름과 명성이 알려진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난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7) 결국 사울은 다윗을 대적으로 여기기 시작한다(28).

 

관찰자 사울(17.55-58) vs 친구 요나단(1-5)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13.14b)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15.28)

 

4절이 묘한 뉘앙스를 던져준다(왕하2.13- 참조).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왕조가 사울가 아닌 다윗에 의해 계승될 것이라는 점이다. 요나단은 이미 탁월한 신앙의 사람이었다(14.6-15). 그는 이미 아버지 사울에게 사무엘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흐름이 이미 다윗인 것을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후계자인 것을 의미하는 것들을 다윗에게 주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하나님께서도, 선지자 사무엘도, 백성들의 마음도(7), 무엇보다 사울의 계승자인 요나단도 왕권을 상징하는 것들을 다윗에게 넘겨주고 있다. 놀랍게도 이런 기류에 사울은 놀라우리만큼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 밖으로 비껴난 상태로 서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방관자이고, 자신의 왕권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련의 흐름을 관찰하는 자로서다. 이로써 사울이 가진 것은 왕의 자리일 뿐인 셈이다.

 

 

사울, 다윗 사냥꾼: 질투와 음모가 시작되다(6-30).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12)

 

다윗은 이 날 이후로’(16.13), 그러니까 첫 번째 기름부음을 받은 16장 이후로, 그리고 이어지는 18장에서 점차적으로 요나단(1,3)을 그 시작으로, 온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 16), 미갈(20,28), 사울의 신하들(22), 그리고 사무엘에게까지(19.18)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에 이른다. 더욱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과 함께 하시는 것까지다.

하지만 유독 사울에게만은 평생질투의 대상으로 부상하게 된다(8-9,12,15,29):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8a) 한편 이러한 분위기는 27장까지 이어진다. 사울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12,14,28a; 16.18 참조)을 보고 알았음에도 -이는 그가 원한 바이기도 하다(17.37b)- 그러하였다는 점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것이 악신(악령, 10. 16.14 참조)에게 붙잡힌 사울의 정체다.

사울의 다윗 사냥은 점차 노골화된다. 그는 앞에서 골리앗을 죽인 자를 사위로 삼겠다고 했다(17.25). 하지만 사울은 맏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계속해서 불레셋 전투에 내몰면서 전장에서 죽게 하도록 만든다(17). 이에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는 것을 거절하고, 사울은 딸을 다른 곳에 시집을 보낸다(18-19). 한편 사울의 차녀 미갈마저 다윗 사냥의 미끼로 좋게 여겨’(20b) 블레셋 전쟁터로 다윗을 몰아넣는다. 사울이 원한 사위로서의 폐백은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100개였다(21-25). 어떻게 해서든 블레셋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하려는 사울의 다윗 사냥이다

하지만 사울의 다윗 사냥에 대한 음모가 진행되면 될수록 다윗은 점점 승승장구한다. 이는 사울이 은밀하게 음모(살인미수)와는 달리 모두가 다 아는 공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특별히 사울의 아들이자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될 요나단은 끝내 왕위를 포기하고(3-4, 23.17), 생명을 건다(20.30-33).

   

 

부스러기 묵상

 

사무엘 기자가 보이지 않게 그려가는 이야기가 있다.

다윗은 하나님이 찾아낸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이미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당신의 결정을 통보한 이후다: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13.14b) 그리고 점차, 희미하게나마 조금씩 그 그림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사울의 언행을 보라. 그러면 이는 무엇인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한 항명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울이 거역하고 막아서겠다는 것 아닌가.

이로써 사울은 보이게는 다윗 사냥꾼을 자청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게는 하나님과 싸우는 셈이다. 일은 이렇게 거침없이 커가고 있다. 이를 어찌할까. 결국 사울은 그렇게 소위 청부사인을 요구했던 바로 그 블레셋에게 자신이 죽임을 당한다(31.3).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 앞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까지도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보이는 다윗과 싸우지만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싸우는 셈이다. 그러나 블레셋과 싸워야 사람이고, 지금 그리해야 할 때 아닌가. 사울의 다윗 사냥이 진행되면 될수록 일의 결과는 이처럼이다: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29) 이러라고 하나님이 왕의 자리에 올려놓으신 게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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