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쏘아올린 사울어천가(삼상 14.1-52)

20220528-30(묵상)

  

 

 

사울이 쏘아올린 사울어천가

1 Sam. 14.1-52

  

    본문 관찰

 

    사울의 첫 번째 불순종(13-14): 블레셋(믹마스) 전투

    요나단의 믿음과 용기(14.1-23): 승리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14.24-46)

    사울의 업적과 족보(14.47-52)

  

 

한나의 기도(2)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을 신뢰한 믿음으로 블레셋을 물리친다(1-23).

하지만 전투 중에 사울의 명령을 듣지 못한 요나단은 금식명령을 어기게 되고 죽음의 위기를 맞는 등 사울의 나라는 혼돈스럽기만 하다(24-46). 그럼에도 사울은 승전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는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다(47-48, 9.16 참조). 적어도 사울의 왕권은 무조건 부정되지는 않는다(왕권의 한계, 47-52).

 

 

요나단(1-23): 왕 같은 아들

 

    [요나단]

    “요나단이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1)

    “요나단이 이르되 우리가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6)

    “요나단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12b)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23a)

 

    [사울]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17a)

 

    [다윗]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오매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대상14.8b,10a)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대상14.13-14)

 

왕은 아버지 사울이고, 그러면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앞세우고 전쟁을 이끌어야 맞다. 그런데 아들 요나단이 왕 같아 보인다. 특별히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을 우선하기보다는 전세(戰勢)나 상황을 앞세울 정도로 아들 요나단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18-19). 여전히 전쟁의 중심은 사울이 아닌 요나단이다(21-22). 이는 사울의 뒤를 이은 하나님을 앞세운 다윗의 전쟁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역대상 14장 참조).

 

 

사울(24-46): 어리석은 맹세

 

흥미로운 것은 사울에게 있어서 블레셋은 내 원수’(24)일 뿐이다. 이것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전달된 메시지와는 다른 시각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9.15-16a) 그래서일까, 전쟁은 아들 요나단이 중심이었으나, 이 전쟁의 주도권을 과도하게 자신의 명령 쪽으로 끌어온다: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24)

점점 사울은 어리석어지고 있다. 더 심각하고 두려운 것은 그 중심에는 진정 하나님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헛되고 악한 맹세가 중심이다. 마침내 한 사람의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 사울의 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사울의 선언은 결과적으로 24절의 시간 이후에 백성들이 허기진 나머지 고기를 피째 먹는 죄를 범하고 만다(31-34; 17.14, 12.23).

이 일에 대한 후폭풍이다(36- ). 사울은 공식적으로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이 드러났다(37).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고(19), 율법이 아닌 왕의 시행령을 앞세우는(24) 사울이 하는 말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38b) 결과적으로 죄인 사울이 하나님과 동역’(45b)한 요나단을 죄인으로 잡고서 그것도 모자라 이처럼 다 강한 왕의 시행령을 발동한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39)

 

하나님과 상관없는 언행이 율법 위에 난무한다. 이게 사울이 보여주는 참담함이다.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고 앞세워 블레셋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나단은 죽음의 위기에 처해지고,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과 율법을 넘어선 언행을 서슴치 않는 사울은 심판자의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사울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들은 이 사울의 법을 거부한다: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45b) 이렇듯 사울은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만다.

 

 

부스러기 묵상

 

    “사울이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47)

    “사울의 아들은 아내의 이름은 아버지는”(49-51)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52)

 

사울은 나이 40세에 왕이 되어 40년을 다스린다(13.1).

전쟁에 승리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그런데 거기에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 그러니까 사울의 생애에는 하나님이 없다. 더 놀라는 것은 지금 이 시간들이 그가 성령 안에 있을 때였다는 점이다. 사울은 사무엘상 10장에서 그에게 성령이 임한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10.10b). 그리고 사무엘상 16장에서, 다윗이 첫 번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성령에 사울에게서 떠난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16.14a)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사무엘상 10장과 16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는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럼 무엇인가. 사울은 성령 안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너무너 인본주의적인 사람으로 살았다. 회개할 줄도 모른다. 단지 주술적이고 습관적으로 가끔, 그리고 공식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을 뿐이다. 두려울만큼 놀랍고 큰 충격이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다. 이처럼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사울은 무너지는 중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만 이 사실을 모른다. 아니다. 이를 되돌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언행도 보여지지 않는다. 이 부분이 더 아프고 시리다.

 

  

제목 날짜
사울, 죽음과 그 이후(삼상 31.1-13) 2022.06.21
도망자 다윗4: 하나님 안에서 행하다(삼상 29.1-30.30). 2022.06.21
사울, 하나님 밖을 전전하다(삼상 28.1-25). 2022.06.21
도망자 다윗3: 인간 사울, 신앙 다윗(삼상 25.1-27.12) 2022.06.14
도망자 다윗2: 쫓는 자와 쫓기는 자(삼상 23.1-24.22) 2022.06.14
도망자 다윗1: 살리는 자와 죽이는 자(삼상 21.1-22.23) 2022.06.09
다윗과 요나단( 삼상20.1-42) 2022.06.08
사울과 요나단(삼상 19.1-24) 2022.06.07
사울 하강기, 다윗 상승기(삼상 18.1-30) 2022.06.03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삼상 17.40-58) 2022.05.30
[사울/이스라엘/엘리압 vs 골리앗] VS 다윗 (삼상 17.1-40) 2022.05.30
다윗 만들기: ‘준비하라’(삼상 16.1-23) 2022.05.30
사울의 불순종 무도회(삼상 15.1-35) 2022.05.26
사울이 쏘아올린 사울어천가(삼상 14.1-52) 2022.05.24
사울 전투력, 무엇이 문제인가(삼상 13.1-23). 2022.05.23
사무엘 회고록(삼상 12.1-25) 2022.05.22
사울, 안녕하십니까?(삼상 11.1-15) 2022.05.21
사울왕 스타트(삼상 10.17-27) 2022.05.20
하나님이 택하신 왕을 보라(삼상 9.1-10.16). 2022.05.20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겠다고?(삼상 8.1-22) 202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