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안녕하십니까?(삼상 11.1-15)

20190721(양무리교회)

 

 

 

사울, 안녕하십니까?

삼상11.1-15

 

    왕이 된 사울(9.1-11.15)

    1.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9.1-10.16): 선택

    2.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10.17-27): 즉위

    3. 암몬대첩(11.1-15): 확증

 

 

사울이 오고 있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혼돈의 시기다.

그 중심에 엘리 사무엘 사울이 등장한다. 사무엘에서 사울에게로 이스라엘의 무게 중심이 점차 이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 무엇이 있을까.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누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가.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하고 또 성취해 가는가. 이것이 사울이 등장하는 사무엘상 전후사의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사사시대 전후사의 인식

 

사사기 밖, 사무엘상에서 사사 엘리가 움직인다.

엘리에서부터 사무엘까지를 소위 사사기후서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사사로 칭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사기 안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 같은데 사무엘기에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든 생각이다.

 

A. 엘리의 몰락과 사무엘의 등장

아직 사사시대다. 사사이지만 사사기 안에서 이야기되지 않고 사사기 밖에서 마치 번외 사사처럼 움직인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한편 엘리는 사사이지만 사사기 사이클이 돌아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사사로 있을 때 평화가 흐르고, 그가 죽자 혼돈과 고통이 밀려오는 구조가 아니다. 사사가 버젓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혼돈이고, 상처고, 전쟁이고, 마침내 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그렇다면 사사가 있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엘리는 결국 그가 사사로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평화롭지도 않고, 전쟁이라고 고통이 이스라엘에 찾아오지 않게 되는 일과 무관하다. 그야말로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사사무용론에 불을 지을 뿐이다.

 

엘리가 몰락하다.

vs

사무엘이 자라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2.12- )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2.17)

 

        →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21b)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26)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3.13)

 

        →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3.19)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3.21)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기 된 지 40년이었더라.”(4.18b)

       이가봇 -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4.21a)

 

B. 사무엘의 몰락과 사울의 등장

마지막 사사 사무엘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사사시대의 악성 돌림노래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해서 희망이 넘실거린다.

하지만 엘리를 극복하는 희망에 찬 모습으로 등장한 사무엘의 몰락은 충격적이자 뼈아프다. 이스라엘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이쯤 해서 이스라엘은 사사가 아닌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무엇인가. 왕정(王政) 곧 군주의 통치를 기대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당신이 왕인데 이는 곧 하나님을 반역하는 행위라 하신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요동치는 중이다.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1] 8.1-3 사무엘마져... 을 주소서!

 

    [2] 9.20-21 사울이 시야에 들어오다 가장 미약하다!

        아버지 기스 아들 사울: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3) 3일을 그대로

        사울: ‘가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10) 하나님께로

 

        ↓

 

       하나님 사무엘: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16a)

       사울 사무엘: ‘나는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까!’(21)

       사무엘 사울: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27b)

 

이 평범한 사울에게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시작하신다.

그게 10장부터다.

 

그는 나이 40이 되도록 마치 감추인 보화와 같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어쩌면 혜성처럼 등장한다. 나라는 사무엘이 통치하는 때에도 요동치는 중이다. 역사는 서서히 사사들의 통치에서 왕정으로 넘어갈 때를 맞는다. 그럼에도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한다(8.1-2).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드러내신다. 그게 사무엘상 9-11장 이야기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사울을 쓰시는 것일까? 그것도 왜 베냐민 지파인가. 이미 창세기의 야곱유언’(49)은 유다의 후손을 주목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울 뒤에야 유다의 후손에서 다윗을 택하여 세우심에서 더 분명해진다. 그런데 왜 베냐민을 지나가시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사울이 사무엘의 뒤를 잇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여졌다는 얘기다. 그럼 사울의 어떤 면인가. 이 부분에서 조금은 실망스럽거나,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울의 면면을 볼 때 그렇다.

한 마디로 하면, 그가 특별하지 않아서다. 사무엘상 9장에 등장하기 이전에 그는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등장하는 장면도 극적이지 않다. 그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가 핵심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지금껏 택스트 안에서 읽어오면서 찾아본 것들이다. 다름 아닌 평범함이다.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들, 그를 불러내 쓰시겠다 할 때 난 아니다. 그럴 위인이 못된다며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무릎 꿇은 사람이다.

그럼 나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된다? 가장 평범한 것이 능력이다? 정직하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면 된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구하고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꺼이 하나님께 물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너 좀 써야겠다 그러시면 난 자격 없다. 나 같은 죄인에게 무슨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며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다? 지금 하나님은 이처럼 김충만, 너 안녕하냐?”라고 치고 들어오신다.

 

    [3] 10.1 기름을 붓다

        예고: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10.6)

        성취: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10.10)

 

    [4] 10.17- 사울이 왕으로 제비뽑히다.

         제비뽑기: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21b)

         하나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22b)

 

 

왕위 40, 그 위풍당당한 시작

 

    11.1-11 - 암몬을 물리치고 길르앗 야베스를 구하다.

    11.12-15 - 이스라엘 초대왕이 되다.

    13.1a - 사울이 왕이 될 때에 40세라.

  

아직 그는 명목상의 왕이다. 그럼에도 사울은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길르앗 야벳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1-11). 이때 자신을 거부하는 자들까지 용서하는 성숙함을 보여준다(10.27 11.12-13). 이를 기회로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15a) 나라를 새롭게 한다. 마침내 이로써 공식(공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사울은 참으로 신실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정확하고 정당했음을 보여준다.

 

사사가 있으나 이스라엘은 요통치는 중이다. 평화가 없다는 뜻이다. 마침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데 이것이 사울왕의 등장이다. 그는 이 혼돈의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자로 하나님의 시야에 들어온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준에 적합한 자로 하나님께, 사무엘 선지자에게, 백성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등장한 사울은 그에게 성령이 임함으로서 지금 진행되는 일련의 흐름이 사무엘 단독으로가 아닌, 사울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따른 권력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그 안에 들어있음을 사무엘상은 분명히 밝히는 듯하다.

하나님은 사울의 마음가짐, 그 겸손의 얼굴을 보셨다. 그리고 그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그를 백성의 제비뽑기라는 방식을 따라 불러내신다. 그리고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을 부으신다. 이렇게 왕정은 시작되고, 사울의 출발은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고 움직인다. 사울, 그는 참 안녕하다.

 

 

사울, 안녕하십니까?

 

    先_ 부르심 - 9.20-21

    後_ 기름부음 - 10.1

      _ 하나님의 영이 임하다 - 10.10

      _ 제비뽑기 - 10.17-

      _ 왕이로소이다! - 11.15

    結_ 왕이다, 그 이후... - 13.1-

 

하나님은 부르셔서 만들어 가신다.

사울은 묵묵히 순종하고 하나님 쪽으로 따른다.

이 흐름이 참 자연스럽다.

이것이 평범함 속에 들어있는 능력이고, 위대함이고, 은혜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의 공로나 노력이나 땀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다.

그 은혜를 값없이 받았다.

그럼 맡은 자가 할 일은 충성이다. 자신을 써 주신 분의 결정이 옳고 바름인 걸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사울의 진짜 소명이다.

 

사울처럼 누구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쓰심 앞에, 맡기심 앞에, 은혜 앞에 선다.

자신의 공적이나 공로에 의한 게 아니다.

그러니 잘난 채 할 일도 아니고, 우쭐할 일도 아니다.

그저 납작 엎드려 써주신 분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불사르는 것, 이것이 받은 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제 사울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을 걸어오신다: “사울, 안녕하냐?”

여기에 응답해야 할, 답안지를 드려야 할 게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기록해가는 인생보고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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