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곁에 있는 해답(수 22.1-34)

20211028(묵상)

 

 

 

문제 곁에 있는 해답

Josh. 22.1-34

 

    본문 관찰

 

    (, 1-10)

    그런즉 이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를 섬길찌니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 장막으로 돌려 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너희의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찌니라

    (, 11-20)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

    전(, 21-29)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 30-34)

    제사장 비느하스와 두령들이 듣고 좋게 여긴지라

    돌아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러 회보하매

    이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기쁘게 한지라

  

 

기승전결(起承轉結)

 

마침내 가나안에 안식이 왔다.

그래서 요단 동편에 기업이 있는 두 지파 반이 자신의 땅으로 돌아와 요단 저편에 단을 세운다(10). 그러나 즉각적으로 동족간의 전쟁 위기로 비화되는데(12), 왜냐하면 이 행위는 곧 다른 단’(19)으로 오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대화가 진행되었고(13- ), 마침내 문제는 해결된다. ‘보기에 큰 제단’(10)이란 말에서 양측은 서로 오해했음이 분명하다. 자칫 서로가 옳은 일을 주장하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다가 모두가 다 자멸할 뻔했다. 내분(內紛)으로 무너질 셈인가. 가나안에서 말이다. 그만큼 문제를 풀어가는 저들의 대화가 빛나는 대목이다.

   

 

이럴 수가!(1-20)

 

    ∙발단(1-9): 이제는 안식을 주셨으니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 그를 섬길지니라

    ∙전개(10-12): ‘보기에 큰 제단

    ∙위기(13-20):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22장은 1장과 연결되면서 23-24장을 소개하는 문으로의 역할을 한다. 두 지파 반의 아름다운 헌신을 회고한다: “너희가 다 지키며 모든 일에 내 말을 너희가 청종하여.”(2) 그리고 이어서 미래에 대한 권고가 주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신명기적인 분위기가 강하다(5, 6.4-9). 이런 인상은 여호수아의 축복에서도 그렇다(6, 33.1).

하지만 미래로 가는 길목은 곧바로 위기(오해) 속에 휩싸이는 흐름으로 전개된다(10-12 13-20). 이것은 과거(12.1-14)와 미래(5)가 현재(‘오늘’, 16,17,18)라는 삶의 자리에서 충돌하게 된 그림이다: “오늘날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않고자 하느냐 너희가 오늘날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18) 한편 이것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2,4,5)와 여호수아가 너희에게(동시에 여호수아 이후) 사이가 단절될지도 모르는 위기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보기에 큰 제단’(다른 단, 10,19)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16)는 위기(오해)를 낳게 된 이유다. 신명기(12.1-14)와의 단절은 곳 가나안 시대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12) 두 지파 반과 싸우려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아간의 범죄에 대한 회고는 적절하다(20).

어떻든 요단 동편(두 지파 반)이나 요단 서편 모두는 한결 같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열심에서 같은 일을 서로 다르게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둘 사이에는 전쟁도 불사할 만큼 오해와 긴장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 생각해 볼 대목이다. 비록 그 동기가 선하고 아름다울지라도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해에 따른 갈등(위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이 싸움(전쟁)에 앞서 일련의 사태에 대한 진위를 알아보려는 대화가 아름다운 이유다(12 13- ).

가나안의 이스라엘이 건강해 보이는 것은 일어난 일에 대한 시각과 흐름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범죄이자 죄악’(16- )이라고 읽어내고 있음이다. 그리고 제사장과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해법을 찾아가고 있음이다.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사익)이나 섭섭함(서운함),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문제에 접근하거나 증폭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처럼 이해하고, 풀어가고,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오늘 우리가, 교회가,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그렇구나!(21-34)

 

    ∙절정(21-29):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결말(30-34): 우리 사이에 이 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위기는 증거’(27)의 기회가 되어 대화의 장(field)에 들어온다: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22a) 무엇을 알리고 알게 될 것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오늘 보고 있는 이 볼 만한 큰 단은 단일성소의 율법을 거역하는 번제(다른 제사)를 위함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26-29).

비록 요단을 경계로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졌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12지파이며, 이는 실로에 있는 단일성소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유지될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됨, 즉 화합(Unity)의 근거는 한 하나님을 한 장소에서 한 제사를 통해 예배하는 것에 있다.

이는 출애굽기 19장의 시내산 언약에 기초해 언약 백성들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침내 가나안 시대의 실로에 단일성소(중앙성소, 신명기 12), 이는 훗날 오직 솔로몬 성전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요단 동편 2지파 반은 훗날 이 은혜로부터 아무런 분깃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까 봐 제단 모형을 만들어 증거를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28). , 실로를 중심으로 한 단일성소를 거부하고 훗날 북이스라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같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것인데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 그런데 이를 불화, 논쟁, 싸움(전쟁), 갈등으로 이어지는 해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건강하게 대처하고 살피면서 모두가 다 상생(Win-Win)하는 흐름으로 해결한다. 여기에는 사리사욕이나, 거짓, 탐욕과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아서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견고하게, 건강하게, 하나님의 이름과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해결이 된 것이다. 이 또한 우리 공동체가 기대하고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부스러기 묵상

 

 5년을 하루같이

    [3]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지키도다.

    [4] 이제는 안식을 주셨으니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

            → [5] 그를 섬길지니라.

 

갈렙은 출애굽 후, 그의 나이 40세에 가나안 정탐을 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분배)을 마칠 무렵에 그의 나이 85세였으니(14.10), 이로 보건데 정복전쟁은 5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면 요단 동편 지파들(르우벤, , 므낫세 반 지파)5년을 하루같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킨 것이다.

오늘’(3a)이 있기까지 지난 날들을 오래도록, 그리고 저 미래까지 모든 것은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을 불러서 이 표현에 담아 저들에게 명령(2b)하며 축복한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2,4)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6,7b)

이런 헌신에 하나님은 저들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신다(8).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드린 지난 날들의 헌신에 대해 주신 복인 셈이다. 오늘 우리도 한 날의 삶을 마무리하고 귀가할 때, 이번 한 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장막(교회)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 더 크고 넓게는 우리의 인생 여정을 마치고 천국문 앞으로 나아갈 때 요단 동편의 지파들처럼 하나님이 거두게 하신 복을 안고 주님을 뵈올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주께서 명하신 말씀에 순종하고 행할 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겠는가.

 

   

  • *본문(수22.1-34)은 강해설교를 하지 않고, 기초 묵상만 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개인성경연구(PBS)와 말씀묵상(QT)을 겸하고 있으므로 간략하게 묵상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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