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유언과 축복(2): 기도와 예언에 품다(창 49.1-28).

20200922-23(묵상)

  

 

 

야곱의 유언과 축복(2): 기도와 예언에 품다.

Gen.49.1-28

  

   본문 관찰

 

   야곱의 축복(49.1-28)

      → 모세의 축복(33.1-29)

   

 

야곱의 유언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1b,28b)

 

야곱은 큰 사람이다. 세속적이지 않다. 거룩하다. 하늘을 바라본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저주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아들들의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 유언, 기도, 축복과 저주에 담아낸다. 한편 유언의 특징은 출생 순서와 유언 순서가 다르다. 그리고 몇 아들들에게서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유다(사자), 잇사갈(나귀), (), 납달리(암사슴), 베냐민(이리)

 

 

축복과 저주: 후일에 당할 일

 

12 아들들의 모양, 성품, 믿음, 삶의 방식, 우선순위, 태도, 인격, 성품, 삶의 이력 등 모든 것이 다 다르고 다양하다. 또한 이들이 그려내는 인생의 모양도 참 다르다. 누가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누구는 필요없고, 무익하다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들을 모두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이다. 야곱의 가정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르우벤(3-4)

맏아들이지만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기에 장자권(대상5.1-2)과 탁월함까지 잃는다.

②③ 시므온과 레위(5-7)

디나 사건에서 보여준 이들 형제의 '모의, 집회, 분노, 혈기, 노여움, 분기'에  화가 임할 것이다는 선언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이들이 나뉘고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라는 예언을 받게 된다. 이 예언처럼 훗날 시므온은 유다 지파에 흡수되고(19.1-9), 신명기 33장 모세의 축복에는 언급조차 없다.

유다(8-12)

레아가 유다를 낳을 때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29.35) 하고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다. 이를 다시 야곱이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라고 축복한다. 10절의 떠나지 않은 규(/, 왕권, 왕의 지팡이)와 첫 중앙 성소가 자리한 실로가 오시기까지에서 여자의 후손이자 성막(성전)의 주가 유다를 통해 오실 것이라는 계시의 씨앗을 보게 된다.

스불론(13)

10번째 아들인데 5번째로 나온다. 시돈 근처의 북쪽 바닷가에 정착하여 배들의 안전한 해변(항구)의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

잇사갈(14-15)

양의 우리 사이에 끓어앉은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는 예언은 남의 짐을 지는 튼튼한 나귀처럼 이웃 나라들과 동맹을 맺거나 그들의 지배를 받는 지파가 된다.

(16-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아셀(20)

왕들의 식탁을 차릴 만큼 기름지고 풍성한 소산을 누릴 것이다.

납달리(21)

암사슴처럼 산과 광야를 자유롭게 누비며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다.

요셉(22-26)

요셉의 일생이 이 축복에 들어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베냐민(27)

물어뜯는 이리처럼 호전적이어서 훗날 가나안을 빼앗는 정복에 힘을 보탠다.

   

 

기도의 사람, 야곱

 

야곱은 마지막까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 그러니까 형 에서의 낮을 피하여 외삼촌이 살고 있는 밧담아람으로 도망을 갔던 망명생활을 끝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목에서 천사(하나님)와 밤이 맞도록 씨름하며 울부짖었던 기도의 몸부림을 그는 결코 잊고 살 수 없었다.

사람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야곱은 지금 자신의 생애를 기도로 마무리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수중하지 않은 때가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이다. 승자(勝者)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다. 그는 신앙적으로 매우 건강한 마무리를 했다. 꿈과 이상을 보는 아주 깊은 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기도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다. 그 이후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기도는 그를 새롭게 만든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의 통로였다.

메뚜기도 한 철이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아무리 좋아도 평생을 계속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별히 그것이 기도일 경우에 더욱 그렇다. 한 때를 그렇게 살 수 있지만 끝까지 그렇게 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야곱의 마무리가 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렇다. 기도가 그를 이처럼 만들어준 것이다.

야곱은 기도 속에서 미래라는 약속의 꿈을 꾼다. 오늘을 사나 내일을 품게 만드는 힘이 기도 속에 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과거 속에 가두어 놓지 않는다. 기도는 미래를 품는 자의 몫이다. 야곱은 축복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12 아들들의 분량대로 그들을 축복한다.

부모가 자녀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그렇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영적 특권을 주셨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을 말씀 안에서, 주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먼저 있어야 할 것이 있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들을 축복할 만큼 영적으로 성숙해 있어야 한다. 또한 자녀들을 향한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부스러기 묵상

 

우리도 야곱처럼 살 수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길이 보인다. 야곱에게 있어서 기도는 자기의 능력 위에 계신 자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게 했고, 믿게 했고, 확신하게 했고, 무엇보다 체험하도록 이끌었고, 그래서 마침내 미래까지를 기도에 담아낸다.

지금은 야곱처럼 노년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그리운 때다. 그는 끝까지 기도의 자리에 서 있었다. 기도가 그의 유언이었고, 기도가 그의 마지막 호흡이었다. 그는 세상을 염려하며, 두려워하며, 후회하며 마무리하지 않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끝까지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았다. 그는 기도로 자신의 일생을 마무리했다. 나는 지금 어떤가?

야곱은 흔히 발견되는 유언 한 줄 없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들에 관심이 없다. 가치가 없다는 것보다는 우선순위에 들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아들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후일에 당할 일이다. 그는 오늘이라는 무대에 서 있지만 이 오늘이 도달하는 곳인 저 미래를 바라본다. 이는 오늘과 내일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기도와 축복이 가능한 야곱을 묵상하면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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