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붙든 예배자(창 46.1-27)

20200917(묵상)

  

 

 

언약을 붙든 예배자

Gen. 46.1-27

  

   본문 관찰

 

   브엘세바에서의 희생제사(1-7)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3b).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자손(8-27)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70 명이었더라(27b).

   

 

야곱애굽

 

   [야곱의 생애]

   ∙출생하다(이삭의 나이 60_ 25.26) - 25.19-26

      수태고지(25.23)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판 붉은 죽 에피소드(25.27-34)

   ∙40세에 형 에서가 결혼하다(이삭의 나이_ 100) - 26.34

      이삭의 축복 vs 아들들의 갈등(27.1-28.5)

      에서의 계속되는 결혼(27.46, 28.6-9)

   ∙71세에 이삭의 축복을 받았으나 망명을 떠나다(브엘세바를 떠나) - 28.10

   ∙91세에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낳다 37.2

      2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감(요셉을 낳은 때) - 30.25, 31.38

      얍복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다 32.13-32

   ∙108세에 요셉과 헤어지다(22년 만에 다시 만남) - 37.2, 41.46, 45.11

   ∙130세에 바로 앞에 서다(브엘세바를 지나) - 47.9

   ∙147세에 죽다(애굽 거주 17) - 47.28, 49.33

 

야곱의 생애를 추적하면 위와 같다.

팥죽 에피소드(25.27-34) 이후 에서와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놓고 생사(生死)를 위협하는 신경전에 돌입한다(27.41-45). 창세기에서 연대를 얼추 계산해 보면 이때 야곱의 나이가 70세 무렵이다(위 표 참조). 이는 또한 에서가 나이 40세에 결혼한 후 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사건이 27장의 시점이라는 자연스러운 계산을 무리 없이 해 보게 한다. 이로 보건데 에서는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점차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라인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저에 좀 납득하기에 어설픈 결혼이야기’(26.34-35, 27.46, 28.6-9)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적극적인 후원(편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겠다고 호언하고 있음을 볼 때 창세기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본다.

   

 

브엘세바에서의 희생제사(1-7)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3-14)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3-4a)

 

브엘세바(Beersheba, ‘언약의 우물’)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고 그가 판 우물의 소유권을 확증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21.25-32). 또한 이곳은 후에 하갈(21.14), 이삭(26.23), 야곱(46.2), 엘리야(왕상19.3-7)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곳이다. 특별히 야곱은 지난 날 브엘세바에 살다가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해 도망한 곳인데(28.10), 지금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임재(찾아오심)를 경험한다(1-4).

한편 애굽은 그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금지의 땅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기근을 피하여 금지선을 넘으려 하고 있다. 아들을 만나고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기근 -야곱도 이젠 이 기근은 아직 5년이나 더 남아있다는 걸 알고 있다(45.11 참조)- 에게 자신과 온 식구들의 생명을 내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어찌 보면 기근에 죽든지 불순종의 대가로 하나님에 의해 죽든지 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절명의 순간에 야곱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를 예배한다(1).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신다(2). 이것이 절묘한 해법이다. 예배자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던 선조들(아브라함과 이삭)과 동일한 수준이다. 그는 이미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가나안이 언약의 땅이며, 이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걸 듣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야 하는 연약한 자신을 붙들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듯 부족하고 불완전한 예배자일지라도 그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분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는 야곱일지라고 그의 예배를 받으시며, 동시에 그를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이렇듯 예배자 야곱은 둘 사이에 끼어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방황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갔다. 이것이 야곱에게서 배우는 영적 비밀이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시 확증하신다(3-4, 15.12-15 참조). 그는 큰 민족(3, 12.2, 21.18)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마침내 애굽행은 결제가 났다. 애굽이라는 자궁에서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자라게 하는 일을 준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15.12-21 참조)이 성취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서 명백한 선물로 확증되고 또한 주어지고 있음이 흥미롭다. 두려움은 예배하도록 했고, 예배는 언약이라는 소망의 문을 연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예배를 좋아하시고, 예배자를 찾으시며, 예배를 받으시고, 예배자를 만나서 복을 부으신다. 마침내 야곱의 모든 근심과 걱정과 고통은 사라졌다. 그는 분명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를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 하나님의 사인(sign)을 받았는데 무엇이 문제 되겠는가.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자손(8-27)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75 사람을 청하였더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7.14-16)

 

   ▪ 70(1.1-5) vs. 75(7.14)

   칠십인역은 20절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아들 5명을 기록한다.

   자손의 수를 계산하기가 만만찮다.

   [1] 레아(8-15): 르우벤(5), 시므온(7), 레위(4), 유다(8)

        잇사갈(5), 스불론(4), 디나 - 딸까지 33

   [1a] 실바(레아의 종, 16-18): (8), 아셀(8) - 16

   [2] 라헬(19-22): 요셉(3), 베냐민(11) - 14

   [2b] 빌하(라헬의 종, 23-25): (2), 납달리(5) - 7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꿈은 이제 70명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을 실현할 그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12장에서 겨우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꿈이 3대를 거쳐 4대에 이른 46장에서는 마침내 70명으로 늘어났다. 야곱이 한 일이란 겨우 70명의 사람들로 식구들의 수를 늘려 놓은 것에 불과했다.

겨우 70명인데 가정의 영적 권위는 산산이 부서져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아들들의 영적 수준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스라엘의 12 족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야곱의 아들들의 실체를 자세히 보라. 성경은 이들의 시작을 소개함으로써 이후에 펼쳐질 그들의 역사를 주목하도록 만든다. 이들은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애굽의 430년 포로기 동안 하나도 도태되지 않고 족장의 계보를 이어간다(1).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용광로에서 이스라엘을 단련(연단)하신다.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라는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신앙을 전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용광로에서 인생 채찍으로 그들을 단련하신다.

이스라엘은 그렇다 치더라도 애굽은 그처럼 밖에 쓰임 받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하고, 또한 그 역할이 끝나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것은 애굽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어떤 배역으로 쓰임 받고 있는가를 참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처럼 쓰임 받은 사람이 더 많지만, 반대로 가룟 유다와 본디오 빌라도처럼 쓰여진 인물들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준비하셨는데 그가 바로 요셉이었다. 그런데 그가 야곱과 그의 아들들 모두를 구원하는 가지가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관심은 당신의 손에 붙잡혀 있는 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크고 비밀한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준비하셨다.

야곱은 자신 역시 험악한 세월’(47.9)을 보냈을 뿐 아니라, 그런 와중에 자녀들의 영적 성장과 하나님의 은총에 붙잡히는 신앙교육에 실패한 듯하다. 그가 아버지 이삭을 속였듯이 그 역시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야곱과 그 아들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창세기 기자는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애굽에 들어간 최초의 인원이 70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430년이 지난 훗날 수 백 만명으로 늘어난 이스라엘의 놀라운 확장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70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10.22)

   

 

부스러기 묵상

 

총리 후 10여년 만에 마침내 온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조상들에게 금지된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아는 바 야곱은 두려워한다. 어찌 그러지 않았겠는가. 어쩌면 그랬기에 더 예배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다(2a). 이를 통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시 확증하신다(3b-4). 이로써 요셉이 먼저 애굽에 들어간 것은 이를 통해 가족을 구원하는 씨앗(46.27)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요셉은 비극을 극복하고 승리했다(7.10).

하지만 이 일이 일어나기까지 물밑에서 진행된 사랑의 에피소드가 바로 본문이다(1-6). 야곱의 못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아직 5년이나 더 남아 있는 기근이라는 고통(환난)을 피해 약속의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야 하는 야곱! 그런 그가 드린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 이렇듯 창세기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늘 언제나 약하고 못난 죄인들을 품어 주시고,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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