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살이를 위한 가족부흥회(창 45.16-28)

20200916(묵상)

  

 

 

애굽살이를 위한 가족부흥회

Gen. 45.16-28

  

   본문 관찰

 

   바로의 초대, 요셉의 부탁(16-24)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22a)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24)

   형제들의 귀향 보고(25-28)

      야곱은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27b)

   

 

귀향(歸鄕)의 길목에서!

 

야곱은 두 가지 낭보를 접한다.

먼저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놀랍게는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요셉이 가족(형제)을 만난 것을 알고, 바로가 수레(오늘로 하면, Benz S600)와 기름진 양식과 흉년을 피해 정착할 땅을 약속한 소식을 아들들로부터 접한다. 마침내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 언약이 그 성취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바로의 초대, 요셉의 부탁(16-24)

 

마침내 야곱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는 대장정의 역사가 시작된다. 바로는 친히 이들의 애굽생활의 풍성함을 기쁨으로 약속한다(16-20). 한편 요셉은 귀향길에 오른 형들에게 의복과 양식, 그리고 아버지 야곱을 위해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 등 노중(路中)에 필요한 것들을 형제들에게 선물한다(21-23). 그리고 길에서 다투지 말라!”(24) 형제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행여나 일어날 수 있는 형제들 사이의 불화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화해와 용서의 빛줄기가 자칫 논쟁을 넘어 또 다른 불씨가 되는 것을 미연에 막고자 하는 요셉의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의 권면이다.

   

 

형제들의 귀향 보고(25-28)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28)

 

야곱은 아들들에게서 요셉이야기의 전말을 전해 듣는다. 그러면서 마음에 심긴 바로 그 꿈의 성취와(37.11),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를 향해 첫 발을 시작하는 것을(15.12-17 참조) “족하도다!”는 고백으로 토해낸다.

7년의 흉년예고 중 2년이 지난 해(6,11), 모든 것이 바닥난 절망의 끝에 서 있지만 잃어버린 아들 요셉의 생존 소식은 야곱으로 하여금 족하도다!”(28)는 고백을 하게 한다. 요셉이 17세 때(37:2) 꾼 꿈을 야곱은 자신의 마음에 심었는데(37:11) 하나님은 22년이 지난 하나님의 때에 아브라함 언약(15:12-17 참조)을 시작할 나무로 자라게 하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에게도 야곱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읽어낼 만한 영적 안목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 행로를 무엇으로 족하도다!”라고 언행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부스러기 묵상

 

무려 22년이나 야곱에게 요셉은 죽은 자였다.

그가 꿈을 꾸던 17세에 채색옷만 돌아왔고, 온 땅에 흉년이 들었고, 그 흉년 2년차에 애굽의 총리는 자신이 요셉이다는 것을 밝힌다. 요셉의 나이 30에 총리가 되었고, <풍년 7, 흉년 7> 가운데 흉년 2년차였으니 요셉의 나이 39세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유구한 세월 속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온 아들들과 야곱을 다루고 만지셨다. 동생을 팔아버리던 형들에게 이번에는 또 다른 동생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제물로 내어놓았다. 아버지 야곱도 하나님을 찾는다(43.14). 그랬으니 이 만남은 과거로 가는 게 아니라 미래로 가는 시작이 된다.

한편 요셉의 17-39세 사이는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이 죽어 있는 시간이었으니 아버지로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가끔 죽은 아들을 추억하며 지낸 정도였을 것이다. 그랬으니 애굽에 팔려간 요셉을 다시 데려오는 일도 시도할 수 없었다. 이뿐 아니다. 죽었으니 면회도, 기도도, 영치금도, 보석금도, 로비도, 며느리를 맞는 일도, 결혼식도, 손자들이 태어날 때나 첫 돌에도 물론 할 수 있거나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요셉은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서 있다. 자신이 끼고 살았던 11 아들은 고만고만함에도 말이다. 얍복 나루에서 이스라엘이 되었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였으니, 거기에 밧단아람에서 거부(재벌)가 되었으니 영육(靈肉)간에 다 가진 자 아닌가. 그럼에도 11 아들은 하나 둘 무너지고,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며 오래 참으로 마침내 야곱의 아들들답게 만들어 내신다. 동생을 인신매매하는 것에도 거침이 없던 형들이 베냐민과 아버지와 가족공동체를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 제물로 내어놓기에 이른다. 돌아보면 요셉만 성장하고 성숙한 게 아니다. 부끄럽고 죄 가운데 묶여 있는 형들도 하나 둘 영적 기지개를 켜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자들로 창세기 앞에 우뚝 선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언약의 씨를 약속하셨다. 이제 그 씨앗이 요셉을 통해 마치 애굽의 자궁에 심겨졌다. 그리고 이제 야곱(이스라엘)의 후예들은 이 요셉을 통해 애굽에 심겨질 것이다. 이 씨앗은 무려 4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먹고 자랄 것이다. 야곱과 요셉의 생애로 조금 더 좁혀 보아도 그 시간이 만만찮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은 그 안에 무수한 시간과, 그 시간 안에 또 다른 무수한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하루가 시작되고 다시 밤이 오는, 그렇게 반복되고 이어지는 시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가는 시간이다. 비록 아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아도, 그래서 무료하고 한가롭게만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는 자라고, 그래서 그 성취를 향해 움직이는 중이다. 지금 이 시간도 그렇다. 그러니 앞이 보이지 않고,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걸음처럼 보일지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늘도 하나님의 꿈과 섭리가 익어가는 날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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