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꾼 꿈을 생각하고(창 42.1-17)

20200909(묵상)

  

 

 

요셉, 꾼 꿈을 생각하고

Gen. 42.1-17

  

   본문 관찰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가서 사오라(1-2)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6)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7)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9)

   우리들은 12 형제오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13)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15)

   그들을 다 함께 3일을 가두었더라.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7.12)

 

   [요셉의 생애]

   ▪17(37.2)

   ▪28(“2년 후”, 41.1 참조): 11년 후

   ▪30(41.46): 13년 후

   ▪38(42.1; 41.53 참조): 21년 후(형들은 아직 요셉을 몰라보다)

   ▪39(43.1, 45.6): 22년 후(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을 알리다)

       → 17세에 꾼 꿈이 이루어지다.

 

마침내 요셉과 그 형제들이 애굽을 무대 삼아 21년 만에 만난다.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나 요셉은 형들을 알아본다. 창세기를 읽어온 독자들은 그렇지 않지만 창세기의 사람들에게 있어 요셉은 이미 창세기 37장에서 17세의 소년의 때에 죽은 자, 곧 사라진 자다. 형들도, 그의 아버지 야곱도 요셉은 그때 죽은 자로 그렇게 잊혀졌다. 그리고 무려 21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요셉이 살아있는 것이다. ‘흉년이 야곱의 아들들을 애굽에 이르게 했고, 이것은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이어진다. 한편 그 형제들은 그를 보고 있으나 그가 요셉인지를 알지 못한다. 과연 요셉은 이 만남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갈 것인가? 이제까지 보여준 요셉과 동선(同線)에서 언행할까? 아니면 21년 전의 사건(37.18-28)에 대해 복수를 할 것인가? 다시금 창세기의 주도권이 요셉의 선택과 결정에 달린 것처럼 보이는 그림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는 이렇게 진행되어지고 있으나 모두가 다 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느냐 모르느냐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다.

   

 

마침내 그날이 오다.

 

   [만남의 미학]

   *타락 이후(에덴에서): 하나님 vs 아담

   *축복을 빼앗긴 20년 이후: 야곱 vs 에서

   *벧엘언약 20년 후(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 vs 야곱

   *형들에 팔려 헤어진 지 21-22(애굽에서): 요셉 vs 형들

   *3년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 이후(갈릴리에서): 예수님 vs 베드로

   *그리스도인을 핍박(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 vs 사울(바울)

   *주님과 나(세상 끝날까지): 28.20

 

성경에는 아주 재미난 여러 만남이 소개된다. 이는 다 놀랍고도 오묘한 섭리적 만남이다. 오늘 요셉과 형들의 만남이 그렇다. 이렇게 해서 꿈, 애굽(고난), 해석, 하나님, 아브라함 언약, 흉년으로 이어지는 전혀 이질적이고 만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고 연결되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지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처음에는 희미하고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일어나고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비가 올 것이라고 예언되었으나 이를 실행할 조각구름 한 점 없는 것과 같다. 이럴 때 우리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일을 시작하시고 때가 차매그것을 드러내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고 긴 이야기의 섭리행전에서 볼 때 지금 고통스럽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끝난 것처럼 생각된다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결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길고 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과에는 여러 개의 씨앗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씨앗 안에는 수 백, 수 천, 수 만 개의 사과가 들어있는 것과 같다. 돌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조각가에게는 이미 그것이 작품이듯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늘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한 것이 많다.

   

 

첫 번째 만남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6b)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8)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9a)

 

과연 이런 일이 상상이라도 되었는가 말이다: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6b) 이렇게 해서 요셉의 꿈은 성취된다(37.5-11). 형들은 흉년 때문에 곡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고, 총리 앞에 섰기에 그에게 절을 했던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를 요셉은 알고 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8)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9a)

 

얼마 만에 다시 생각하는 꿈이던가. 17세에 꾼 꿈(37.5-11)이 그의 나이 38세에, 그러니까 21년 만에 성취된다(41.46,53, 45.6,11). 꿈을 꾼 때보다 그 꿈이 성취되기까지가 더 걸린 셈이다. 참으로 모질고, 험하고, 질퍽한 고난의 여정이었다. 사실 형들은 그 꿈의 가지 끝을 끊어버렸다.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이루시려는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를 모질고도 불신앙적이게도 잘라버린 것이다.

이쯤에서 요셉의 꿈은 죽었고, 끝이 났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요셉은 절망하지 않았고, 17세에 꾼 꿈이 무려 2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생각하였다(9a).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는 이 꿈을 꾼 때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이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이 꿈이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이 미운 오리새끼처럼,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마구 뒹굴며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 요셉은 한시도 이를 잊지 않았고, 의심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꿈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었다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확실한 자들’(11)는 한 사람(야곱)의 아들들인 10 형제가 아니라 요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생 요셉을 죽이고 팔아버린 형들은 무려 21년 동안이나 자신들의 신실한 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다. 이들은 거짓말쟁이들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동생을 팔아먹은 인신매매범이고, 하나님을 거역한 패륜적인 사람들이다. 그것도 어떻게 동생을 인신매매 할 수 있단 말인가.

   

 

부스러기 묵상

 

동생 요셉을 팔아넘긴 것은 완전범죄였다.

최소한 요셉의 나이 17세 때부터 지금 21년이 지난 시점까지는 말이다. 10 형제들은 그 시간 동안 아버지에게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 무거운 죄의 짐을 가슴에 품고 이 기나긴 세월을 지내왔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어쩌면 가끔씩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날들을 맞을 때마다 영혼까지 아프고 시렸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이 모든 것을 퍼즐링하시기 시작하신다. 그런데 기근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하기 시작한다. 이 기근은 요셉(37.7)과 하나님(15.13-16)의 꿈을 이루고, 마침내 10 형제들의 죄의 짐과 고통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때로 하나님은 기근이든, 오병이어든, 한 나드 향유 옥합이든, 지팡이든, 빈그릇이든, 물맷돌이든, 수금이든, 소금이든... 이런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다.

이처럼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26-31에서 이처럼 고백한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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