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는 자, 요셉(창 41.17-57)

  20200907-08(묵상)

  

 

 

지혜 있는 자, 요셉

Gen. 41.17-57

  

   본문 관찰

 

   요셉 바로(16,25,28,32)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바로 신하들(38)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바로 요셉(39)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30세라(46).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53)

   

 

꿈은 이루어진다!

 

   ▪ 요셉이 17세의 소년으로서 ”(37.2a)

      ▪13

   ▪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30세라.”(41.46).

 

2년 후에’(1)로의 시작이 예사롭지 않았다.

요셉이 17세에 꾼 꿈 때문에 형들에 의한 애굽에 팔린 지 11년이라는 세월이 앞서 있어서다. 그리고 다시 꿈과 연결된 요셉이었으나 꿈은 요셉을 비껴나는 듯하다. 그리고 2년이 더 지났다. 여전히 요셉은 감옥에 갖힌 죄수의 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셉은 하나님을 고백한다. 놀라운 대목이다. 꿈 때문에 일그러진 요셉 아니었던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꾼 꿈 앞에서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다. 역시 요셉은 요셉이다.

   

 

바로 이야기(17-36)

 

   “내가 꿈에 다시 꿈에 보니”(17-24)

 

[1] 꿈과 해석

요셉 이야기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 역시 요셉처럼 꿈을 꾼다. 하지만 저희는 꿈을 꾸지만 그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해석하기까지다. 자신의 꿈은 물론 바로의 두 신하들의 꿈 둘과 바로의 두 꿈까지 모두 다다. 특별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꿈을 해석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사실 17세에 꾼 꿈이 자신의 인생을 곤두박질치게 했다면 13년의 고생살이에서 꿈을 저주하거나 가까이하지 않을 법도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엇인가. 요셉은 13년 전에 고향에서 꾼 꿈을 마음에 담고 지냈다는 것 아닌가(42.9a):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을 어떤 상황에서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16b)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25b)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28)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32)

 

요셉은 이번에도 바로의 꿈을 하나님과 연결한다.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는 놀라운 확신에 따른 이해와 해석이 아닐 수 없다(25b,32). 바로 <7년 풍년, 7년 흉년>이 바로가 꾼 꿈이라고 밝힌다. 애굽에서, 바로에게, 하나님이, 꿈을 통해 뭔가 일을 시작하신다고?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 놀라운 계획과 시간, 이 일이 요셉을 애굽에 종과 노예와 죄수로, 그것도 13년이라는 파란만장한 시간을 그렇게 묻어두시더니 급기야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시작하신다.

 

[2] 바로의 입에서 하나님이 고백되고 있음이 흥미롭다(38,39).

먼저는 신하들에게, 나중에는 요셉을 향해 하는 말에서다. 요셉은 바로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을 선포했다(41.16,25,32).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 모두는 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8b). 그런데 비천한 죄수, 그것도 애굽인도 아닌 히브리인이다. 가히 신들의 각축장이라 할 수 있는 애굽 바로의 궁전에서 듣도 보도 못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등장한 무명의 이방인(외국인, 야만인)의 거침없는 통찰력 앞에 애굽의 수장 바로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38)이라 칭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39)

 

이제 요셉의 꿈은 17년 전 헤브론(37.14)에서 시작되어, 애굽 보디발의 감옥을 지나 바로의 왕궁에 이르게 된다. 물론 요셉의 꿈은 아직 요셉의 심령에 심겨있다. 하지만 바로의 꿈이라는 옷을 입고 다시 9년을 애굽에서 자라갈 것이다. 여전히 요셉의 꿈을 철저하리만치 드러나지 않고, 마치 감추어진 보화처럼 이다. 어쩌면 요셉의 꿈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것과 무관할지도 모른다. 애굽의 요셉이 누명을 벗고 행복하고 형통한 삶을 비로소 살게 되는 것으로 열매 맺을 수 있어서다.

어떻든 요셉은 고향 헤브론에서는 꿈을 꾸는 자였고, 지금 애굽에서는 꿈을 해석하는 자다. 아직 13년 전에 해석하듯이 11 형제와 부모까지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다르게 보이는 꿈이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인가. 마침내 꿈의 사람 요셉은 형들이 밀어넣은 웅덩이 애굽의 노예 보디발의 가정총무 바로의 궁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까지 뻣어간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보이는 애굽과 왕 바로를 통해 꿈이 이루어지게 하는 쪽으로 인도해 가실 것이다. 애굽 왕 바로는 엉겁결에 거기에 화답하고 만다.

   

 

요셉 이야기(37-57)

 

   [요셉의 꿈과 해석]

   꿈1,2 17(37.5-11; 2)

   해석1 - 28(40.9-15; 41.1,46 참조)

   해석2 - 28(40.16-23)

   해석3,4 30(41.14-36; 46)

 

[1] 총리가 되다.

애굽 왕 바로는 자신이 꾼 꿈의 해석, <7년 풍년, 7년 흉년>에 대한 요셉의 조언(33-36)을 이루어낼 자로 요셉을 지명한다. 돌아보면 그는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37장에서부터 지나온 13년의 애굽 노예살이까지를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채색옷을 입고 꿈을 꾸던 때나, 형들의 모함에 팔려 애굽의 노예와 종이 되어 감옥살이에 이른 13년이나 한결같이 하나님 안에 있었다. 그는 비바람이 불 때나 맑고 화창할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꿈을 꾸고, 또한 꿈을 해석해 내는 건강한 사람으로 서 있다.

마침내 꿈은 그를 총리로까지 이르게 한다. 이제 그는 <7년 풍년, 7년 흉년>을 대비하여 애굽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과연 이 일이 그가 17세에 꾼 꿈과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에 있다.

한편 그는 바로의 중매에 따라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그의 나이 30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흉년이 시작되기 이전, 그러니까 그의 나이 37세 이전에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는다. 역시 그는 이름 안에 하나님을 잇는다(50-52). 비천할 때도, 존귀하게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2] 17세의 꿈이 성취를 향해 움직이다.

애굽과 헤브론이 연결될 수 있을까. 물론 아버지 야곱과 가족들, 그리고 그의 형제들 모두는 애굽의 소식을 모른다. 무엇보다 요셉과 관련해서는 완벽하게 그렇다. 하지만 이 뜻 밖의 흉년이 이 둘을 잇게 된다. 놀랍다. 어렵고. 힘들고, 기근이라는 환난이 요셉과 그의 꿈을 잇는 씨앗이 될 줄이야.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57a)

   

요셉은 생각했을 것이다. 애굽, 흉년, 양식, 각국 백성... 그렇다면 고향의 부모와 형제들도 필시 흉년을 견딜 수 없을 것이고, 필시 그러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올 것 아니겠는가. 노벨문학상이 빛나는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그의 역작 <요셉과 그 형제들 1-6>(2011, 살림)에서 요셉은 그의 고향에서 애굽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주요 통행로 담당관에게 가족들일 수 있는 행장을 보고하라는 전갈을 보냈다고 쓴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마도 요셉은 이 흉년이 17세의 꿈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브라함 언약(15)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셨음을 희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그 많은 나라에서 곡식을 사러 오는데 국무총리라는 고위공직자가 일일이 그들을 맞이하고, 곡식을 파는 일을 한다? 아마도 야곱의 가족일행이 왔음을 오늘로 하면 입국자 명단에서 확인하고 이 행렬을 총리대신 앞으로까지 이르게 했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았을까.

   

 

부스러기 묵상

 

요셉의 지혜’(39)는 시대의 트랜드를 읽는 지혜다.

그의 지혜는 신적(神的, 38) 지혜인데 이를 바로가 안다. 좀 더 머물러 있도록 하는 부분이다.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적인 지혜를 바로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25, 28, 32절에서 요셉이 이미 고백한 것에서 요셉이 요셉이게 한 이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 요셉은 거침이 없다.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면에서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해석과 그것의 주체인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결론이 다 이루어졌거나 드러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무려 최소한 7년은, 그러니까 풍년 7년은 더 지나야 해석의 진위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요셉은 이미 다 이루어진 꿈인 것처럼 말하고 선언한다.

요셉의 요셉됨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품어진다. 그 안에 요셉은 들어가 있다. 이러한 자신감과 확신은 놀랍기 그지 없다. 왜 더 그러느냐 하면, 아직 자신이 꾼 꿈 역시 어디 하나 이루어질 그 어떤 흔적도 없어 보이는 때이고, 앞서 얘기했듯이 바로의 꿈 역시 최소 7년은 오롯이 숙성되어야 할 그걸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럼에도 하나님 안에서 거침 없다. 꿈을 꾸게 하신 이도, 이를 이루실 이도, 이를 이끌어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어 확신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미 정답을 다 알고 문제를 풀어가는 듯하다. 7년 후, 이어지는 7년의 흉년기에 아버지와 형제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이 뿐인가. ‘애굽 온 땅’(45,46,54) 온 지면’(56) 온 세상’(57)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여기에 고향 헤브론(37.14)에 거주하는 가족들과 형제들까지, 이를 통해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실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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