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열국(列國)의 통로(창 9.18-10.32)

20200112-13(묵상)

  

 

 

노아, 열국(列國)의 통로

Gen. 9.18-10.32

  

   본문 관찰

 

   노 아(9.20-29): 홍수 이후

      노아의 벗음(20-27)

      노아의 죽음(28-29)

   노아의 세 아들(9.18-19, 10.1,32): 족보

   야벳(10.2-5)

      고멜 아스그나스 리밧 도갈마

      마곡 / 마대

      야완 엘리사 달시스 깃딤 도다님

      두발 / 메섹 / 디라스

   함(10.6-20)

      구스 스바 하윌라 십다 라아마(스바 드단) 삽드가 니므롯

      미스라임 /

      가나안 시돈 헷

        여부스 아모리 기르가스 히위 알가 신 아르왓 스말 하맛

   셈(10.21-31)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엘람 / 앗수르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욕단(알모닷 외 12)

      룻

      아람 우스 훌 게델 마스

   

 

노아의 후손들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9.19)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10.32)

 

노아는 홍수 이후에 350년을 더 살다가 950세의 나이로 죽는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실로 2,00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셈이다(5.3-5,32, 7.11, 9.28-29). 한편 아담의 타락이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듯이, 노아의 실수 역시 홍수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각각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의 묘한 대조가 묵상의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다.

한편 한 부모의 태에서 나서 홍수심판까지 한 길을 걸어가던 세 아들이 홍수 이후에 이처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을 읽어가면서 생각이 좀 복잡해진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셈과 함과 야벳으로 하여금 홍수 이전과 이후를 이처럼 갈라놓았을까.

   

 

노 아(9.20-29)

 

노아가 포도원을 만들어 본격적인 농업을 시작하면서 포도를 수확하고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든 것으로 봐 방주 후 어느 정도의 일정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포도주를 마시고 잠이 든 것을 두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좀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노아에게 어떤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음이다. 그는 이처럼 휘청거릴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이런 모습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6.8-9,22, 8.20-22).

그런데 그만 그가 어찌됐든 세 아들들로 하여금 전혀 다른 길()을 살아야 하는 예언을 하게 된다. 그것도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되고 있으니 좀 벙벙하다. 어떻든 노아의 예언은 세 아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서 그대로 반영되는데 과연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사실 좀 난처하다.

노아의 언행이 갖는 정당성의 유무를 가리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 듯하기에 이 부분은 일단은 접고, 이런 예언을 낳게 된 아들들의 언행을 좀 살펴보자. 먼저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보았고, 또 그것을 다른 형제들에게 소문을 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은 이를 듣고도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퍼뜨리지 않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수습한다.

이것이 아들들에게서 발견되는 다른 점이고, 이 다른 점이 동시에 다른 예언을 아버지 노아로부터 받게 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저들의 생애 속에 이 예언이 그대로 반영되고 만다. 성경이 노아의 언행의 잘잘못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들들(그것도 당사자인 함이 아닌 노아의 손자이자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언행에 그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22,25 10.6-20, 참고. 25.23).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든 노아의 예언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성취되는 것이 10장의 족보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까.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셈과 야벳처럼 언행하며 살아야겠고, 동시에 노아처럼 자녀들을 향해 언행하지는 않아야겠다.

   

 

노아의 세 아들(9.18-19, 10.1-32)

 

야벳과 함에 대해서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족보만으로 일단 만족해도 될 것 같다(10.1-20). 이들의 족보를 자세히 살펴본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성경의 관심이 셈의 족보(10.21-32, 11.10-32)에 있고, 때문에 셈의 후예들을 추적해 보는 것이 홍수 이후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하지만 함(가나안의 아비, 18,22 25 10.6-20)에 대해서는 앞으로 구약을 이해하는데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한 아비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 유독 한 아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아담에게서부터 그랬다. 아담에게도 가인과 아벨과 셋이라는 이름의 아들들이 있었다(물론 셋 다음에도 여러 아들이 있었지만 이름은 알 수 없다. 5.4). 하지만 셋이 여자의 후손의 자리를 이어갔듯이, 노아에게도 세 아들이 있지만 그들 가운데 셈에게 구속사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11.10-32).

 

   [노아 이후의 여자의 후손들 족보]

   10.1,21-25 | 노아 *//야벳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욕단

   10.25 - “에벨이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11.18-26 |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람/나홀/하란

 

그렇다면 셈의 후예들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본다. 이는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10.21a)라는 기록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셈 역시 아버지 노아의 세 아들(, , 야벳)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여자의 후손의 대()를 잇는 복을 얻듯이 그의 아들 아르박삿 또한 셈의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 아들이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런데 아르박삿의 증손(曾孫)인 에벨이 두 아들을 낳는데, 벨렉과 욕단 이들 둘 가운데 세상이 둘로 나누어진다(10.25).

이런 족보의 흐름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벨렉의 후예에서 아브람이 태어난다는 점 때문이다. 똑같은 한 배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지만 이렇게도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것이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를 읽어가면서 얻는 충격이자, 동시에 희망이다. 충격인 이유는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나 받은 유업()이 너무도 달랐음 때문이고, 동시에 희망인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영적 유산을 어떤 모습으로 이어 받느냐가 후손(자녀)됨의 삶을 질()을 결정한다는 점 때문이다.

축복은 노아의 아들이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부스러기가 아니다. 분명 아버지의 복은 자식들에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과연 누가 흘러오는 축복의 또 다른 하나의 통로가 되느냐 하는 점이다. 아담과 노아의 자녀들이 보여준 한결같은 공통점은 아들들 가운데 아버지의 복()을 이어가는 자식은 그가 어떤 삶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하며 살았느냐에 달려있었다.

때문에 누구의 아들인가도 중요하지만 그가 아들다움을 따라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창세기가 소개하는 족보들은 이 점을 보다 분명히 한다(5.1-32, 10.1-32, 11.10-32). 하나님은 그가 당신 앞에서 어떤 삶의 목적과 기준을 따라 살았는가를 보시는 것 같다. 세 아들 모두 홍수심판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을 넘어섰지만 그러나 홍수 이후의 삶은 달랐고, 더욱 자신들 이후에 이어진 후손들의 역사에서는 그야말로 근본 뿌리가 다른 족보를 남기는 것으로 흘러가고 만다.

   

 

부스러기 묵상

 

    아담 가인/아벨/*

     셋 → … → 노아 *//야벳

     셈 엘람/앗수르/*아르박삿//아람

     아르박삿 → … → 에벨 *벨렉/욕단

     벨렉 → … → 데라 *아브람/나홀/하란

     아브람 이스마엘/*이삭

     이삭 에서/*야곱

     야곱 르우벤//*유다/요셉(12형제)

     유다 → … → 이새 엘리압/아비나납/삼마//*다윗

     다윗 암논/길르압/압살롬/아도니야/스바댜/*솔로몬

 

한 아버지(선조)를 이어가는 아들(후손)들을 생각해 본다.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을 거쳐 다윗까지 열거해 본 것처럼 한 아버지에게서 여러 아들이 태어난 대표적인 가정들만을 살펴보아도 마치 한 지붕! 세 가족!’처럼 저들은 모두 다 각기 전혀 다른 삶으로 자신들의 삶을 끝맺고 만다. 그것도 함의 족보가 아니라 셈의 족보, 그러니까 여자의 후손의 족보에서마저 그렇다. 생각해 볼수록 긴 숨이 절로 나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에벨의 두 아들, 벨렉과 욕단에 대한 묵상을 조금 더 해 본다. 이들에 대한 족보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10.25ab)이라는 말씀이 더 그렇다. 이때가 세 아들들의 혼란스러운 영적 이전투구(泥田鬪狗)에 해당하는 때라면 홍수 후 불과 100년 만에, 그리고 노아의 후손 3-4() 만에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창10.6-10 | 구스 니므롯

                      -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10.10 11.2,9)

   창10.21-25 |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욕단

                        -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11.25ab)

 

바로 이때 에벨의 아들 벨렉은, 그러니까 노아 벨렉으로 이어지는 여자의 후손의 거룩한 족보를 향해 믿음의 행보를 내딛는다. 어찌 되었건 셈과 함과 야벳은 모두가 다 여자의 후손가운데 걸출한 삶을 살았던 노아의 아들들이었다. 이들은 홍수심판으로부터 건너뜀을 받아 구원을 받고 홍수 이후의 세상을 열어가는 선조들이 된다. 그런데 불과 1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저들의 삶을 잠깐 동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게 꾸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셈의 후예들만이 세상과 다르게 살아간다. 바로 그 가문에서 벨렉이 나오고, 후에 아브람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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