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또 하나의 시작(창 8.1-22)

20200110(묵상)

  

 

 

노아, 또 하나의 시작

Gen. 8.1-22

  

   본문 관찰

 

   하나님이 기억하사 바람을 물이 줄어들었고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까마귀를 또 비둘기를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저녁 때에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입사귀가 있는지라

   60111일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이 쉬지 아니하리라

 

     [구조2] 노아홍수 이야기(6.9-9.29)

     A 노아와 땅(6.9-12)

       B 하나님의 말씀과 노아의 반응(6.13-7.10): 방주에 들어가라!

         C 물의 넘침(7.11-24)

           X 하나님이 기억하사”(8.1a)

         C’ 물의 감함(8.1b-14)

       B’ 하나님의 말씀과 노아의 반응(8.15-9.17): 방주에서 나오라!

     A’ 노아와 땅(9.18-19)

     홍수, 그 이후 이야기(9.20-29)

   

 

홍수 이후

 

노아는 홍수심판과 함께 만 1년을 방주 안에서 지냈다.

홍수는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217일에 시작되어 150(5개월) 후에 방주가 다시 땅에 자리를 잡고, 산봉우리가 보이고 땅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노아의 나이 601세 되던 해 227일에 마침내 땅이 말랐고, 마침내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게 된다(7.11,24, 8.4,13-14). 세상은 다 물로 심판을 받았으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 그리고 방주에 들어간 모든 생물들은 다 구원을 받아 새로운 시대 앞에 서게 되었다. 비록 짧은 1년이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역사가 진행된 세월이었다.

   

 

방주에서의 1(1-17): 물의 감함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곧 그 달 17일이라”(7.11a)

   “7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8.4)

   “10월 곧 그 달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8.5)

   “60011월 곧 그 달 1일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8.13)

   “227일에 땅이 말랐더라.”(8.14)

 

방주로 들어가는 모든 동물들의 행렬이 눈에 선하다.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 같다. 마침내 120여 년이라는 장구한 시공(施工)을 거쳐 방주가 완성되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노아의 인도로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한편의 드라마였으리라. 이처럼 영혼도 없고, 복음을 들은 것도 아닌, 그래서 구원도 없는 동물들과 새들에 불과한 미물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구원의 방주에 하나 둘 들어갔다.

하지만 이에 반해 아담 에노스로 이어지는 여자의 후손들 가운데 노아와 그의 가족들 외에는 그 누구도 방주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지 못했다. 처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심판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실 때부터 방주가 완성된 때까지 장구한 세월(120)이 흘렀음에도 누구 하나 영적(靈的)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가. 가인의 후예들(4.10-24)이야 그랬다손 치더라도 기라성 같은 족장들(5)들의 후예들의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로 이어지는 자손들 가운데서 누구도 거룩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반응하지 않았다. 미물(微物)에 불과한 동물들도 반응하는데 .

한편 방주의 문이 닫히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하루, 이틀, 무려 40일을 멈추지 않고 내렸다. 그리고 세상은 150일 동안 물속에 잠겼다. 방주 밖은 심판이요, 방주 안은 구원이다. 이 둘은 동시에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마침내 노아의 신앙이 승리한 순간이다. 1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오직 약속(언약, 6.18-19) 하나 붙들고 인내와 믿음으로 이겨왔다. 과연 누가 어리석었고, 상식을 벗어난 삶을 살았고, 무지했는가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홍수 이후 세상에 대한 새 소식은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11)에서 시작되었다. 노아는 아마도 이를 보면서 홍수심판 이후에도 하나님은 세상을 노아 자신과 식구들, 그리고 방주에 머물고 있는 생물들의 터전일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노아의 마음을 아셨을까. 노아와 함께 생존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을 보시며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17b)

 

이제 방주의 모든 생존자들이 살아갈 세상은 다시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고, 바로 이 세상에 생육하고 번성할 생물들이 방주를 기다리고 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도 그랬듯이 방주 밖으로 하나 둘 쏟아져 나오는 모습들 역시 장관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아라랏산(지금의 터키 동북부에 위치. 기회가 오면 다시 터키에 가고 싶다.)에서 새롭게 시작될 인류와 세상의 모습, 이 다음에 천국에서 [아이맥스] 화면으로라도 보자.

  

 

노아의 번제(18-22): 하나님의 말씀과 노아의 순종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4.4a)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20)

 

이제 더 이상 세상에는 가인의 후예들은 없다. 오직 노아와 그의 여덟 식구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네피림도 없고, 사람의 딸들도 없다. 가인의 후예로 대표되는 사람의 딸들과 셋의 후예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아들들 사이에 벌어진 타락의 향연은 홍수심판으로 일단락되고 이제 세상은 노아의 후예들이 펼쳐갈 새로운 출발을 내딛는다(6.1-7.22 7.23-8.22). 참으로 흥분되고 기대에 찬 순간이다.

창세기 5장의 [‘여자의 후손족보](3.15)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아담 에노스로 이어지는 거룩한 가문의 모든 후손들 역시 가인의 후예들과 방불한 심판(멸망, 죽음)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여자의 후손됨이라는 은총의 길을 걸어가는 복을 받는다.

한편 1년이라는 시간을 방주에서 보내면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무엇을 했고, 또 생각하며 살았을까. 아마도 함께 방주에 들어간 모든 생물들을 돌보는 일을 했을 것이며, 여전히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9)라는 탁월한 영적 이력(履歷)을 소유한 노아를 통해 지난 1,700여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듣고, 그러면서 홍수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준비하며 지냈을 것이다.

하나님은 지난 1,700여년이라는 세월(홍수가 있었던 때는 1,656년 무렵이다)을 노아와 맞바꿀 만큼 노아를 주목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다시 세상은 그만큼의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창조 타락 심판이라는 당신의 [에덴언약](2.16-17)을 집행하신다. 하지만 심판으로 끝이 아니라 심판은 다시 새로운 당신의 세상을 열어가는 하나의 시작이 되고 있음이 특별하다.

이렇듯 노아에게는 아담의 사명이 새롭게 주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홍수심판 이후의 노아시대는 결코 만만찮은 소명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노아는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이전 선조(족장)들의 가정 역시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에 자신의 가족들 또한 홍수심판 이전과는 다른, 그래서 구원 받은 은혜를 보답하며 복되게 살아가는 일에 성공하게 되기를 열망했으리라.

이것이 그가 방주 후에 행한 예배에 잘 나타나 있다(20). 놀라운 것은 셋의 제사 이후에 처음으로 소개되고 있는 제사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추측컨대 아마도 아담은, 그러니까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4.4)던 것을 셋과 에노스에게, 그리고 에녹과 그의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쳤을 것이고, 그 역시 기회가 되는 대로 이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헌신했을 것이다.

노아는 영적으로 혼미한 세상 속에서 단지 형식만 남아 있는 제사를 보고 배우면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성공하며 살았던 선조들의 신앙세계를 추억했을 것이고, 그는 홍수 이전부터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었을 것이다(6:9). 이렇게 해서 마침내 역사는 다시 아벨(, 에노스, 에녹, 4.4,25,26, 5.21-24)의 예배를 회복하는 자리로 되돌아간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21a) 어떻든 창세기의 저자(모세)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까마득한 과거의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까지를 알고 있음이 흥미롭다.

   

 

부스러기 묵상

 

노아의 가정을 생각해 본다.

그가 세 자녀를 낳기 105년 전에 아버지 라멕이 죽는다. 그때가 노아가 결혼을 했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그는 그의 나이 500세가 되도록 자녀를 낳지 않고 있었다. 노아의 선조들은 보통 65-187세가 되는 때에 자녀를 낳기 시작한 것에 비교하자면 좀 특이한 게 사실이다. 그것도 아담과 셋과 에녹이 이미 죽고 난 뒤에 태어나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9)라는 탁월한 삶을 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아담의 손자 에노스는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6b)- 점차 희미해져가는 여자의 후손의 영광이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그 누구보다도 깊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노아는 자녀를 낳을 생각도 없고, 세상은 점차 창세기 6장의 타락으로 휘청거리고 있었으니, 이런 혼돈의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고생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때에 노아의 나이 500세가 되기 105년 전인 1,451년에 아버지 라멕이 죽는다. 노아는 이제야 정신이 들었을까. 자기 혼자 독야청청(獨也靑靑)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다가 자신의 대()에서 여자의 후손의 족보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되면 . 따라서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5.22)듯이 노아 역시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6.9)며 자녀를 낳는 일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참담한 타락한 세속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아들들로 양육하며, 동시에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세상으로 향한 창을 닫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문을 열어 놓고 살아가는 준비된 딸들을 며느리들로 맞는 일에 헌신한다. 자신 하나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도 보장(장담)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족들에게 영적(靈的)인 영향력을 끼치며, 그것도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까지, 또한 복된 믿음의 혼인을 통해 자녀들을 축복하는 일까지 성공하며 살아가는 노아,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기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가.

앞서 여러 차례 묵상했듯이 노아가 태어나고 홍수심판이 일어나기 600년 그 어간에 에노스부터 부친(父親) 라멕까지 하나 둘 눈을 감는다. 아마도 저들은 죽어가면서 노아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거룩한 여자의 후손의 계승을 부탁했을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4.38-39)

 

하나님을 떠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이, 그리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증거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본질이다. 노아는 지극히 당연한 길을 따라 살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홍수심판이라는 저주를 지나가게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방주의 1년은 유월절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노아처럼 살아야겠다.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따라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어리석음을 끊고, 녹슬어가는 거룩의 밧줄을 다시금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해야겠다. 방주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유월’(지나가다)하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임을 잊지 말자. 자칫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유한한 가치들을 붙들고 있다가 방주의 문이 닫히는, 비가 오고 심상찮으니까 그제서야 방주문을 두드리며 기회를 달라고 통곡하는, 마치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파산하기 이전에, 바로 지금 이 기회의 시간을 사야겠다. 세상은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노아의 뒤를 따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영혼의 끈을 불끈 동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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