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심판, 방주구원(창 7.1-24)

20200109(묵상)

  

 

 

홍수심판, 방주구원

Gen. 7.1-24

  

   본문 관찰

 

   홍수주의보에서 홍수경보로(1-12)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지금부터 7일이면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가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8식구가)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갔고

     7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구원의 방주(13-24)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다 죽었더라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역사적 홍수심판

 

마침내 천하의’(the whole heaven, 7.19) 역사적인 홍수 심판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120년 동안 구원의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6.3). 노아에게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이점은 당시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방주가 지어지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당신이 그 시대에 방주 옆에 살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라. 서로 이야기해 보자: “홍수, 홍수 좋아하네?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간간이 비가 왔을 것이다. 그때마다 정말 노아가 말한 것처럼 이거 심판 아니야?”라고 긴장하다가도, 다시 아침 해가 떴습니다!”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연현상쯤으로 받아들였으리라. 비는 언제나 오는 법! 그러기에 전도! 그거야 자주 받죠! 그러나 설마 그럴리가 있나요?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오늘도 주의 재림의 날이 임박한 징조는 세계 도처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노아시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방주(교회, 구원, 심판, 천국)’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예뻐지고, 대학 진학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차 타고, 넓은 아파트 장만하고, 해외여행이나 멋지게 다녀오고, 등등 오직 이 땅의 것들에 대해서 목숨 걸고,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살아간다. 곧 홍수심판이 올 것임에도 불구하고다.

 

 

홍수주의보에서 홍수경보로(1-12)

 

노아의 방주를 현대의 조선술로 환산해 보자. 크기: 길이 137m(미식축구장의 1.5), 23m, 높이 14m, 이는 1844년 영국 조선술 1,000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그레이트 브리튼호()의 비율과 같다. 총 톤수: 13,960톤으로 화물차량 522대의 용적과 맞먹는 크기이다. 용량: 현재 육상동물의 종류는 총 17,600여종인데, 정한 동물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 함수 한 둘씩(7.2-3) 계산하면 45,000마리가 된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의 평균 크기는 ’()보다 적다. 그렇다면 표준 화차 1량에 대략 240마리의 양을 운반할 수 있다고 볼 때, 방주는 125,280마리를 실을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노아의 방주가 지어지는 긴 기간과 그것이 세워져가는 기간, 또한 완성되어 세상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120년 동안이라는 세월은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의 기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처럼 긴 시간동안 인내하시며, 초청하셨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은 구원의 방주인 하나님의 세상 앞에 교회를 세우셔서 구원에로의 부르심이라는 은총을 베푸신다. 마치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와 같이,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들로 우리를 단장하신다. 주의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구원의 방주라고 할 수 있는 교회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방주가 지어진 120년이란 기간을 당시 사람들의 수명에 비교해 보자. 이것은 얼마의 기간 동안 그들에게 전도의 기회였는가를 알려준다(‘수평비교’). 창세기 5장의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9.29) 9명의 평균 수명은 약 915세이며, 그 가운데 120년 동안 전도한 것이다. 평생 1/7.6에 해당되는 시간동안 전도를 받은 것이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을 80세로 잡을 때, 위의 산출법과 대비해 보면 현대인은 약 10.5년 동안 전도를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120(6.3)7(7.4,10)이 갖는 이중적인 메시지는 사랑과 심판이라는 동시상영의 예고편이다. 노아가 지나는 ‘120년 동안의 고독은 참으로 인고(忍苦)의 나날들이었다. 방주의 모양이 점점 분명해질수록 하나님의 심판의 날도 분명해짐을 아는 노아로서는 시간시간 심판의 날이 사랑과 구원의 날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와 전도의 몸부림이 있었으리라! 오직 방주 외에는 하나님의 홍수심판을 피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것을 노아는 굳게 믿었다.

주목할 것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다(24.36-39, 17.26-27, 벧후2.5, 3.10). 홍수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방주의 위로, 산으로, 높은 곳으로, 지붕 위로, 동굴로 피했으리라! 그러나 점점 차 오르는 물을 보면서 그들은 이제야 현실로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으리라! 그렇다. 회개의 기회(‘’)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마지막 남은 7, 7일이 지나면 이미 약속하신 대로 물로 죄악을 심판하시리라. 여전히 아무 변화 없는 인생들을 보면서, 묵묵히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노아를 보라!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굳굳하게 행할 뿐이다. 방주의 문은 마지막 7일 동안 열려있었다.

   

 

홍수 심판, 구원의 방주(13-24)

 

홍수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몰아넣는다. 홍수가 오기 전에 배들 만들라!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라! 오늘도 주님은 인생들을 예수 안으로(in christ) 부르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11.28-30)

예수님만이 가장 안전하다.

 

   “누구든지 주(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2.2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

 

마침내 방주의 문이 닫힌다(16). 하나님께서 닫으신다. 이제 이 문은 홍수 이후, 다시 새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방주 안은 구원이지만 방주 밖은 사망이다: “땅 위의 생물은 다 죽었으니 육지에 있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다 죽었더라.”(21-22) 하지만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23b). 심판이고 구원이다.

노아는 홍수심판과 함께 만 1년을 방주 안에서 지냈다. 홍수는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217일에 시작되어 150(5개월) 후에 방주가 다시 땅에 자리를 잡고, 산봉우리가 보이고 땅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노아의 나이 601세 되던 해 227일에 마침내 땅이 말랐고, 마침내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게 된다(7.11,24, 8.4,13-14). 세상은 다 물로 심판을 받았으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 그리고 방주에 들어간 모든 생물들은 다 구원을 받아 새로운 시대 앞에 서게 되었다. 비록 짧은 1년이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역사가 진행된 세월이었다.

   

 

부스러기 묵상

 

노아의 전도는 그렇다면 실패인가?

이 말은 하나님의 전도는 실패인가라는 말과 같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가족 외에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는 많고 적음의 수학(數學)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한 마리의 잃은 양에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있으시다(18.12-14). 하나님은 지금도 한 사람, 바로 당신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형제여! 자매여!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라. 예수 안에 놀라운 일이 있다.

반복되이 묵상하는 것이지만, 창세기 5장의 족보에 등장하는 믿음의 기문들의 후손들 가운데 그 누구도 방주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별히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던 에녹의 후손들 가운데, 그리고 이 족보는 또한 아브라함과 다윗을 지난 여자의 후손곧 메시야가 오시는 가문이지 않은가. 그런데 노아와 그의 식구들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실상 앞에 응답하지 않았다.

아담이 930년을 살면서, 그리고 그의 아들 셋과 손자 에노스로 이어지는 기라성 같은 믿음의 후손들의 족보에서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 전하신 심판과 구원의 이중주 앞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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