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은혜입기(창 6.1-8)

   20200108(묵상)

  

 

 

노아, 은혜입기

Gen. 6.1-8

  

   본문 관찰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죄행참(1-6)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의 혼인(1-4)

      하나님의 말씀(5-6): 심판 vs 은혜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보고”(2)

   “여호와께서 보시고”(5)

   “여호와께서 내가 보았음이니라.”(7.1)

 

   “여호와께서 사람의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5)

   “여호와께서 마음에 근심하시고”(6)

 

1,600여 년에 대한 하나님의 추억은 매우 비관적이다.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더라!”(1.31) 하셨던 동일하신 하나님이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 계신다. 무엇이, 누가 하나님을 이처럼 되게 만들었는가. 왜 그러실까. 모두가 다 사람 때문이다. 아담 이후 사람의 죄악이 세상을 뒤덮고 있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하기 때문이었다(5). 죄는 이렇듯 아담(에덴, 3.6) 가인(들판, 4.8) 인류(세상, 5)로 점차 확장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죄악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본문 1-4절은 신학적으로 해석학적 난제(難題)를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이 누구며(2), 역시 네피림’(4)은 누구인가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그것이다. 어떻든 세상은 성(SEX)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파국을 맞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진단,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과 상관없이 심판으로 치닫고 있는 인류의 비참함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1,600여년이나 묵은 죄

 

   “여호와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6)

 

아담의 창조에서 노아가 출생하는 때까지의 연대기를 계산해 보면,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아담 874세 출생하고 그가 182세 때 노아를 낳는데 그때가 아담 사후(死後) 126, 그러니까 1056년이다(5.5,28). 그리고 노아가 500세가 된 후에 아들들을 낳았으므로 그때가 1,556년이다(5.32). 그렇다면 6장이 갖는 시간표는 세상이 창조되고 1,600여년이 지났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세월이 지나오는 동안 인류는 이미(already) 하나님의 진단처럼 심판을 예고 받을 수 밖에 없을 만큼 죄악이 지배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5장에 나타나는 여자의 후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아담의 아들 셋과 손자 에노스부터 노아의 아버지 라멕까지 기라성 같은 여자의 후손을 대표하는 자들이 노아가 태어나고 그가 아들들을 낳는 그 사이에 죽었는데(셋은 노아가 태어나기 4년 전인 1,052년에 죽는다), 이들 뿐만 아니라 저들의 슬하에서 태어나고 자란 후손들이라면 세상(가인의 문화, 4.10-24)에 동화되지 않고 거룩한 씨다움을 유지하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희망으로서의 좌표를 따라 살만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지만 족장들은 물론 그들의 후손들 모두가 다 한결 같이 죄를 먹고 마시며 살았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7b)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3.16a)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3.17b)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b)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3.23)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4.11b-12)

   “아담은 930세를 살고 죽었더라.”(5.3-5)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7)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더듬어본다. 지금까지의 심판은 아담의 타락에 따른 결과적인 것이었지만 노아에게 계시하신 심판 메시지는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통째로 쓸어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절망이라는데 이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7). 이 모든 것이 다 사람의 죄악과 부패한 마음의 모든 악한 생각들 때문이다. 창조 타락 심판은 생각보다 빨리 인류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1,60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담, 특별히 셋의 후예들(5)은 아담과 그 후손(족장)들을 통해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을 계속해서 공급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담은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태어나 그의 나이 56세가 되도록 생존해 있었고, 특별히 노아가 500세가 된 후에 아들들을 낳기 전에 아담의 손자 에노스부터 자신의 아버지 라멕까지 모든 족장들이 생존해 있었던 때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세상이 아무리 타락으로 말미암은 죄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할지라도 여자의 후손’(5)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만큼은 세상을 이기며, 특히나 세상이 성(SEX)을 상품화하는 타락의 극치를 보인다할지라도 죄악의 파도를 거스르며 살 수 있는 영적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아담으로부터 전수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 생생하게 전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에녹의 삶이 이를 증거해 준다(5.21-24, 11.5).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나님은 지금 진노의 포도주’(18.3)를 준비하고 계시니 말이다. 거룩하게 살아보려는 여자의 후손들의 눈물과 절망과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자기가 낳은 자녀들마저 세상의 법칙을 따라 마음과 생각과 몸까지 악()을 물 먹듯 마시며 살아가는 모습, 이것이 5장에서 6장으로 넘어오는 보이지 않는 길목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절망이 선언되고 만다(7).

 

 

심판, 그 예고편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3b)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8)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7)는 하나님의 심판선언에 불을 당긴 것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성(SEX)의 상품화, 즉 성생활의 타락에서부터였다는 점이다(1-4). 어렵고 난해한 단어나 이야기는 다 빼고, 1-4절의 분위기를 종합해 보면 남자가 단지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급기야 육체가 되어 버렸다.

, 비록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주어진 사명(3.16-19)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사이의 관계(만남)가 계속 이어져왔었다(5). 하지만 아담()의 후예들은 가인의 후예들처럼 살아가게 됨으로써 하나님이 기대하신 남녀의 역할과 기능을 버렸다. 그리고 오직 본능적인 욕망과 쾌락을 쫓아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2b) 삼았다. 그리하여 성과 속의 둑이 무너지고, 세상의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이 서로 섞이고, 세상은 급속도로 사람의 딸들이 낳은 사람의 아들들로 가득 넘쳐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나님의 탄식은 마침내 타락한 인류를 겨냥한다(3 7). 이때가 노아가 500세가 된 후이고 -물론 세상은 그 이전부터 이미 말세였다(11)- 홍수심판은 그의 나이 600세 때의 일이다(5.32, 7.11). 한편 노아에게 홍수심판을 알리신 후 그것이 집행되기까지는 120년의 세월이 주어졌음이 눈에 띈다(3b). 그렇다면 노아가 아들들을 낳기 이전에 하나님은 홍수심판을 예고하셨고, 심판 이후를 새롭게 이어갈 여자의 후손을 새로 태어날 그의 후손들에게 이어가도록 하셨다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온 인류 가운데, 특히나 모든 셋의 후손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 노아를 주목하셨다. 그리고 그의 씨를 통해 120년 이후의 역사를 새롭게 계획하셨다. 뒤에서 더 묵상하겠지만 이 120년이라는 세월은 구원과 심판의 쌍곡선이다. 방주가 지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점점 완성되는 것은 이렇듯 두 가지 메시지가 동시에 흐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노아시대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특별히 셋의 후손들 가운데 -이들 가운데는 에녹의 아들들도 들어있다- 노아의 식구들 외에는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보지(믿지) 못했다. 120, 생각할수록 묘한 느낌이 든다.

   

 

부스러기 묵상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8)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은혜 베풀 자를 향한다.

핵폭탄(核爆彈)보다 무서운 서슬 퍼런 심판이 예고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눈은 노아를 주목하고 계신다. 참으로 놀라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것이 노아시대와 방불한 때를 살아가는 우리의 희망 아닌가. 온 인류가 첫 번 경험한 심판 때에도 이를 넘어갈 수 있는 사람, 그가 노아였다. 도대체 그가 어떻게 살았길래 하나님은 그를 심판의 용광로가 아닌 은혜의 품에 안기게 하셨을까.

이를 다시 노아의 시각에서 드려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는 아무리 시대가 악하고 패역해도 하나님께 마음을 정조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이 악하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노라며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으로 하나님마저도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또 다른 죄다. 모두가 다 세파에 휩쓸려 여자의 후손이라는 당당하고 복된 영광을 욕되게 하고, 가문(家門)의 수치로 살아가고 있을 때에도 노아는 아직 살아있는 전설인 에녹, 하나님과 동행하며 세상을 역류하며 살아가는 그에게서 하나님을 보았을 것이다(5장의 연대기를 계산해 보면, 에녹은 노아가 태어난 후 31년 후에 승천한다).

그는 세상이 아무리 패역하고 죄로 관영한다 할지라도, 그래서 하나님이 희미해지고, 급기야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세상의 방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여자의 후손안에 전해오는 하나님의 실존과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믿고 신뢰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 120년 후로,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닌 가장 확실한 증표(sign)인 노아의 정체다.

노아, 그는 패역하고 음란한 세상에 당당하게 하나님의 깃발을 휘날린다. 노아의 깃발 앞으로, 아니 노아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그를 따라 이제 펼쳐질 120년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묵상해 본다.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쌍곡선이 보인다. 나는 과연 어느 곳에 서 있는가.

 

  

제목 날짜
노아, 열국(列國)의 통로(창 9.18-10.32) 2020.07.21
무지개를 보라!(창 9.8-19) 2020.07.21
노아, 복(福)받기(창 9.1-7) 2020.07.21
노아, 또 하나의 시작(창 8.1-22) 2020.07.21
홍수심판, 방주구원(창 7.1-24) 2020.07.21
노아, 방주짓기(창 6.9-22) 2020.07.20
노아, 은혜입기(창 6.1-8) 2020.07.20
아담, 800年의 희망찾기(창 5.1-32) 2020.07.20
아담, 130年의 고독끊기(창 4.16-26) 2020.07.20
살인(殺人)의 추억(창 4.1-15) 2020.07.20
화염검(창 3.20-24) 2020.07.19
여자의 후손이신 메시야(창 3.9-19) 2020.07.19
전적타락.全的墮落(창 3.1-7) 2020.07.19
에덴동산(창 2.4-25) 2020.07.19
인간창조.人間創造(창 1.24-2.3) 2020.07.18
천지창조.天地創造(창 1.1-23) 2020.07.18
창세기 맥잡기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