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타락.全的墮落(창 3.1-7)

20200105(묵상)

  

 

 

전적타락(全的墮落)

Gen. 3.1-7

  

   본문 관찰

 

   사탄(, 1a; 12.9 참조)

     → 여자(1b-6a)

       → 남자(6b)

         → 패배와 그 결과(6-7)

 

      [구조2] 에덴전후사(2.4-4.26)

      에덴에서의 아담(2.4-25): 창조

      에덴을 떠나는 아담(3.1-24): 죄와 심판

      에덴 밖에서의 아담(4.1-26): 후손

  

 

범죄(犯罪)한 인간

 

하나님은 창조하셨으나 인간은 타락으로 응답한다.

이런 걸 가리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 하겠지! 이보다 더 큰 역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창조가 아름답고 위대한 것만큼 타락은 비참하고 치명적이다. 타락한 인류의 역사가 마침내 시작된다. 놀라운 것은 인간은 범죄한 후에 먼저(곧바로)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버린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 오셨다. 인류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작점이 된 것, 참 많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을 저버린 첫째 사람들(아담과 하와)이다. 모든 것을 다 주셨음에도 단 하나 금하신 것까지를 탐하는 사람,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단 하나의 금지명령을 지키는 일에 아름다운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사용하는 것에 실패한 사람, 그리하여 하나 때문에 전부를 다 잃어버린 사람,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된 첫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다. 이들은 돕는 배필이라는 상호관계마저도 지켜내지 못했다.

   

 

사탄의 유혹(1-5)

 

   뱀의 질문(1)

   하와의 대답(2-3)

   뱀의 반론(4-5)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

 

   *여자 - 하나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들은 자를 먼저 공격한다.

   *참으로 - 믿을 수 없는 풍문을 들은 것과 같은 미묘한 감정을 낳는다.

   *모든 - 하나님의 언약(계명)을 왜곡시킨다.

   *먹지 말라! -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였느냐? - 의문으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셨느냐? - 하나님의 명령질문형으로 만든다.

   *결코 -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는 일을 확신케 한다.

   *죽지 않으리라! -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심판의 요소를 부인한다.

   *하나님 같이 되리라! - ()쪽 진리이다(+ 3.22).

   *하나님이 아신다! - 하나님의 성품을 나쁘게 왜곡시키고 악평한다.

 

에덴과 사람을 통해 크신 일을 이루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꿈에 도전장을 낸 것은 바로 사탄이었다. 사탄은 늘 가장 결정적인 시작을 알리는 곳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첫째 아담에게 그랬듯이 사탄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대목에서도 둘째(마지막) 아담인 예수님께도 교묘하게 거간꾼 역할을 자임하였다(4.1-11). 메시야이신 성자 예수님께 이 정도였으니 피조물인 첫 사람 하와에게야 두 말 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탄은 창조와 더불어 진행되기 시작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기 위해 사람을 택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이후에 출생하여 살았던 욥을 신뢰하셨을 정도라면 타락 이전을 살던 완전한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은 억지스럽지는 않다. 얼른 생각해도 아담과 하와는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대접을 받을 충분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하와와 아담은 한 순간에 그만 사탄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언어’()가 갖는 힘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언어(말씀)는 세상을 창조하고 첫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탄의 언어는 하와와 아담을 타락시키고 인류를 죄 아래 죽게 만들었다. 언어는 생각과 연결되고, 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하나님으로 가득한 사람들이고, 아직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바 되었으므로 하나님과 교제(교통)하는 일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사는 저들이었다. 죄로 말미암아 양심과 심령이 무디어지고, 그래서 하나님과 분리(단절)된 죄인들이야 깜박깜박 하나님을 잊고 살면서 죄를 물마시듯 하면서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자족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하와와 아담은 달랐다. 하와가 먼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타락하여 죄 아래로 추락했을지라도 아담은 아직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역시 죄인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버리고 죄인이 되는 길을 한번 고민 없이 당당하게 맞는다. 완전한 것이 불완전하며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 영 아쉽고 그것만큼 혼돈스럽다.

   

 

패배 vs 결과(6-7)

 

   범죄(6)

   범죄의 결과(7)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과의 신뢰를 완전(완벽)하게 깨뜨림으로써 불신앙()으로 추락하고 만다(14.15). 이로써 인간은 말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육체적인 욕망에 우선권을 두었다(요일2.16). 마침내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7b) 창조 타락 심판은 하나님이 이미 타락 이전에 경고하신 사람과의 첫 언약이었다. 하지만 첫째 아담인 인류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해 버리고 만다.

마침내 창조의 섭리는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인간이 하나님의 꿈을 가차 없이 무너뜨린 것, 놀랍다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비극이다. 선악과(善惡果)를 먹고자 했을 때 상상했던 꿈은 온대간대 없고 남은 것이라곤 부끄러움 때문에 몸을 나뭇잎 치마로 가린 것뿐이다. 벌거벗은 몸뚱아리 밖에 가릴 줄 모르는 인간, 고작 이것 하자고 하나님을 배반하면서까지 악()을 도모했더란 말인가!

하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모르고 있었거나 잊어버리고 있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으나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말씀(언약)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리고 반드시 죽으리라!”(2.17)는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3)는 말로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버릴 정도였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언약)에 대한 권위와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 맞게 될 결과에 따른 불순종()의 심각성을 간과해 버린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사탄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다.

동시에 또한 사람은 사탄의 말을 무기로 하나님을 공격했다. 사탄과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도전하는 일에 공범이 되었다. 잘못된 동거가 낳은 결과는 온 인류를 불행의 출발점 앞에 서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토록 놀라운 창조의 섭리와 역사마저 뒤죽박죽 될 정도로 죄()의 파괴력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인간의 단 한 번의 실수와 죄를 그대로 덮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만큼 죄를 싫어하시는 분이심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대목이다.

마침내 창조의 질서는 처참하게 일그러져 버렸다. 인간의 전적타락(全的墮落)이 가져온 결과다. 하나님 없이 사람들끼리 돕는 배필로 살아도 된다거나, 사탄과 짜고서 하나님을 협공해도 된다는 그런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데 태초에 천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특히나 사람을 지으시고는 심히 좋아 하셨던 하나님에게 한 일이라는 게 고작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이 전부였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쩌셨을까 생각하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머리 검은 짐승 치고 믿을 만 한 놈 없다더니(아담의 머리카락이 검은 색이었나?), 아마도 이런 격언은 태초에 에덴에서부터 시작된 자조 섞인 말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아담에게 돌을 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담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는 게 송구하고 낮 뜨거운 일인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약속(언약, ) 하나 지키지 못한 게 그렇게도 큰,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죄인가에 대해 의문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담을 동정하면서 나의 죄를 물타기 하려는 것도 역시 아니다. 그저 타락으로 에덴을 망쳐버린 아담을 생각할 때 좀 슬프고 뭔가 씁쓸해서 해본 생각들이다.

아담 이야기를 실컷 하다보니 나를 돌아보는 일이 소홀해진 것 같다.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찬송가 279장 후렴 )를 가장 먼저 불러야 할 죄인으로서 또 다른 한 죄인을 도마 위에 놓고 보니, 바로 그 자리가 내가 올라가야 할 자리인 것을 희미하게나마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언약, )의 엄중함, 다른 그 무엇보다 그분의 말이 얼마나 예리하고 날카로운가를,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食言)치 않으시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다른 게 무섭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따라 준행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자 행복의 기준임을 다시금 새롭게 각인해 본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믿음을 나의 허점과 약점과 죄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알량함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실수하고 불신앙할 때에는 너그럽게 봐 주시기를 기대하고, 하나님이 좀 서운하게 일하신다 싶으면 나팔을 불며 마음 내키는 대로 지껄이는 나의 옛성품이 지금도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음을 부끄럽게도 주님께 고백 드린다.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나의 에덴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정결하게 된 에덴은 지금 건강한가. 죄와 사탄과 나의 욕망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말씀의 도우심과 성령의 검의 지켜주심 안에서 믿음의 방패를 잘 사용하여 내 안에 이루어진 천국을 아름답게 꾸려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담이 망쳐놓은 내 마음의 천국을 주님이 다시 새롭게 해 주셨기에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을 보존(유지, 관리)하여 더 풍성한 삶의 향기로 주님께 드리는 것이리라. 오늘도 내 영혼 깊은 곳을 만지시는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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