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창조.人間創造(창 1.24-2.3)

   20200103(묵상)

  

 

 

인간창조(人間創造)

Gen. 1.24-2.3

  

   본문 관찰

 

   여섯째 날(1.24-31) - 짐승, 파충류, 사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일곱째 날(2.1-3) - 안식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구조2]

      창조 선언(1.1): 시작

      창조 기사(1.2-31): 과정

         창조 이전(1.2)

         6일 창조(1.3-31)

      창조 축복(2.1-3): 완성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2.1)

 

오늘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벌써 여섯째 날이다. 그분은 쉼 없이 여기까지 창조를 이루어 오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1.2)더니 마침내 창조를 명하시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찾으면서 그대로 되니라.”라는 창조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어서 여섯째 날이 밝았다. 하나님은 오늘도 무슨 창조의 일을 하실까? 기대가 된다. 이제 온 세상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린다. 공포와 짜증스런 기다림이 아니라 설레임과 환희와 경외감에 가득 찬 영광스런 기다림이다. 이것이 창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다.

하나님은 이날 셋째 날에 창조하신 땅에 거할 각종 짐승들과 파충류를 만드셨다(1.24-25). 놀랍게도 여섯 날은 서로 둘씩 짝을 이룬다는 점이다(1-4, 2-5, 3-6). 그리고 마지막에 창조하신 사람은 그 앞에 만드신 모든 것들과 다시 짝을 이룬다(1.3-25 vs 1.26-31). 이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다(1.28). 인간은 이렇듯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자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시작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복을 사람에게 다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하신다.

   

 

여섯째 날(1.24-31)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창조(예비)해 놓으시고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의 탄생은 신비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의 부어주심이다: “하나님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 하나님의 형상(image)을 따라 창조된 인간! 이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죄 가운데 타락하기 전() 인간은 온 세상에, 또한 세상은 인간에게 각각 하나님을 알리는 통로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며, 동시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온 세상을 다 맡기셨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26) , 사람은 세상으로 더불어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후 그저 먹고 자고 노는 것 밖에 하는 일이 없이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면 어찌됐을까. 따라서 사명이 있고, 목적이 주어졌으며, 그것만큼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라 생각된다. 이것이 인간에게 세상을 향해 주어진 [문화명령]이 갖는 본의(本意)가 아닐까.

신적(神的) 위임에 따른 대리적(代理的, 청지기적) 다스림,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었으므로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반영한 미션을 세상 속에 실현해 갈 것을 신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으셨기에 맡기고 위임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과 세상이 인간으로 통해 연결되고 있는 것, 이것이 여섯째 날에 들어있는 창조의 비밀이다.

이제 세상은 하나님의 꿈이 인간을 통해 성취되어야 할 곳으로 명백하게 그 정체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이를 인간에게 하라!”는 명령으로 선명하게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 이를 성취할 것을 의심치 않으셨다. 이렇듯 믿어주는 분 앞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사명(소명)이라는 외줄을 즐겁게 타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은 소명의 말씀’(28)과 함께 이를 이루기 위한 일용할 양식’(29-30)을 주신다. 이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땅, 하나님의 소명이 실현되어야 할 다른 피조물들에게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할 사람을 이것들로 하여금 돕고 섬기도록 하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성품을 느끼는 대목이다.

   

 

일곱째 날(2.1-3)

 

   “마치셨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그가 행하셨던 그의 일을.

    안식하셨다 그가 일곱째 날에 그가 행하셨던 모든 그의 사역으로부터.”(2)

 

하나님은 육일 동안 일하시고 하루를 안식하신다. 이렇듯 일이 있고 안식이 있다. 안식이 있다는 것은 먼저 일함이 있었음을 전제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패턴을 따라 창조의 첫 한 주간을 사셨다. 그리고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3b) 이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3a). 아마도 하나님은 이러한 [6 vs 1의 법칙]이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기대하셨을 것 같다. 안식하신 날에 대한 하나님의 의미부여를 촘촘하게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안식은 6일 동안의 일하심에 따른 피로회복(휴식)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피곤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어떤 의미와 목적이 들어 있을까?(너무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마침내 보이는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보이는 세상을 당신의 목적대로(1.28)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사람이 세상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우선하며 살아가기를 기대하셨다. 안식은 창조의 단절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날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 보존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7일마다 재창조하며 살아가는 길이다. 사람에게 있어 세상은 무한한 꿈이요 가능성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이 다 공급되고, 또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렇듯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면서도 얼마든지 6일 속에 하나님의 꿈을 실현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고 알도록 하고 싶으셨다.

이것은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十誡命)에서 안식에 대한 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安息日)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8-11)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1.28a)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2.3a)

 

창세기 1장을 열자마자 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사람을(1.28), 그리고 일곱째 날을 복 주신다(2.3). 1장의 복은 사람에게 주어지면서 문화명령으로 이 복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는 아무런 조건이 없는 값없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며, 하나님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그것에 걸맞은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의미 깊은 것이다. 이로써 온 세상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이루는 통로가 됨이 선포되고 있는 셈이다.

이어지는 2장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신 이야기다. 하나님은 창조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2.3b). 이렇듯 안식일(일곱째 날)은 그 초점이 하나님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다. 이 점이 중요한 통찰이다. 안식하시는 하나님을 사람(아담과 하와, 1.27)들이 보았음은 당연하다. 사람이 6일을 복을 받은 사람답게 살다가 7일이 되면 그의 모든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 하나님은 이를 통해 만물이 사람을 통해 6일의 복으로만 충분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 싶으셨다.

사람은 6일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6일은 마침내 7일을, 그러니까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은 물론 만물을 세우는 것,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관계다. 지금 하나님은 안식을 통해 이를 알리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인류에게 알리시는 하나의 사인(sign)이며,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당신 앞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안식을 누리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안식하시는 하나님 앞에 온 만물이 다 복종하는 것, 이것을 가장 잘 해야 하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안식 안에 있는 소명이다. 안식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며, 인간은 이 일의 대리자임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화명령(1:28) 역시 하나님의 안식과 충돌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안식하시는 하나님은 온 만물이 다 자신의 권위와 능력 안에 있음을 알리실 뿐만 아니라 이를 누리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식을 수종 드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신학(神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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