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결혼식(창 24.10-67)

   20200204-05(묵상)

  

 

 

이삭의 결혼식

Gen. 24.10-67

  

   본문 관찰

 

   기(): 혈 통(1-9) - 아브라함의 종

   승(): 섭 리(10-27) - 아브라함의 종 vs 리브가

   전(): 동 의(28-60) - 아브라함의 종 vs 라반

     A 라반(28-32) -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31)

       B 아브라함의 종(33-49) - ‘여호와께서’(35,40,44,48)

     A’ 라반과 브두엘(50-53) -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여호와의 명령대로’(50,51)

       B’ 아브라함의 종(54-60) - ‘여호와께서’(56)

   결(): 결 혼(61-67) - 리브가 vs 이삭

   

 

장례식에서 결혼식으로!

 

기승전결(起承轉結) 스토리가 재미있다.

아브라함의 결정(1-9)과 하나님의 인도(12,27,40,42,48,56)가 하모니를 이룬다.

   

 

(): 혈 통(1-9)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하지 말고.”(3)

   “내 족속에게로 가서 택하라.”(4)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7)

   

 

(): 섭 리(10-27)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내가 알겠나이다.”(12-14)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항아리를 어깨에 메고”(15)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여 여호와께서 과연 알고자”(21)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26)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27)

   

 

(): 동 의(28-60)

 

1. 소명자는 잠들지 않는다(28-49).

 

   라반(31) -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종(34) -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주인인 아브라함을 간증하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35)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40)

   종(44) -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종(48) -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만일 이 종이 엘리에셀이라면 그는 최소한 아브라함 75세 때부터 137(23.1) 때까지 아브라함을 섬겼다. 또한 이 종이 아브라함의 고향 메소보다미아(10)에부터 아브라함을 따라 왔다면, 지금 그곳으로 다녀오는 길은 그리 낯선 방문은 아닐 것이다. 어떻든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아브라함과 동선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 있고, 아브라함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종이 왜 이럴 수 있을까? 그는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이고 마음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았고, 또한 함께 살아온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어떠한 사람이고 어떤 삶을 나누며 살아왔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과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참 아름다운 동역이고 섬김이다. 아브라함과 종은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살아간다. 주인의 중차대한 사명을 위해 기도’(42-44)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필요나 쉬운 일의 흐름과 결과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구하였고, 아브라함과 동일한 시각과 방향을 따라 맡겨진 일을 감당해 낸다.

사람들 중에는 맡겨진 일을 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을 하는 자가 있다. 결국 맡겨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기 유익과 성취를 위한 디딤돌이나 징검다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자기 일을 하는 셈이다. 회사를 위한다고는 하나, 교회를 위한다고는 하나 결국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과 유익을 목표한다는 얘기다. 이는 착하고 충성된 일꾼과는 거리가 멀다.

먼 길을 돌아왔다. 오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얻기 위해 주인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발걸음이다. 그런데 이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다. 놀랍다. 이게 바른 소명자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1947)라는 시다. 나는 이런 간증을 할 수 있는 종과 같은 성도를 가졌는가. 아니다. 종과 같은 삶을 사는 자라고 간증할 성도를 가졌는가. 나는 이런 신앙을 나눌 공동체를 가졌는가. 나는 종처럼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을, 가정을, 교회를 아는가. 그런 사람이 있는가. 나 정직하게 말하면 그런 사람인가.

한 사람의 성도로서 종처럼, 한 가정의 부모이자 아버지로서 종처럼, 양무리교회를 섬기는 목사로서 종처럼, 우리 양무리교회가 종처럼 주님께 쓰이는 교회되도록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기기를 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분명 늙은 종은 조연(助演)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결코 아브라함보다 작은 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의 자리를 묵묵히 살아간다. 그렇다. 소명자는 잠들지 않는다.

 

2.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50-60)

 

약혼이 이루어지다(50-53).

아브라함의 종은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40)라고 고백한 아브라함의 간증을 리브가(라반과 브두엘)에게 전달하고, 자신 역시 이삭의 배우자를 위해 먼 길을 온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48)실 것이라는 신앙과 믿음에 따른 결정이고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기도했고(42-44), 그 결과를 하나님이 허락하셨음을 의심 없이 증거한다.

모두가 다 이 일이 우언이거나 사람의 수단과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고백한다. 그 가운데 라반과 브두엘의 고백이 눈부시다: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여호와의 명령대로”(50,51) 하나님이 앞서 하신 일이라는 고백, 이 얼마나 놀랍고 가슴 뛰는 고백인가.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브라함의 종 또한 압권이다: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52)

 

가겠나이다(54-60).

하나님이 하신 일에 사람의 감정이나 변덕스러움 같은 것들이 끼어드는 것은 어쩌면 순간이다. 지금 이 영적 분위기와 부흥이 또 언제 뒤집힐지 누가 알겠는가. 아브라함의 종은 지혜롭고, 동시에 하나님이 하신 일에 연속성이 무너지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더 머물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56)

생각해 보라. 종의 사명은 하나님이 예배해 주신 이삭의 배우자를 데리고 아브라함에게로 돌아오는 것이었지 약혼식 잔치를 베풀고 그 흥에 취해 영광을 받아야 할 자가 아니라는 것을... 더욱 갈 길이 멀지 않은가. 다시 갈릴리와 사해 동편으로 난 북쪽 길을 따라 하란을 거처 가나안으로 되돌아가야 할 길이 었으니까.

한편 리브가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에 아멘으로 응답한다: “가겠나이다!”(58) 라브가는 지난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을 만난 일에서부터 지금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혼사(婚事)까지, 일련의 진행 과정에서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언행하고 있음에 대해 그녀 역시 화답한다.

마침내 라반과 브두엘의 입에서 리브가를 향한 축복이 터져 나온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60) 이 놀라운 축복이 훗날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을 아는 우리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더 깊게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온 몸과 심장이 뛰는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백하는 입술의 축복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 마침내 아브라함의 믿음과 고백대로, 동시에 그의 늙은 종의 믿음과 고백처럼 다시 가나안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은 아식의 아내 리브가를 동행케 하신다. 놀라운 것은 이 일에 아브라함 쪽 사람들과 라반 쪽 사람들 모두가 다 공히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신앙을 고백하고, 그 신앙고백을 따라 결정하고 진행하는 은혜를 베푸신다. 참으로 아름답고 놀라운 공동체라 아니할 수 없다.

   

 

(): 결 혼(61-67)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63)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67)

 

부부로 서약합니다(61-67).

아들 이삭을 향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 그 마음은 동일하게 며느리를 향한 마음과 소망과 기도가 된다. 이것은 좀 더 큰 그림, 그러니까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언약을 이루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 아들만의 일이 아닌, 아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복이 되는 일의 시작이기도 하다. 지금 아버지 아브라함이 내다보고 있는 것은 그 너머까지다.

  

 

부스러기 묵상

 

이삭의 아내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앞으로 이어질 야곱 이야기와 관련하여 라반의 등장이 흥미롭다(29- ). 앞서 나홀 가문의 이야기가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지는 다리가 됨으로써 족장사의 흐름이 아브라함에서 이삭에로의 오버랩(overlap)으로 전개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이루어진 많은 언행들 가운데 아들 이삭을 결혼시키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는 자신과 아들 이삭, 그리고 이를 둘러싼 하나님의 언약의 이루어져감이라는 섭리와 언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들의 결혼이다. 그는 다른 것을 아들에게 요구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을 통해 이어져야 할 하나님의 언약이 아들의 대()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삭의 가정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처럼 영적인 가치와 우선순위를 알았고, 믿었으며, 이를 행한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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