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결혼 준비(창 24.1-9)

20200203(묵상)

  

 

 

이삭의 결혼 준비

Gen. 24.1-9

  

   본문 관찰

 

   아브라함이 늙은 종에게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결혼의 조건들

 

아브라함은 그 아내 사라를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선다.

자신 역시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아들 이삭은 홀로 될텐데, 만약 이렇게 된다면 조카 롯처럼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을 듯싶다. 아브라함은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며느리로 맞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 그럴 수도 없지 않는가. 그럴수록 아브라함은 더 하나님 쪽에서 언행한다.

   

 

아브라함과 롯, 혼사(婚事)가 달랐다.

 

두 사람이 그들의 자녀들의 대()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배후에는 이처럼 자녀교육 뿐 아니라 그들의 결혼에 대한 입장이 서로 현격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으로부터 아들로 이어지는 축복의 가문이 되었고, 반대로 롯은 자신이 그 가문의 정상이었고 그 이후에는 처참하게 무너지는 후손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를 성경은 그들의 결혼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롯은 소돔 사람들에게 자신의 딸들을 시집 보내기로 하였다(19.14). 그러나 문제는 그 땅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실 정도로 죄악이 가득하였고, 하나님 없는 불신 문화에 푹 젖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이 소돔성을 멸하실 계획을 롯으로부터 듣게 되었으나 농담으로 여겼다. 이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나님을 무시한,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이었다.

롯의 믿음은 이처럼 약했다. 그는 물질은 잘 관리했는지는 몰라도 자녀교육은 처참하리만큼 실패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이처럼 이루어진 자녀들의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믿음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가정을 이루게 해 주어야 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만들어 준 가정들을 보라. 시작은 창대하지만 그 나중은 심히 미약한 몰락하는 가정들을 보라. 왜 그런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3b) 이삭의 배우자를 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없는 문화와 그 사람들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신분이 누구인가를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하나님이 친히 세워주신 선지자요(20.7), 제사장이며(22.13), 족장을 대표하는 왕이요, 하나님의 친 백성이자, ‘여자의 후손’(3.15)의 정점에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당시의 문화는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상태에 있었는데 창세기 기자는 이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19.5b)라고 표현하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태생의 롯의 사위들이 소돔성의 멸망이라는 복음제시라는 전도(傳道) 앞에서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농담으로 여길 정도로 타락해 있었음을 깨닫고 있었다(19.14). 이것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아들 이삭이 가나안 족속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게 만든 이유이다.

자신을 따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던 조카 롯이 이방 문화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영적 전투인가를 놓치지 않는 아브라함의 영적 통찰이 빛난다. 그랬기 때문에 이삭 역시 이방인들과 섞여 사는 것이 갖는 영적 위험을 바르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함께 믿음으로 이룬 가정이 받는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를 체험했고, 아내 사라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이 험한 세월을 승리할 수 있었다는, 그러니까 아내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그로 하여금 역시 아들 또한 믿음 안에서 가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하게 했다.

   

 

복음이 말하는 결혼관

 

아브라함은 이미 자기 가정 안에서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서 고통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이 비록 잠시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가정 안으로까지 침입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비극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세상은 결코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자신의 시대는 가고 아들의 새 시대가 열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단추를 바르게 끼워야 한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놓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이 주신 언약(믿음),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 즉 육체와 섞일 때에 나타나는 복음과 율법의 갈등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4.28-29) 아브라함은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 사이의 갈등이 이스마엘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실수와 죄에서 비롯된 갈등이 반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바울이 증거하는 결혼에 대한 말씀을 구약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4-16a) 언약 백성 안에서 결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부스러기 묵상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결혼의 좋은 상담자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 없이 혼자 아들 이삭의 혼인을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해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결혼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준비할 좋은 사람을 붙여 주셨다. 또한 그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은 자식의 결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많은 종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이해할 사람을 찾았다.

그는 가정적으로 뿐만 아니라 그의 종들에게까지 자신의 하나님을 동일하게 믿게 하는 참으로 신실한 사역자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선지자요 제사장이었으며(20.7, 22.13), 한 가문의 족장이자 남편과 아버지로서도 가장 모범적이었고, 또한 자신과 함께 하는 종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데 성공했던 믿음의 조상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복을 공유하게 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종은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다(2,9). 늙은 종이 그럴 수 있기까지는 아브라함의 영적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늙은 종의 믿음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영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처럼 결혼에 대해서 의논할 좋은 지체가 있는 것은 큰 복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늙은 종이 이처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결혼에 대한 입장이 서로 일치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복이다.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7b)

 

그는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삭의 혼인을 주도하실 것을 기도한다. 결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짝하여 주실 것을 바라는 믿음이야말로 창세기의 최초 결혼식을 떠올리면 쉽게 정리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떤 결혼 조건을 걸고 거기에 맞는 배필을 구하겠다는 식으로 혼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맞는 배필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여자가 너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5a,8a)이라는 말은 인간의 어떤 생각이나 의지, 혹은 동기들이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만일 하나님이 맺게 해 주실 배필이라는 그가 너를 좇아 올 것이라고 하는 분명한 응답의 표(sign)를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이 언약의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적극적인 믿음인 셈이다.

결혼에서 차지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기도. 아들 이삭이 자신의 배우자를 찾기 이전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맞이하는데 있어서 먼저 기도했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것을 볼 수 없고 하나님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자식의 결혼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따라서 그것만큼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기준과 조건들을 더 우선하게 된다.

자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 하지만 이를 저버린 결과 때문에 자녀들이 치르게 되는 고통이 생각보다 매우 심각하다. 그것은 영적인 법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맡기게 되고, 믿음 안에서 결혼을 이룰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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