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 에피소드2(창 19.23-38)

20200128(묵상)

  

 

 

롯 에피소드(2)

Gen. 19.23-38

  

   본문 관찰

 

   소돔 심판(23-28)

   ‘아브라함을 생각하사’(29)

   모압과 암몬(30-38)

 

      [구조2]

      서곡(18.1-15)

      소돔의 죄악과 아브라함의 중보기도(18.16-33)

      롯의 구원 vs 소돔의 멸망(19.1-29)

      소돔의 멸망, 그 이후: 롯의 부정적 언행(19.30-38)

   

 

롯도는 끝났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2.7-8)

 

롯에 대한 신약의 평가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

구약의 롯(11.27-19.38)을 읽어왔기에 신약의 롯(벧후2.7-8)에 대해서 당혹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멸망할() 성 소돔으로부터 구원된 것은 의인이어서다. 하지만 그 롯을 이야기하는 구약의 평가는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소돔 심판(23-28): “아브라함을 생각하사”(29)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26)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내보내셨더라.”(29)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또 다른 상징이다(29.23, 32.32; 1.9, 3.9; 23.14, 49.18; 4.11; 10.15, 11.23; 10.12, 17.26-32). 그렇기에 그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는 롯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 무엇이 롯과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도록 했을까.

먼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29). 그의 중보기도 장면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소돔에 의인이 하나도 없지 않았다. 심판이 집행되기 직전에 롯의 가족을 구원을 받는다.

둘째는 베드로후서 27-8절이다. 물론 딸들을 천사들 대신에 소돔의 사람들에게 내어주겠다는 제안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은 부분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두 딸들과의 사이에서 모압과 암몬 족속이 시작되는 부분 역시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로부터 벗어난다. ‘의로운롯을 말이다.

   

 

모압과 암몬(30-38)

 

해체되어가는 롯의 가족들이 마치 앙상한 가지처럼 측은해 보인다.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으나, 그러나 언약의 중심부에서 이탈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우산 안에 머물도록 초대를 받았으나 점점 아브라함과 멀어지고 있다. 무엇이 아브라함과 동선에서 움직이던 롯을 이처럼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아버지,

두 딸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8)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16a)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17-19)

저 성읍으로 도망하게 하소서.”(20)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30a)

굴에 거하였더니”(30b)

아브라함을 떠나기 이전에(13.14 참조) 롯은 소유가 많아서 아브람의 목자들과 다투기까지 했었다(13.6-7). 그러나 그는 지금 빈손으로 동굴에서 생존에 급급할 처지에 놓여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만큼 그 은혜와 복으로부터 밀러나고 있다.

깨닫지 못하였더라.”(33,35)

술을 많이 먹은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롯은 영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일은 벌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딸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은 롯을 보라.

 

어머니, 롯의 아내(17):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26, 17.32 참조)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 “농담으로 여겼더라.”(14b)

 

두 딸들: “아버지와 동침하니라.”(33,35)

소돔 사람들은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반면에 롯의 딸들은 근친상간을 비밀리에 수행한다. 롯은 딸이자 아내인 두 여자와, 아들이자 손자인 두 아들을 얻게 되는 실로 기막힌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다. 바꿔 말하면 딸들은 롯이 아버지이자 남편이 된 셈이고, 그 딸들이 낳은 모압과 압몬은 롯의 손자이자 아들인, 그야말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의인의 가문(벧후2.7-8)에 일어난 일이다는 점이 충격이다.

 

소돔 사람들(5b):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25)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이야기가 주류다.

이 이야기가 굵게 흘러가는 중에 그 사이사이에 이스마엘(17.18), (소돔)이 지류처럼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과연 이 두 이야기가 교차하며 아브라함행전에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동일하게 흔들리고 휘청거린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고, 롯은 조카다. 핵심은 이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 머무는 치열한 영적전쟁(삽바싸움)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들(이스마엘 & )은 모두 언약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무엇이 이들의 생애를 이처럼 전혀 다른 그림으로 그려져 가게 하는가? 이것이 창세기 독자들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묵상의 아이콘이다.

아브라함의 생애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에 온 때가 그의 나이 75세였다(12.4). 그리고 소돔이 멸망할 때가 아브라함의 나이 99세다(17.1- ). 그렇다면 거의 사반세기, 25년여 시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의 인생은 극명하게 나누인다. 이것이 롯의 생애에, 동시에 아브라함의 일생에 들어있는 비밀이라면 비밀이다.

아브라함 역시 흔들리는 시간들을 지나왔지만 99세의 나이에 아들 이삭을 약속받는 당당한 사람으로 창세가의 정거장을 지나고 있다. 반면에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본토를 떠나 가나안에 왔고, 아브라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안에 있었지만 그의 인생 말년은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여정으로 몰락하고 있다. 롯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세상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생의 수레를 굴려왔다. 이것이 화근이다. 그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천사의 명령보다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마저 자기의 뜻을 관철시킬 만큼 자아가 강한 사람이다. 그 결과 그야말로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부도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주식회사 롯은 이렇게 그 문을 닫고 만다. 슬픈 일이다.

롯 이야기의 후속편인 모압과 암몬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씁쓸하게도 모압과 암몬 족보의 시작을 듣게 되는데 그 시작의 비극보다도 이 족보가 미래에 펼쳐질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영적 고통을 받게 된다. 모압(Moab)의 이름의 뜻은 아비의 소생이며, 이스라엘과 친족 관계이므로 적대시되지는 않았다(2.9). 그러나 모압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그들의 땅 가까이에 있을 때 떡과 물도 주지 않고 통로도 내주지 않았으므로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었다(23.3).

또한 암몬(Ammon)의 이름의 뜻은 근친(친족)’이며, 벤암미를 조상으로 하는 족속으로 랍바를 수도로 하여 요단강 동편, 얍복강 상류에 거주했다(21.24, 2.37). 이스라엘 광야 여정시 하나님에 의해 침략이 금지된 족속 중 하나였으나(2.19), 그들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23.4, 3.13, 10.6, 삼하11.1). 이 족속은 밀곰과 몰록을 우상으로 섬겼다.

이들은 성경의 역사에 그려지고 있듯이 끝없는 화근을 낳는 부끄러운 불씨가 된다. 롯은 자신만의 불행으로 일생을 마감하지 않고 이처럼 불행의 불씨를 또 다시 출발시킨다. 자신의 약함과 무능, 그리고 죄악을 자신에게서 단절하지 못할 때 그것이 어떻게 발전하며 확장되는가를 롯을 통해 교훈받는다.

민수기에 보면 모압 왕은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 했으며(22-24), 그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다(25). 그들은 사사시대에도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며(3.12- ), 사울과도 전쟁을 했다(삼상11.1- , 22.3-4). 후에 다윗은 모압을 정복했지만(삼하8.2- ), 이스라엘과 암몬 족속간의 전쟁은 여호사밧(대하20.1- ), 요아스(대하24.26), 여호야김(왕하24.2), 예루살렘 함락 이후(40.11- )에도 계속되었다. 한편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에는 이들과 결혼도 허락되지 않았다(9.1- , 13.1,23- ).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비참함을 본다. 하나님 없이 출발한 역사가 어디까지 계속되는가를 우리는 목격한다. 롯은 딸들과 술을 마시고, 그것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큰 허점을 가진 성인아이였다. 똑같이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나 아브라함과는 전혀 딴 인생으로 전락해 버리고야 말았던 그의 이력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언제까지 때문에로 밖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으며 피곤하게 살 것인가? 롯이 아브라함 때문에 듯이 부모 때문에, 아내 때문에 삶의 수레바퀴를 돌려가는 것을 나쁘다 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 때문에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그런 풍성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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