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 이야기(창 16.1-16)

20200122(묵상)

  

 

 

이스마엘 이야기

Gen. 16.1-16

  

   본문 관찰

 

   불임 vs 임신(1-6)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2,5)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6)

   도피자 하갈 vs 여호와의 사자(7-14)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를 만나 이르되(7,9,10,11)

   이스마엘의 출생(15-16)

   

 

사라 vs 하갈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 지 10년 후였더라.”(3b)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였더라.”(16)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길목에 장애물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애굽(12.10), 거짓말(12.11-13), 엘리에셀(15.2-3)에 이어 이번에는 이스마엘에게서 그렇다. 문제는 아브라함이 이신칭의(以信稱義, 15.6)의 다리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넘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성장과 성숙을 통해 온전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긴 싸움이고 인내가 필요한 부분인가를 절감하게 한다.

   

 

하갈과 이스마엘

 

여호와의 사자가 4번에 걸쳐 하갈에게 말씀한다(7,9,10,11). 한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다(15). 이로써 아브라함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15.4b)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답될 여건이 마련된 듯하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일하심을 기다리지 못하고서 인간이 앞서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것들이 훗날 어떤 불씨가 되는지를 우리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출생 이야기에서 배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중에 드러나는 모습이 얼마나 웃음 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처럼 지금 진행되는 16장의 이야기가 그렇다.

   

 

아브라함과 사라

 

앞서 아브라함이 조급하더니, 그래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해 주시기를 요청했었다(15.2). 그런데 이번에는 사라가 그랬다(2).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기 121-3절에서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그리고 이어서 하늘의 셀 수 없는 별처럼 자손을 그리해 주시라 하셨고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15.6)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부부가 차례대로 돌아가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 약속을 이루고자 덤빈다. 천하의 아브라함이 말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 15.6)라는 엄청난 고백과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아브라함은 이렇듯 계속해서 흔들린다. 아마도 나이는 들어가지,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상황은 점점 멀어지지,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마도 어쩌면 훈수 두듯 슬그머니 제안을 했을 것이다. 이 제안은 하나님께로부터 거절되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사라까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다. 이미 하나님의 입장을 전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갈등을 낳는다. 가정이 난장판이 된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여러모로 공사중이다. 앞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일을 하나님께 여쭈지 않았고, 그 결과를 호되게 경험했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엘리에셀 제안처럼 하나님께 물었어야 옳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내와만 얘기하고 일을 결행한다. 이게 화근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싶은데 아브라함은 여전히 휘청거린다.

정리하면, 개인적 실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손해 보고, 아프고, 그러면서 성장통을 겪고 성숙해 가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인 수순을 넘어서는 실수와 실패는 상처가 크고 아프다. 이스마엘의 출생이 그렇다. 동일한 아브라함의 씨이지만 하나는 이스마엘이, 다른 하나는 이삭이 되어 역사의 징검다리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부스러기 묵상

 

부부가 다 다른 생각주머니를 간직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사라는 하갈을 통해서 각각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겠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다들 자기 식으로 목표를 이루고 싶어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둘 다 하나님의 생각과 달랐다는 점이다. 이게 핵심이다. 그 결과는 불화와 갈등이다. 다시 아브라함과 그 가정은 요동친다. 문제만 있고 해법은 없다. 하갈을 통해 상속자를 얻자고 할 때는 언제고, 또 그녀를 학대하여 도망자가 되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일에 속수무책이다.

한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닌 하갈에게 4번이나 말씀하신다. 그중에 하나는 매우 특별하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10) 하지만 태어날 이스라엘은 사라가 기대한 상속자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형제와 대항하며 살리라’(12b)는 예고를 받는다. 헛된 꿈이었고, 불행의 씨앗이 될 뿐이라는 얘기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최선이 결국 최악이 되는 순간이다.

창세기는 이처럼 요동치는 일이 계속된다. 물론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유효하고, 또한 진행형이지만 이를 둘러싸고 도는 흐름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렇듯 가나안에서의 10년은 여전히 폭풍주의보 중이다(3). 이처럼 엉킨 살타래 같은 아브라함을 둘러싼 하나님의 열심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풀어져갈까. 어느 때나, 어느 곳이나 사람에게 희망이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이 희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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