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살 요셉, 감사합니다(창 37.1-11).

20200202(양무리교회)

  

 

 

열일곱살 요셉, 감사합니다.

Gen. 37.1-11

  

   본문 관찰

 

   야곱 & 요셉(37): 그럼에도 요셉은 17년을 어떻게 채웠을까?

                                    어떤 가정에서 요셉이 나오는가?

                                    17세의 요셉은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는가?

     요셉 17의 소년으로서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2a,5a)

           형들 -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5b,8b)

     요셉 -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9a)

        야곱() 그를 꾸짖고(10a)

           형들 -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11a)

        야곱() -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11b)

 

   히스기야 & 므낫세(왕하 20-21)

      히스기야 병들에 죽게 죽게 되매 기도하여(20.1-2)

         여호와 내게 네 날에 15을 더할 것이며(20.6a)

      므낫세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2(21.1)

   

 

17vs 15(12): 요셉인가, 므낫세인가

 

      [야곱의 장자권 이동]

      ▪르우벤(35.22) -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

      ▪시므온 & 레위(34.25-31) - 디나의 오라비들로 히위 족속을 할례를 이용해 복수

      ▪요셉(37.28-36) - 채색옷을 입고 사랑 받는 자 사라짐

      ▪유다(38.1-30) - 며느리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음

   

 

야곱과 요셉 17년에 비로소 피어난 꿈

 

요셉이 17세 때, 어느 날 꿈을 꾼다. 증조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났고, 조부 이삭 역시 모리아산에서 제물되어 죽기 직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찾아오셨고(또 있다. 태중에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에,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 아버지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 일생일대의 사건을 각각 지나왔다. 그런데 아직 야곱의 아들들의 대()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아직 하나님의 찾아오심, 하나님의 심방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거나, 하나님께 관심을 가졌거나, 그런 영적 목마름으로 그분의 은혜 앞으로 나아간 아들이 없다. 그렇게 17년여 세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꾼다. 12 아들 중에 뭔가 하나님 쪽으로 연결된 첫 이야기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다. 아직 그 누구도 아버지의 영성(통찰)을 넘어설 그런 아들이 없다(11). 하지만 요셉, 그만은 좀 다른 분위기다. 이것이 17세 소년으로 창세기 무대에 등장하는 요셉을 주목하게 되는 희미한 불빛이다.

요셉은 17년이라는 비교적 긴 침묵을 깨고 17살이 넘어서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 앞에서 꿈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셉은 꿈을 만든 게 아니라 단지 꾼 것이다. 그는 지금 이 두 꿈에서 자신과 형제들을 정확하게 구분(구별)하여 읽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무엇을 말하는 꿈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당신들의 단내 단을 이처럼 명쾌(명확)하게 보고, 또 해석해 낼 수 있었을까? 이것이 17년에 들어있는 요셉의 비밀이다. 그는 분명 다른 11 형제와 다르다.

사실 야곱 가정의 전체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장자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 유다까지 이런저런 스캔들에 그만 하나 둘 아브라함-이삭-야곱을 잇는 영광스럽고 놀라운 자리를 잃어간다. 그런데 이때에 오직 요셉은 뭔가 평범하지 않은 어떤 일에 접촉된다. 그건 꿈이었다. 하나님이 꿈으로 요셉을 찾아오신 것이다.

그 옛날 아버지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 밧단아람으로 가는 길목인 벧엘에서 꿈을 꾼 적이 있다(28.10- ).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다. 이처럼 꿈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요셉 역시 그가 꿈을 꾼 것은 예사롭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요셉이 그가 꾼 꿈을 해석하고 있음이다. 결국 요셉은 다른 형들과 달리 하나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다른 그 어떤 아들들이 아닌 요셉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지금 형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철저하게 밀려나 있다. 아무도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뭔가를 시작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거부하고 부정한다. 그래서 한 일이 무엇인가.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급기야 그를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리고 만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와 각을 세우고 있는 형들의 어리석음이랄까 무지를 보는 중이다. 그렇다면 마침내 17년 만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야곱의 가정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이다. 그런 야곱의 가정에서 요셉이 세워지고 있다.

 

   [환경과 상황] 그럼에도 요셉은 17년을 어떻게 채웠을까?

   어머니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고 죽었다.

   하나님의 꿈을 이야기해도 미워하고 시기하는 게 형들의 신앙적 태도다.

   동생인 요셉을 돈을 받고 인신매매한다.

   형들은 하나 둘 장자권으로부터 멀어진다.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 아버지 야곱에게서 보여지는 하나님을 향한 모습이 없다.

   야곱의 12 아들들의 대()에서 아직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없다.

      ➜ 이런 가정, 아버지, 형제들 안에서 요셉이 나왔다.

   아브라함-이삭-야곱 가문이라고기에는 너무 형편 없는 그런 배경에서 요셉이 나왔다.

   우리의 17년에서도 요셉이 자라고 있는가?

 

 

히스기야와 므낫세 15년 안에 함께 자라난 12년의 은혜

 

열왕기하 18-20장에 유다 왕 히스기야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25세에 왕이 되어 왕위 14년인 39세에 죽을 병에 든다. 히스기야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든 것은 앗수르(산헤립)와의 전쟁 무렵이다. 특히나 히스기야 4년에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히스기야 6(북왕국 호세아 9)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였고(18.9-10), 그러고서 불과 8년 후인 히스기야 14년에 다시 앗수르가 유다까지 침입해 들어온 때였다(18.13).

히스기야만큼 하나님 편에 밀착되어 살았던 왕도 드물다(18.3-7, 19.1,14-20). 그런데 이런 어려운 국난(國難)의 때에 하나님은 친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의 생명을 거두시겠다고 통보하신다(20.1a). 누구보다 히스기야의 절망과 눈물은 더 했으리라(2). 이는 단지 살고 싶은 생명에 대한 단순한 애착만은 아니었다. 왕은 병에 들어 죽어가고 있으나 뒤를 이어 왕이 될 므낫세도 태어나지 않은(21.1), 그야말로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은 바로 그 때에’(20.1a).

 

   [히스기야의 기도(38.10-14,20), 표준새번역]

   나는 한창 나이에 스올의 문으로 들어가는가 싶었다.

   남은 여생을 빼앗긴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다시는 주님을 뵙지 못하겠구나.

   사람이 사는 땅에서는 다시는 주님을 뵙지 못하겠구나.

   내가 다시는, 세상에 사는 사람 가운데서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겠구나.’

   목동이 장막을 거두어서 자리를 옮기듯이,

   나의 생명도 장막처럼 뜯겨서 옮겨질 것이다.

   베 짜는 사람이 베를 다 짜면 베틀에서 베를 거두어서 말듯이,

   나도 나의 목숨을 다 짠 베처럼 말아야 할 것이다.

   주께서 조만간에 내 목숨을 끊으실 것이다.

   마치 사자가 나의 뼈를 바수어 먹기라도 하듯이,

   나는 날이 샐 때까지 울부짖었다.

   주께서 조만간에 내 목숨을 끊으실 것이다.

   나는 제비처럼 학처럼 애타게 소리 지르고,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었다.

   나는 눈이 멀도록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주님, 저는 괴롭습니다. 이 고통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주님, 주께서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주의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놀랍게도 히스기야의 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된다(20.4). 15년을 더 산다. 그리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12세에 왕이 되어 55년을 다스린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 히스기야가 15년의 생애를 연장 받은 후에 므낫세가 태어난다(21.1; 20.6).

,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그런데 므낫세의 모습은 영 아니다. 이러면 안 된다. 지금이 어느 땐가. 위쪽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버지 대()에서 멸망하여 이방으로 흩어졌고, 사마리아에는 이방에서 이주해 온 자들이 토해내는 상상할 수 없는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는 그런 때다.

그럼에도 아버지 히스기야에게 임한 15년의 은혜, 동시에 자신에게 이어진 12년의 은혜는 그만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이것이 유다 왕 히스기야와 그의 아들 므낫세 때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이다.

 

   [환경과 상황]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실패하면 므낫세가 나온다.

   아버지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온 몸으로 경외하고 섬긴 기도의 사람이다.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졌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왕으로 세워질 세자였다.

   아버지 히스기야로부터 모든 것을 다 이어 받았다.

      ➜ 이처럼 훌륭한 유다 왕가의 가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다 있는데 하나님이 없다. 그러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히스기야 같은 선왕(善王)에게서도 악한 므낫세가 나올 수 있다.

 

산산히 부서진 가정에서, 어머니 나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고 죽었으니 그 세월이 얼마나 힘들고 서럽고 외로웠을 것이고, 한 지붕 네 식구이자 10 vs 2(1)로 나누어진 가정에서 살아온 17년이었으니 뭐 볼 게 있을까 싶은 요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꿈꾸며 하늘 향해 비상한다. 야곱의 가정교회는 요셉을 통해 세워져 간다.

반면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이고, 바로 이어서 왕위에 오를 세자인 므낫세였다. 아버지 히스기야의 생명이 하루 이틀 줄어갈수록 아들 므낫세의 왕위는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그런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의 영적인 신앙 유산은 견고하고 생생한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선대의 영광이 후대에 계승되지 못하고 남왕국 유다라는 교회는 이처럼 쇠락해 가고 희망을 잃어간다. 15년이라는 황금 세월을 다음세대로 잇는데 실패한다. 히스기야 15년만 좋았던 것이다. 당대만 좋으면 히스기야 형() 가정이고 교회다.

 

요셉은 17년이라는 황무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므낫세는 최고와 최상의 환경이었지만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진다. 므낫세는 12세라는 어린 나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하나님을 버리고 만다. 우리는 지금 주어진 시간들을 므낫세처럼이 아니라, 요셉처럼 써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다. 요셉처럼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며 이루어내는 교회여야 한다. 야곱과 히스기야라는 선대에 이루어 놓은 영광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이어갈 다음세대가 므낫세처럼 혼돈과 실패와 고통과 눈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품에서 므낫세를 키워내고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 받아낸 히스기야의 15년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것을 다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내주고 만다고? 안 된다. 그렇게 미래가 와서는 안 된다. 우리가 써가는 교회의 현재와 미래도 마찬가지다.

열여덟살 양무리교회가 주께 드릴 예물은 무엇일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열일곱살 요셉처럼이어야 하고, 그렇게 이어지는 역사여야 한다. 오늘은 히스기야처럼이었으나 내일은 므낫세처럼은 안 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우리가 받아놓은 달란트다. 다시 주님이 찾으시는 날이 올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오늘 그렇게 18주년을 감사로 맞는다. 오늘 주께서 우리 모두를 요셉이라 받아주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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