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의 후손들(창 36.1-43)

20200228-29(묵상)

  

 

 

에서의 후손들

Gen. 36.1-43

  

   본문 관찰

 

   아버지 이삭, 장례식 이후(1-8)

   에서의 아내와 아들들(9-14): ‘가나안 땅에서

      아다 - 엘리바스(데만 오말 스보 가담 그나스/아말렉)

      바스맛 - 르우엘(나핫 세라 삼마 미사)

      오홀리바마 - 여우스 얄람 고라

   에서 자손의 족장들(15-19)

   호리족속(세일의 자손, 20-30)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31-39)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이름(40-43)

   

 

에서 이야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43b)

 

에서는 언약(땅과 후손)으로부터 멀어진다.

아브라함언약(15.1-21)의 핵심은 땅과 후손이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15.7,16a) 마침내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a)는 소명 때의 말씀을 언약으로 확증하신다. 언약의 역사,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약속은 이처럼 가나안 땅과 언약의 후손들에게서 성취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야곱과 달리 에서는 점점 언약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내들과 후손들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1)

 

(1) 언약의 후손으로부터 멀어지다.

 

에서가 언약의 백성에게서 떨어져나가는 부분과 그의 결혼(처가)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는 먼저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를 아내로 맞는다(2a, 26.34-35). 좀 더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앞선 본문에서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26.34)었는데 여기에서는 이름이 좀 다르다.

어떻든 역사적으로 볼 때 헷 족속은 노아의 아들 중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아들 가운데 헷이 그 조상이다(10.6,15). 아브라함언약에 미래에 멸망하게 될 족속에 헷 족속이 이미 포함되어 있으며(15.12-21), 400년 후 모세가 부름 받아 출애굽을 하게 될 때 이스라엘이 인도함을 받게 될 바로 그 땅에 약속대로 포함되고 있다(3.8,17).

이럴 듯 에서는 죄악으로 점점 물들어가는 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맞는다. 이것은 그의 부모(이삭과 리브가)마음의 근심’(26.35)이 되고 있고, 이어지는 창세기 27장의 장자권 논쟁은 이렇듯 에서가 이미 결혼한 이후에 치러지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26.34-35, 27.46).

둘째로, 에서는 또한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아내로 맞는다(2b). 역사적으로 볼 때 히위 족속 역시 노아의 아들 중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아들이 그 조상이다(10.6,17. 아브라함언약에 미래에 멸망하게 될 할 족속에는 포함되지는 않았으나(15.12-21), 400년 후 모세가 부름 받아 출애굽을 하게 될 때 이스라엘이 인도함을 받게 될 바로 그 땅에 포함되고 있다(3.8,17). 이렇듯 히위 족속은 가나안 7족속 중 한 족속이며, 야곱의 아내 레아가 낳은 딸 디나 -에서에게는 사촌동생이다.- 를 강간했던 세겜에 속한 족속이다(34.2). 이미 두 족속(에서 vs 야곱)은 이렇듯 피를 흘리는 관계로 서서히 움직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로,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아내로 맞는다(3, 28.8-9). 한편 여기서도 이름이 다른데, 앞서 28장에서는 에서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28.9)다고 되어 있다. 어떻든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낳은 아브라함의 장남이다(16.1-16). 에서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이삭의 결혼을 위해서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하지”(24.3) 않고 구속사의 족보에서 난 딸을 아들 이삭의 아내이자 자신의 며느리로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11.27-32 참조). 이는 다시 야곱에게서 반복되고 있으나 에서는 오히려 철저하리만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 언약의 땅으로부터 멀어지다.

 

   “에서가 가나안 땅에서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6)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주하니라.”(8)

 

어찌되었든 에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닌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6). 아버지 이삭이 죽을 때 함께 있었던 모습과는 달리 에서는 가나안을 떠나지만(35.27-29, 36.6) 야곱은 여전히 가나안에 머문다(37.1). 무엇을 말하는가? 에서는 그만큼 하나님의 약속(언약)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11.20-21) 놀랍지 않은가. 에서는 이렇듯 축복의 라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점이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이 조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그리고 아들들인 자신과 야곱에게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에서는 이 믿음의 계보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는 마침내 몸마저도 가나안이 아닌 타처로 옮기고 만다.

400인의 장정(군사)을 이끌고 동생 야곱을 맞으러 갈만큼 여러모로 능력이 넘친 에서였다(32.6, 33.1). 과거만이 아니다. 지금 에서는 가족과 식솔은 물론 자기의 가축과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근 재물”(6), 소유가 풍부하여”(7a) 동생 야곱과 함께 동거할 수 없을 만큼 부자다(6-7). 하지만 이어지는 창세기의 내용을 조금만 더 안다면 이 에서가 야곱과 다른 삶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잘 알게 된다.

일단 오늘 본문까지는 에서나 야곱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둘 다 이삭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손자들이다. 그리고 둘 다 부자요 성공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이는 모습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은 지금껏 잠시 묵상해 왔듯이 전혀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 부분이 머리카락이 서는 부분이다.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집어 넣으면 곧바로 뛰쳐나가지만 불을 켜 온도를 높이는 따뜻한 물 안에 넣어 두면 따뜻함을 즐기다가 그만 어느 순간 익어버리고 만다. 지금 에서에게 찾아온 위기가 그렇다.

  

 

에서의 후예들

 

   [리브가의 수태고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기라.”(25.23)

   [아버지 이삭의 축복]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27.39-40)

 

아버지 이삭이 자신이 사냥 간 틈을 타서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다 받아낸 것을 안 에서는 통곡하며 아버지여 내게도 축복하소서”(27.38)라며 통곡하자 아버지가 한 축복이다. 그의 생애가 그대로 이 예언에 겹쳐진다. 그가 태어나기 전, ‘두 민족에 대한 말씀대로 에서는 에돔을, 야곱은 이스라엘을 이룬다. 이렇듯 에서(에돔)는 언약 백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세상 열방의 한 민족으로 흘러간다.

특별한 것은 에서의 후손에서 아말렉 족속이 시작된다(12). 아멜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대적한 민족인데(17.9-13), 그래서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할 것을 선언하신다(17.14). 결국 히스기야 시대에 멸망한 듯하다(대상4.41-43).

   

 

부스러기 묵상

 

   에서의 아내들(가나안 사람의 딸들)

   26.34 유딧(헷 족속 브에리의 딸)

             바스맛(헷 족속 엘론의 딸)

   28.9 마할랏(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36.2-3 아다(헷 족속 엘론의 딸)

              오홀리바마(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 5; 가나안 7족속)

              바스맛(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에서의 아내들을 좀 관찰해 본다.

아내들의 이름이 차이가 난다. 아마도 후에 이름이 바뀐 것 같다. 이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에서가 가나안 여인중에서, 그것도 헷 족속과 히위 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 후손을 낳고 있음이다(2). 이렇듯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반대 편으로 걷는다. 참 묘한 사람이다.

예수만 섬기는 가정이 아닌, 오히려 복음과 전혀 연결점이 없는 가정(결혼)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래서 축복과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길인가를 에서에게서 배운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명문가문(名文家門)에서 에서와 같은 자녀가 나오고 또 자란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다. 하지만 자식 농사라는 게 어찌 부모 마음대로 되는 일이란 말인가.

사실 에서나 야곱이나 그의 결혼과 가정과 자녀들을 보면 흔들리며 휘청거리듯 자라가고 세워지는 것은 비슷하다. 야곱과 그의 후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 12지파의 조상들이 되고, 에서의 후손들은 에돔 족속과 아말렉 족속이 되어 끝내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땅과 후손의 역사를 방해하고 거역한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은 어떤 인생보고서를 주께 드릴 것인가?’ 바라고 소원하기는 부족하고 못난 자녀들이지만 우리를 야곱의 반열에 넣어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낳는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주인이신 하나님께 칭찬 받는다(25.21,23). 이삭이라는 영적 거장에게서 자라지만 참 다르다. 아마 아버지 이삭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나도 내가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어찌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불쌍히 여기심이 필요한 이유다. 에서의 족보와 가족사를 돌아보면서 다시금 가정과 자식들을, 우리의 다음세대를 품고 주의 은혜와 긍휼을 구할 수 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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