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행전에 넣어주신 벧엘1(창 35.1-15)

20200517(양무리교회)

  

 

 

내 인생행전에 넣어주신 벧엘(1)

Gen. 35.1-15(1)

  

   첫 번째 벧엘’(28장과 35장 사이)

 

   ▪28.15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8.20-22 - 서원과 그 목록(①②③)

   ➡ 29-30 밧단아람에서의 20(31.38)

 

             ↓ 31.3 -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31.13 -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32-33얍복나루의 씨름[브니엘], 형 에서와의 화해 숙곳(33.17) 세겜(33.18)

 

                                                                   ↓ 벧엘 X

 

   ▪33.18-19 - 야곱이 세겜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샀으며

   ➡ 34 - 외동딸 디나의 강간사건

   ▪34.30 -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 28.15 X

 

 

                                                                   ↓ 벧엘 O

 

 

벧엘로 올라가라!(35.1)

 

하나님은 35장에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하신다(1).

앞서 3113절에서는 슬쩍 알아듣게 얘기했다면,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명령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야곱은 지금 벧엘을 거쳐 아버지의 집으로 귀향하는 일을 멈추고 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샀으며”(33.18-19)

그렇다면 왜 벧엘이지? 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지?

   

 

첫 번째 벧엘’(28.10-22): ‘나는 여호와다.’

 

야곱은 소위 붉은 죽 사건이라는 장자권 강탈 이후, 이어서 형 에서의 모양을 하고서 아버지의 축복까지 받아낸다. 그러자 형 에서와의 갈등과 긴장은 최고조에 이른다. 동생을 죽이겠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형을 피해 도망자가 되어 어머니의 고향인 외가 밧단아람으로 급히 몸을 피하는 것이다. 어머니 리브가는 몇 날 동안’(27.33)일 것이라 했지만 이처럼 떠난 발걸음은 무려 20년이라는 세월로 이어졌다(31.38).

한편 형을 피해 도망하는 길목에서 야곱에게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게 창세기 28장이다. 밤이 되자 그곳에서 돌베개를 베고 잤을 뿐인데 그 밤에 꿈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28.10- ).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알게 된 야곱은 거기서 다음 몇 가지 서원을 행한다.

 

   서원목록(28.20-22):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키시고

   나를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①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시다.

   ②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10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신 부분이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자신을 야곱에게 알리시고, 야곱을 축복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실 것에 대해 정작 야곱은 몰랐다. 물론 하나님을 만나야겠다고 그가 요청을 했거나, 그가 어떤 시도나 언행을 한 것도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 벧엘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그의 실상은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고, 꾀돌이고, 그런데 하나님의 복은 받고 싶은 그런 묘한 특성을 가진 자다.

, 이렇듯 야곱은 지금 형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는 순간까지 하나님과 연결된 부분이 없다. 그러니까 지금 벧엘에서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실만 한 어떤 자격이랄까, 그럴만 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신 이 첫 번 벧엘에서의 만남은 야곱이 하나님을 뵈올만 한 어떤 공로를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럼 무엇인가. 야곱의 실력이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을 뵈옵게 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찾아오셨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어떤 뜻하심, 목적, 이루기를 원하시는 어떤 계획이 그 안에 들어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형을 피해 도망가듯 집을 떠나는 야곱에게 나타나신다. 말씀(28.13-15)의 의미다:

 

야곱아, 내가 너를 주목하고 있단다. 이렇듯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나 여호와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네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에 이미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라고 예고했듯이 나는 너를 그렇게 인도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꽤와 잔재주와 열정이 만들어낸 성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너는 결코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한 하나님이다. 그러니 잘 듣거라, 너는 하나님 나 여호와의 섭리 안에 있단다.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어갈 것이다.’

 

그럼 무엇인가. 이제부터 펼쳐지는 야곱의 이야기와 인생은,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뿐만 아니라 벧엘언약이 이루어지기까지 야곱의 일생 전체는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고 계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고향 집에서처럼 누군가를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결국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가는 섭리대로 따르라는 메시지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좋은 말 할 때 내 말 잘 듣거라. 까불거나 경거망동하지 말고!’

 

거기에 대한 야곱의 응답이 벧엘 이후, 창세기 29-30장이다. 그렇게 해서 달려온 세월이 20년 밧단아람 생활이고, 거기서 어떻든 4명의 아내로부터 12 아들을 낳고 아직 베냐민은 라헬의 태중에 있다.- 마침내 다시 고향으로 귀향하는 중이다.

이처럼 벧엘은 야곱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영적 진원지요, 추억이요, 축복의 씨앗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고 있다는 하나님의 추인이자, 비로소 야곱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경배하고 예배하는, 그리고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써가는 인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온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알게 된 성지 중의 성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밧단아람의 20년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실 때는 야곱이 치루어야 할 하나님 앞에서의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빚이 있는 셈이다. 그는 태어나 장자권과 축복을 형으로부터 빼앗고 쫓겨가듯 벧엘을 거쳐 외삼촌에게 의탁한 후 20, 그리고 마침내 거부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는 자신의 온 생애와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하는 중요한 사명이 있는 자다. 이를 하나님이 먼저 요청하시고 기억하게 하셨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31.13)

이때 하나님은 자기 소개를 벧엘의 하나님’(31.13)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신다. 그랬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의 하나님이시다. 20년 전에 하신 말씀은 이게 더 분명하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이처럼 20년 전 벧엘언약을 성취한 모습으로, 이제 또 한번 더 벧엘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가라 하셨고, 이에 야곱은 순종하고서 귀향길에 오른 것이다. 그랬으니까 누구 때문에? 그러면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면 야곱이 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차, 그랬어야지!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그러고서 벧엘 성지순례를 하고, 고향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 깔끔할 일이었다.

 

, 세겜이 아닌데!

하지만 야곱 이야기는 뜻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샀으며”(33.18-19)

20년 밧단아람은 물론이고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고, 이어 형 에서와의 와나무다리 결투에서 평화와 샬롬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순풍에 돛 달 듯이- 이제 아버지 이삭이 사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였다. 그런데 벧엘을 주저하고 있고, 원하지 않는다. 소위 가장 어렵고 힘들 때 했던 벧엘서원은, 이제 가장 평안하고 형통할 때에 이루어야 할 순종의 몫이 아닌가.

무엇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벧엘로 가는 길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34장에서 외동딸 디나의 강간사건이 터진다. 하나님이 20년이라는 야곱행전에 넣어주신 보물, 즉 선물이 조금씩 어딘가에서 터진 자루처럼 위기를 만난다. 더 위험하고 위급한 것은, 어쩌면 야곱이 두려워하듯 이 모든 것이 벧엘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귀향하기도 전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었다(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놀랍게도 벧엘언약(28.13-15)이 없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고,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 바로 이 부분이 첫 번 벧엘의 은혜와 축복의 가장 큰 위기다. 무엇이 이처럼 야곱을 흔들리게 하는가.

  

 

내 인생행전에 넣어주신 벧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누구나에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와 주신 것 같은 그런 벧엘 경험, 벧엘행전, 벧엘 간증이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런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사망과 죄의 저주로부터 건지사 구원하여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단다. 너는 내 것이야, 내가 너를 반드시 축복하고 영화롭게 할 것이다. 너는 그게 너의 실력으로가 아니라 나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온 것임을 명심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게 우리의 벧엘이요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라는 벧엘 추억이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얘기한다: ‘이 벧엘의 은혜를 잊어서도 안 되고, 부정해서도 안 된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인생 역시 벧엘에서부터 오늘에 이른 것 아닌가.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행전에 넣어주신 벧엘을 잊는다? 그 은혜의 첫 사랑의 자리와 감격을 부정한다? 우리들에게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벧엘이 아닌 내 실력과 땀과 노력으로 벧엘을 만들었다고? 도망자로 위급할 때는 벧엘에서 만나주시고 축복을 약속하시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꿇었다가, 성공하여 묵은 과거를 씻어내고 나니까 뭐 뵈는 게 없다?’ 그래서 벧엘은 처다보지도 않고, 세겜이면 족하다? 지금 첫 번째 벧엘을 무시하려는 야곱의 몰골이 그렇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야곱처럼 창세기 28장이 자리했었다. 어려운 시절, 실패한 때, 가난하고 병들었을 때, 먹고사는 문제도 버겁고 힘들어 몸부림치다가 정신없이 잠들어버리곤 했던 단칸셋방을 돌베게 삼고 살던 그 시절 말이다. 그랬다.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 섬기며 사는 일에 에너지와 관심을 집중하기엔 살아야 할 인생의 짐이 너무 크고 고달프던 시절에, 28장의 야곱처럼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시절에, 나에게도 하나님이 그리하셨다. 그리 쌓인 게 오늘이다.

그러면 이제 그 벧엘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오늘이 있게 하셨습니다!”라며 2815절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그 벧엘에서 서원한 대로(28.20-22) 벧엘 그곳으로 올라가야 할 것 아닌가(31.13). 내 고생행전에 넣어주신 벧엘은 지금 어디 갔는가? <코로나19>라는 34장을 통과하면서 다시 영적 스텐스를 회복해야 할 때를 허락하신 것을 돌아보아야 할 것 아닌가.

바로 이 부분이 야곱의 최대 위기다. 야곱은 딸 다나 사건읕 통해서 유력한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휘청거린다. 그리고서 정신을 번쩍 차린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귀향길에 다시 벧엘로 올라간다. 하나님은 28장의 벧엘에서 곧장 35장의 벧엘이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그만 야곱은 그 사이에 이물질과 같은 세겜을 살짝 집어 넣었다. 이게 화근이다. 이 부분이 오늘 우리 각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다.

 

지금 우리도 28장의 야곱과 같은 형편이었을 때 주님이 그런 나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안아주시며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참으로 형편없는 죄인이었을 때다. 가난하던 때다. 끼니를 걱정하고,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에 내 몸 아픈 거 돌아볼 틈도 없던 때에, 외로이 눈물 흘리며 세상에서 방황하던 때에 이 이름 OOO을 불러 주시며, 나를 구원해 주시고, 그때부터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 생애가 나의 벧엘에서도 피어나기 시작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 살만 하고, 자식들도 그만하면 됐고, 이 정도면 뭐... 바로 이 때가 벧엘의 은혜를 잊을 수 있는 위험한 때다. 하나님은 벧엘을 기억하라, 벧엘로 올라가라 하시는데,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세겜에 터를 잡고 그만 거기에 벧엘을 묻어버리겠다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예배자가 되어 내 영적 추억의 정거장인 벧엘로 올라간다. 얽매이기 쉬운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서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든다. 내게도 이 벧엘이 있는가?

 

 

제목 날짜
열일곱살 요셉, 감사합니다(창 37.1-11). 2020.08.11
에서의 후손들(창 36.1-43) 2020.08.10
내 인생행전에 넣어주실 벧엘2(창 35.1-15) 2020.08.10
내 인생행전에 넣어주신 벧엘1(창 35.1-15) 2020.08.10
결(結)_벧엘체험(창 35.1-29) 2020.08.10
전(轉)_디나사건(창 34.1-31) 2020.08.10
승(承)_화해행전(창 33.1-20) 2020.08.05
기(起)_얍복대첩.b(창 32.21-32) 2020.08.05
기(起)_얍복대첩.a(창 32.1-20) 2020.08.05
야곱 vs 라반, 그 절묘한 시소게임(창 31.1-55) 2020.08.05
야곱주식회사(창 30.25-43) 2020.08.04
12지파 파노라마(창 29.31-30.24) 2020.08.04
야곱의 결혼이야기(창 29.1-30) 2020.08.04
기도③: 야곱의 기도(창 28.1-22) 2020.08.04
이삭의 기도(창 27.1-46) 2020.08.03
이삭 vs 아비멜렉: 승자의 법칙(창 26.26-35) 2020.08.03
다시 브엘세바로!(창 26.17-25) 2020.08.02
그랄의 추억(창 26.1-16) 2020.07.30
에서 vs 야곱: 장자권 이야기(창 25.19-34) 2020.07.30
아브라함, 또 다른 이야기(창 25.1-18) 2020.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