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結)_벧엘체험(창 35.1-29)

20200227(묵상)

  

 

 

()_벧엘체험

Gen. 35.1-29

  

   본문 관찰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1)

   야곱이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2)

   야곱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6-7a)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9)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그 땅을 주리라(11-12)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16-19)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22)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23-26)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이삭의 나이가 180세라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27-29)

   

 

험악한 세월이야기d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47.9)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하시고(1), 야곱은 이 말씀에 모든 우상을 다 버리면서 온전히 순종하여 벧엘에 이른다(2-7).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후손을 약속하시며 축복하신다(9-13). 이 와중에 르우벤은 아버지의 서모를 통간하며(22), -시므온과 레위가 먼저다.- 장자의 특권으로부터 몰락하는 불행을 자초한다.

 

 

벧엘의 하나님(1-15)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1)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9)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11)

 

야곱은 20년 밧단아람 처가살이를 마무리하고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31.3)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출생지’(31.13)로 돌아가는 귀향길에 오른다. 이때 하나님은 자기 소개를 벧엘의 하나님’(31.13)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신다. 잠시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그런데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고, 이어 형 에서와의 와나무다리 결투에서 평화와 샬롬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이제 아버지 이삭이 사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였다.

하지만 야곱은 어찌된 일인지 가나안 땅 세겜에서 땅을 사고, 그곳에 그만 정착함으로써 무엇인가 심각한 화근과 올무에 걸려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아니나 다를까 딸 디나가 히위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를 보복하기 위해 아들들은 할례언약을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쌓이고 만다. 다시 속고 속이는 거짓말과 보복과 복수가 난무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 오늘 본문 바로 앞 창세기 3430-31절에서 아버지 야곱과 아들들 사이의 대화가 좀 불길하기까지 했다.

 

하나님의 명령(1-8): 벧엘의 서원을 지키라.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고 예배자로 나아간다.

하나님 -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1).

야곱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2)

벧엘 거기서 제단을 쌓고(7)

 

하나님의 축복(9-15):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신다(9). 역시 야곱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10).

*창조명령을 받고 있다(1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땅과 후손(12)

 

야곱이 서 있어야 할 곳은 세상 세겜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그 하나님을 만난 벧엘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혹 우리 자녀들은 세겜을 기웃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소 잃을 정도가 아니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심각하다. 세겜은 야곱이 잠시 반면교사처럼 경험한 것으로 족하다. 굳이 우리도 쫓아가서 벼락을 맞을 이유가 없다. 벧엘이 안전하다. 벧엘이 소망이다. 벧엘이 축복이다.

그러려면 야곱과 그의 공동체가 했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2) 4절로 응답한다. 벧엘의 복을 받아 누리려면 우리도 버려야 한다. 죄와 옛습관과 세상적인 것들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들을 버리고 정결한 신부로 단장되어야 한다.

   

 

출생과 죽음(16-29)

르우벤의 통간(22)

 

   “또 득남하느니라 라헬이 죽으매 ”(17-19)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29a)

 

라헬이 죽었으므로 마땅히 정부는 레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혹시 아버지 야곱의 사랑이 빌하(라헬측)에게 넘어갈지 모르는 위기를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22) 야곱가문의 이야기는 예측불가의 첩첩산중(疊疊山中)으로 흘러간다. 이렇게 해서 아직은 희미하나 장자권은 르우벤은 사실상 배제되고(22), 앞에서 할례를 복수의 수단으로 삼은 시므온과 레위 역시 탈락하고(34.30), 유다 역시 며느리와의 스캔들에서 밀려난다. 그럼 어찌되는가. 훗날 요셉의 두 아들이 공히 기업을 물려받게 됨으로써 사실상 장자권은 요셉이 계승하게 된다.

   

 

부스러기 묵상

 

벧엘은 두 얼굴이 되어 야곱 앞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이야기(1-15)와 생사의 이야기(16-29) 그 사이에 르우벤의 통간사건이 자리하는 것으로 말이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섭리행전이 되어 도도하게 흘러가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진폭이 놀랍도록 넓다. 한편 다행이고 이제 좀 안심이 되는 것은 야곱이 벧엘을 통과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그의 가정은 끊임없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중이다. 천하의 야곱에게서 일어나는 아들들의 일탈이라는 점에서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게 맞는 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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