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vs 라반, 그 절묘한 시소게임(창 31.1-55)

20200219-21(묵상)

  

 

 

야곱 vs 라반, 그 절묘한 시소게임

Gen. 31.1-55

  

   본문 관찰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13a)

   야곱이 가나안 땅에 있는 그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17-18)

   야곱이 도망한 지 3일 만에 라반이 7일 길을 쫓아가(20-23)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20년 동안 내 품값을 10번이나 바꾸셨으며(41)

   언약을 맺고 여갈사하두다(갈르엣, 미스바) 여호와께서 살피소서(44-49)

   

 

미스바언약

 

야곱은 가나안에서 형 에서에게 심은 대로 이를 밧단아람에서 거둔다.

라반을 통해서다(25.27-34, 27.1-45, 6.7b). 실로 20년의 세월에 10번의 속임이었으니(31.38,41), 이는 형과의 장자권 다툼과 축복 가로채기와 쌍을 이루는 사건과 세월들이었다. 한편 라반은 내 신’(드라빔, 30)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증거하시느니라.”(50) 사이에 절묘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그런 라반임에도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사 말씀하신다(24).

   

 

. 야곱의 귀향(歸鄕, 1-20): 야곱이 라반을 떠나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3)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5b)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7b)

   “하나님이 이같이 ”(9)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11)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12b)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지금 일어나 돌아가라.”(13)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제물은 ”(16a)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16b)

 

귀향을 서두르는 야곱, 그의 밧단아람 20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벧엘의 하나님(28.10-22, 31.11-13)은 변함없이 늘 신실하시다. 20(38,41)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시다. 하지만 야곱은 어떤가.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찾아오심, 음성, 심방)를 받을 만한 어떤 특별한 점이 발견되는가.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현현을 맛보려면 어떤 공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정리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불러올(부릴, 조종 할) 수 있을 그런 자리에 있다고 하기엔 넘어야 할 숙제가 많다. 만일 이런 가정이 맞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과 힘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분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귀향길에 오르는 야곱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는 하나님을 유리하게 이용해 먹을 만큼 그리 탁월한 업적이 없는 사람이다. 최소한 밧단아람 20년의 세월들은 그렇다. 우리는 믿음이 좋다면, 성령충만하다면, 기도 많이 하고서, 거기에 40일 금식이라는 평범치 않은 노력(, 공로, 행위)까지 겸비한다면 하나님을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고 불러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오만이요 교만이며,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적절하다.

 

귀향, 그 은혜의 길이 열리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앞서 얘기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은혜다. 부족하고, 아직 거룩하다(온전하다) 하기에는 턱없이 함량미달인 야곱이며, 그의 행위 역시 하나님이 찾아오시기 할 만큼 완성도가 높지 못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를 찾아오신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분은 늘 이렇게 일하신다.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능력도 없음에도 그런 자를 사랑하시는 은혜의 호흡을 멈추지 않으신다.

 

귀향, 그 서원의 길이 열리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축복하신 것은 둘째, 20년 벧엘로까지 올라간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13) 하나님은 어떻게는 축복을 받아야겠다며 형과 아버지를 속인 야곱이지만 그가 잠시 도망자가 되어 피난길에 벧엘에서 행한 서원과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수태고지(25.23)를 통해, 그리고 아버지의 축복을 통해, 동시에 무엇보다 여기에 응답하기 시작하는 벧엘의 고백을 기억하신다.

이로써 그는 밧단아람에서의 20년 생활이 비록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속임을 되받는 참담한 시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축복으로 돌리셨다(7-12). 하나님은 벧엘의 기도와 서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아픈 만큼 성숙하다.

 

이처럼 변화(성장과 성숙)의 조짐은 분명하다. 야곱은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 쪽으로, 언약 속으로, 하나님께 응답해 내는 자로 세워져간다. 20년 전(38,41) 라반과 야곱이 처음 만났을 때는 두 사람은 다 속이는 자였다. 그런데 서로 부딪히며 지낸 세월 가운데 라반(30.27; 31.24,29)과 야곱(30.30; 31.3,5,7,9,11-13,16) 이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고백할 만큼 성숙해 있다. 놀랍다. 무엇보다 야곱은 앞에 자신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 그리 큰 흠이 없는 세월이었다는 뜻이다.

그는 귀향길에 나서기에 앞에 모든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으로 읽어낸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도 찾아오셔서 확증하신다. 물론 이제 아내들도 남편 야곱의 제안을 들었을 때 이 일이 하나님께로서 난 일임에 대해 의견을 함께 한다(16). 이로써 라반과 야곱 사이에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다. 마침내 귀향을 위한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출생지로 돌아가는 길, 이 길은 과연 속고 속이는 인간의 노림수가 좌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앞서 풀어가 주실 것인가.

   

 

. 미스바언약(21-55): 갈등이 해결되다.

   

 

1. 야곱(21-35): 에서의 도망자에서 외삼촌의 도망자가 되다.

 

   *하나님 라반(24):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라반 야곱(26-29):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29).

   *야곱 라반(31-32): 내가 생각하기를

   *라헬 아버지(라반, 35):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드라빔은 일종의 수호신과 같은 가정신(家庭神)이다(34, 17.5). 라헬이 왜 그것을 훔쳐왔는지 분명치 않다. 아마도 남편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는 라헬 자신이지만 법적으로는 언니 레아가 남편의 상속권을 이을 것을 자신 쪽으로 되돌리려는 어떤 움직임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라헬의 행위는 비록 남편 야곱이 이를 모르고서 한 말, 외삼촌의 신은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32a)라는 말대로 후에 벧엘을 지나 가나안으로 가는 노중에서 라헬이 베냐민을 출산하다 그만 죽는다(35.16-20).

참으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꾀돌이 야곱을 10(7)이나 속이던 라반도 그런 그가 나를 속이고’(27)라 한다.- 자기 딸 라헬에게 속고, 이번에는 라반이 아닌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 야곱 역시 속아 넘어간다. 어떻게 해서든 복을 자신에게로 돌려 놓으려는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고 돌고 돌아서 창세기를 관통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은 라반에게 찾아가신다(24). 라반 역시 하나님의 심방을 받을 그 어떤 자격이도 조건을 구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셔서 그가 행해야 할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다(24.29). 다 야곱을 위해서다. 하나님은 야곱을 위해서라면 라반 같은 사람을 찾아가시는 일쯤은 어려워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미스바에서 야곱과 라반이 조약을 맺게 되는 보이지 않는 섭리의 끈이다.

오직 은혜라 부를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그는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이미 라반에게 모든 에너지를 다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0년이라는 밧단아람에서의 세월 동안 야곱은 속이는 자의 겉옷을 벗어버리게 되었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벧엘언약을 지키는 자로, 온 가족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면하고, 한 사람의 이탈자 없이 모두 같은 마음을 따라 동행하게 하는 자로, 라반이라는 거침돌마저 하나님 앞에서 넉넉하게 이겨내는 자로 귀향길에 오른다.

어쩌면 하나님은 얍복 나루터의 결투를 앞에 두고서 라반과의 일전을 이처럼 전초전으로 처리하신지도 모른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때를 맞는다. 라반도, 그리고 에서도 하나님이 미리 작업하셔서 넘어서게 하신다. 하지만 얍복 나루터는 아니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1.2b-3a)

 

라반과 같은 자를 찾아가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교회와 가정과 일터와 내가 만나고 상대해야 할 사람들을 섬기는 자로 서야 한다는 영적 부담을 느낀다. 하나님은 야곱 편이다. 이미 그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다(9.12-13):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바삐 움직이신다. 그 사랑을 받은 자로 오늘이라는 삶의 무대에 오르는 아침이다. 사랑 받는 자는 사랑하는 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 다해 섬기고 따르며 충성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이처럼 주님께 드리며 달려가 보자.

   

 

2. 야곱 vs 라반의 앤딩: 미스바언약(36-55)

 

   *야곱 라반(36-42): ‘하나님이

   *라반 야곱(43-53a): ‘여호와께서

   *야곱 하나님(53b-55):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고

 

언약 당사자들의 자기 고백이 오고간다. 20년을 돌아보는 각자의 회고(회상).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월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정리해 보고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참 감사하고 복된 일이다.

 

야곱의 언약사(36-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42)

 

야곱은 꾀돌이로 밧단아람으로 밀려왔으나 그는 20년을 바르고 정직하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았다. 비록 외삼촌 라반이 품삯을 10번이나 속였을지라도 야곱은 하나님과 라반 앞에서, 동시에 자신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이 또한 불가능했을 것을 20년이라는 세월에 담아 간증한다. 그만큼 라반은 사악했고, 계산과 상술에 능한 거간꾼이었다. 20년의 밧난아람살이가 하나님이 라반을 책망하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렇듯 하나님은 야곱 편이시다.

 

라반의 언약사(43-53a)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48)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49)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53a)

 

라반에게는 앞에서 야곱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29a)라고 하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24,29,42) 것이 분깃점이다. 이런 라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임재하시고 말씀하신다. 다 야곱을 위해서다.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맺은 벧엘언약(28.13-15,20-22)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본다. 동시에 야곱 역시 이 언약에 충실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언약은 두 당사자가 공히 지켜야 할 책임이 있어서다. 이것이 야곱의 20년 처가살이를 읽어내게 하는 중요한 시각이다.

라반은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사건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래서였을까. 야곱 뒤에 계신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미스바언약을 맺고 피차 갈 길을 갈 것을 제안한다. 앞서 20년 전 야곱은 위로 하늘 하나님과 벧엘에서, 그리고 지금 아래로 세상에서 외삼촌 라반과 미스바에서 하나님의 이름 앞에 각각 언약을 맺고 돌무더기를 증거로 삼는다.

이로써 지난 20년이라는 밧단아람에서의 처가살이는 마침표를 찍는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자로 밧단아람으로 밀려들어갔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다시 고향 아버지 이삭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때는 언약의 성취자(12 아들, 약속의 땅으로 귀환)로서다.

 

   “야곱의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떡을 먹고”(53b-54)

 

흥미로운 것은 귀향을 위한 라반과의 어깨싸움을 마무리하면서 입술의 고백을 포함한 신앙고백과 간증을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인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 맹세하고,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린다는 점이다(라반이 고백하는 나홀의 하나님과 대조적이다. 비유하건데 야곱교회 20년 이야기와 라반교회 20년 이야기는 좀 다르다. 나는 어떤 교회인가).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20년의 처가살이를 마무리한다. 멋지다. 이렇듯 야곱은 생의 중요한 지점에 설 때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선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중심에 둘 것을 교훈한다.

   

 

부스러기 묵상

 

족장들이 사람들과 언약을 맺는 것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은 아모리(14.13, 군사동맹), 아비멜렉(21.22-34, 평화동맹), 이삭이 아비멜렉(26.26-33), 그리고 야곱이 라반(43-55)과 언약을 맺는다. 특이한 것은 아브라함만 하나님과 ’(15.18)후손’(17)에 대한 언약을 맺는다.

,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5,7,9,11-13). 다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것이 그의 부흥에 불을 당긴 것이다(3).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 안에 들어와 계시다를 넘어 이제 하나님이 앞으로의 미래에까지 들어오실 것이다는 것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가족들, 특히 아내들까지 하나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16). 그리고 말만이 아니라 야곱과 동행한다.

마침내 20년의 타향살이가 마무리되고 있다(38,41). 그 사이에 시비하고, 사기치고, 속이는 말로 가득했던 입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42)

이제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나님이 증인되셔서, 하나님 앞에서 야곱과 라반이 미스바언약을 체결했으니까. 20년 전, 벧엘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께 서원한 것에 응답할 준비가 되었다. 이제 그 벧엘로 올라갈 수 있는 준비는 마쳐진 셈이다. 그 안에는 실로 20년이라는 험악한 세월이 들어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 네 아내들로부터 12 아들을 얻게 하셨고(막내 베냐민은 라헬이 임신 중), 혈혈단신으로 외삼촌 앞에 섰던 그가 거부(巨富)가 되어 그야말로 금위환향 길에 올랐다. , 이 모든 것이 야곱의 속임수와 처세술이 낳은 결과인가. 아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를 이루신 것이다.

 

 

제목 날짜
열일곱살 요셉, 감사합니다(창 37.1-11). 2020.08.11
에서의 후손들(창 36.1-43) 2020.08.10
내 인생행전에 넣어주실 벧엘2(창 35.1-15) 2020.08.10
내 인생행전에 넣어주신 벧엘1(창 35.1-15) 2020.08.10
결(結)_벧엘체험(창 35.1-29) 2020.08.10
전(轉)_디나사건(창 34.1-31) 2020.08.10
승(承)_화해행전(창 33.1-20) 2020.08.05
기(起)_얍복대첩.b(창 32.21-32) 2020.08.05
기(起)_얍복대첩.a(창 32.1-20) 2020.08.05
야곱 vs 라반, 그 절묘한 시소게임(창 31.1-55) 2020.08.05
야곱주식회사(창 30.25-43) 2020.08.04
12지파 파노라마(창 29.31-30.24) 2020.08.04
야곱의 결혼이야기(창 29.1-30) 2020.08.04
기도③: 야곱의 기도(창 28.1-22) 2020.08.04
이삭의 기도(창 27.1-46) 2020.08.03
이삭 vs 아비멜렉: 승자의 법칙(창 26.26-35) 2020.08.03
다시 브엘세바로!(창 26.17-25) 2020.08.02
그랄의 추억(창 26.1-16) 2020.07.30
에서 vs 야곱: 장자권 이야기(창 25.19-34) 2020.07.30
아브라함, 또 다른 이야기(창 25.1-18) 2020.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