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기도(창 27.1-46)

20210717(양무리교회)

기도시리즈: 아브라함의 기도(18.16-33)

기도시리즈: 이삭의 기도(27.1-46)

기도시리즈: 야곱의 기도

   

 

기도: 이삭의 기도

Gen. 27.1-46

 

    본문 관찰

 

    에서의 결혼(26.34-35)

       축복 서론(1-4)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5-26)

       이삭의 축복(27-29)

       에서의 분노와 이삭의 예언(30-40)

       야곱의 망명 계획(41-45)

    에서의 또 다른 결혼(28.6-9)

  

 

이삭.에서 vs 리브가.야곱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4b)

 

부자(父子) 사이의 축복을 잠시 살펴보자.

아버지 데라는 아들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한 이야기가 없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다(12.3, 13.14-17; 15, 17-18, 21-22, 24장 참고). 아브라함 역시 이삭을 축복하는 장면이 소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는 장면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는 이야기 속에 결과적으로 이삭을 축복하신다(22.18).

그런데 이삭이 에서에게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4b)는 제안을 한다. 이 부분이 창세기의 흐름에서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아버지가 아들을 축복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하지만 아버지 아브라함도, 이삭 자신도, 그리고 이삭의 아들에게도 축복은 하나님의 몫이다. 특히나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게 수태고지를 통해 이미 태중에 있는 두 아들 중 차남에게 축복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점이 중요하다(25.23b).

이 사실을 누구보다 이삭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삭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서까지, 그것도 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장남 에서를 축복함으로써, 앞서 차남 야곱을 축복하겠다 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으로 거역(불순종)하고 있다. 사실상의 항명(抗命)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그리고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생생하게 경험한 에서가 아닌가.

   

 

44: 동상이몽

 

네 식구의 동상이몽이 숨 가쁘게 진행되는 중이다. 놀라운 것은 네 사람 모두가 다 하나같이 인간적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섭리의 역사하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서다.

 

[1]

아버지 이삭(1-4,18-41)

 

    “아버지가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27-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의 기름짐이며”(28)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29)

 

이미 수태고지(25.22-23)를 통해 하나님께서 큰 자 에서가 작은 자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섭리, 예정, 작정, )아버지 이삭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역하면서까지 끝내 에서(에서의 모양을 한 야곱)를 축복하고야 만다. 그런데 형의 동생 죽이기 계획을 안 후에는 다시 야곱을 축복한다(28.1-4). 참으로 어리석은 부모의 편애요 일그러진 두 얼굴의 사랑이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인 야곱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지만(18,20,21,22,24) 에서의 모습과 향취(16,23,27)에 속은 나머지 야곱을 에서라 생각하고 축복한다(27-29). 하지만 성경은 그릇된 축복의 성취로서 야곱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의 응답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모아간다(25.23 참조).

결국 아버지 이삭 앞에 선 야곱의 겉모습은 에서다(15-26). 그리고 이삭은 그가 에서인 줄 알고 야곱에게 축복을 한다(27-29). 하나님의 섭리적 예고(25.23)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에서를 마음껏 축복한다.

 

[2]

어머니 리브가(5-10,13-17,42-46)

 

에서에게로 가고있는 아버지의 축복(장자권)을 역시 저주를 자처하면서까지 야곱과 결탁하여 마침내 동생 야곱에게로 옮겨오고야 만다. 이렇듯 어머니 리브가는 남편과 장남 에서를 속이면서까지 축복을 차남에게 이동시키겠다고 몸부림친다.

리브가 역시 아버지(남편)를 속이는 일에 아들 야곱을 적극적으로 돕고 편애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서에게 갈 축복을 당신이 예고하신 그대로 결국엔 야곱에게서 그 축복의 샘이 흐르게 하신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은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음을 믿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형의 칼을 피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신하도록 퇴로를 열어준다. 한편 이 비밀리에 행하는 미션은 자신과 아버지 이삭이 그러했듯이 배우자(며느리)는 가나안 여인이 아닌 오라버니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게 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3]

장남 에서(1-4,30-41)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내게도 그리하소서!”(34)

 

장남 에서는 벌써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을 경홀히 여길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잘못된 계획에 동조하여 앞서 행한 동생과의 약속(25.31-34 참조)을 파기하려고 일을 벌인다. 청개구리 스타일이다. 정작 귀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는 복과 장자권을 가볍게 여기더니, 결국에는 미움과 증오의 활을 동생 야곱에게 조준한다(41):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뿐만 아니라 가나안 헷 사람의 딸들에게서 아내를 얻는다(26.34-35; 27.46). 물론 후에 본처들 외에 다시 아내를 들이지만 여전히 부모가 결혼의 방식이 아닌 자신이 결정권을 가진 결혼을 한다(28.8-9).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축복과 다스림 밖으로 점차 밀려난다.

 

[4]

차남 야곱(5-12,18-29)

 

그는 붉은 죽으로 장자권을, 형의 형체와 모양으로 축복권을 받아낼 때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 모사에 참여한다. 이를 위해 그는 정면승부가 아닌 속임수 전략을 쓴다. 차남 야곱은 정직하지 못한, 그래서 저주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임수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겠다고 어머니와 모사를 꾸민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는 죄 가운데 언행(言行)하고 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가르침대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받는다. 이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아버지를 속이는 두 번의 거짓말이 들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에서라는 거짓말이고(19),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순조롭게 사냥하게 하셨다는 거짓말이다(20). 야곱은 하나님까지 자신의 각본에 등장시킬 만큼 죄에 대해 대담해져 있다.

   

 

섭리적 은혜: 그래서 창세기 2523절이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

 

부모(이삭과 리브가)나 아들들(에서와 야곱)이나 네 사람들의 언행에는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 축복과 기도라는 매우 종교적인 행위에 하나님의 섭리(25.23)가 아닌 자신들의 의지를 앞세운다. 이러한 이삭의 가정(가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하나님의 섭리와 반대로 각자 자신들의 욕망을 쫒아 언행(言行)하는 이삭의 가정(가족)을 보는 중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지 않고 내 사사로운 감정과 편애를 따라 가족들을 대한 일들은 없었는지 우리 가정을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저주가 된다 할지라도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혹은 남편을 속이면서까지 야곱을 사랑한 리브가의 모습이 내게는 없는지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4인은 모두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는 예언적 수태고지를 비껴간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다. 천하의 이삭과 리브가 아닌가. 그래서 더 놀랍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언행함으로서 훗날 자식들의 대()에서까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함에도 말이다. 감히 신명(神名)을 거역하면서까지 이러고들 있으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이미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삭은 물론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따라야 할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를 믿음으로 신뢰하지 않았을 때에 일어나는 일들은 무엇일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마태복음 633절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6.31) 하는 것을 구한다면 이것은 이삭이 마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는 말씀을 버리고 자기가 에서를 축복하겠다는 것과 같은 셈이다.

둘째, 성경 대소요리문답 제1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헌법, p.29,59)에 대한 답에서 살펴보자: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함이라.”(11.36, 고전10.31, 73.24-28, 17.21-23)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 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녀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꿈(야망)을 투사시키는 경우다.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만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돈이 피난처가 되는 것, 이것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는 말씀을 보기 좋게 버리고서 이삭처럼 기도하게 되는 경우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라는 연약함과 완악함을 다 아시기에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중요한 교훈을 더 발견한다.

이삭처럼 하나님의 섭리적 은혜까지를 버리고 기도하는 것도 난처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데 우리가 뭐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또 다른 사악한 죄 또한 무서운 불신앙이다. 자칫 우리는 이삭의 헛된 기도를 보면서 기도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놓칠 수 있다.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가 결국 기도라는 말인가.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성경에서 기도하라 명하신다. 비록 이삭처럼 잘못된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를 통해 당신의 섭리와 역사를 잃어버리시거나 놓치지 않으신다. 이삭처럼 기도해도 결국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는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부스러기 묵상

 

부모와 두 아들, 이들 네 사람의 언행을 돌아보면서 나는 어떤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지금 어떤 해법(해결책, 정답, 해답)을 들고 삶의 여정을 걷는 중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같은 방향인가. 이는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동일한 시각이고 색깔인가. 하나님의 뜻 이루자고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식으로 자식과 그 자식에게 임하는 복이어야 한다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나 역시 얼마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 44색 이야기 앞에서 머뭇거리게 한다.

어떤 자식이 다른 자식보다 잘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얘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익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삭은 하나님의 복이 야곱에게니까, 에서에게 아비로서나마 복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이삭의 가정은 과녁이 빗나간 화살처럼 어수선하다. 이처럼 헝클어진 하나님의 예고하심(25.23b)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창세기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마저 거역하며 인간의 뜻을 펼치고자 언행하며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를 보여준다. 때문에 이 44색 인간적 모습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결국 하나님만 따라가야 한다. 그게 희망이다. 그럴수록 오직 하나님만을 따라가 보자. 그게 희망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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