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브엘세바로!(창 26.17-25)

20200209(묵상)

   

 

 

다시 브엘세바로!

Gen. 26.17-25

  

   본문 관찰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구조] 블레셋과의 갈등(26.1-33)

         그랄에서 일어난 일(1-22)

         브엘세바에서 일어난 일(23-33)

   

 

흔들리는 나그네 인생

 

오늘 본문은 이삭이 불레셋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우물과 샘 근원을 얻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았으나 끊이지 않는 시련은 계속되었다. 이삭은 철저히 나그네 인생이었다.

 

우물을 파다(18,21,22).

본시 유목민이 우물을 팠다는 것은 거기에 오랫동안 정작하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다. 이삭은 수 차례에 걸쳐 우물을 계속해서 팠다.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팠더니(18, 21.25)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21)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22)

 

르호봇(22)

마침내 다툼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이삭은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22)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정말인가?

*가뭄을 피한 것으로 다인가?

*블레셋과의 다툼이 사라진 것으로 다인가?

*우물만 있으면 족한가?

우리의 대답은, 아니 성경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브엘세바

 

성경은 22절과 23절의 사이를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하면서 행복해 했던 이삭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왜 또 갑자기 그곳을 떠나야 했는가? 이것이 23절을 대하는 우리 독자들에게 궁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23브엘세바로 올라가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 불레셋의 땅 그랄은 이삭이 정착하고 살아야 할 약속의 땅이 아니다. 그랄이 가져다 준 우물과 거부가 된 축복을 붙들고 살 것인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 그랄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다. 싸움이 잠시 그쳤을 뿐 언제 다시 세상과의 갈등과 분쟁에 휘말릴지 모른다.

- 실패하고 넘어진, 그리하여 탕자처럼 귀향하는 모습은 일단 아니다. 성공했고, 복을 받았고, 모든 것이 이제 순조롭기만 한 때였다. 숫한 역경을 딛고 마침내 척박한 땅에서 우물을 얻었고, 농사하여 거부가 되었다. 그런데 이때 이삭은 거기서부터새로운 결단을 내린다. 이렇듯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 브엘세바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곳이자(21.33), 이삭 역시 죽기 직전까지 거기 거하였다(35.27).

- 그곳은 하나님이 만나 주셨던 곳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던 곳이다.

- 이삭은 드디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나님만이 영원한 자신의 고향이며, 안식처라는 점을 믿은 것만큼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24하나님이 나타나시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삭에게 나타나신다. 그 시기가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언제인가? 흉년을 피해 불레셋으로 내려갔던 발길을 돌려 다시 첫 사랑의 땅인 브엘세바로 돌아왔을 때이다.

- 하나님은 지금도 이처럼 기다리신다. 우리에게 그 밤이 없는 것은 23절과 같은 결단의 순종이 없기 때문이다.

 

축복하시는 하나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25예배자로 회복되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 ‘예배자로 회복된다. 비록 보답할 수 없는 그 큰 은혜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았다.

- 불레셋에서는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았다(익명의 그리스도인). 그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이 없다. 그만큼 그는 영적으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거기 장막을 쳤더니

- 다시금 브엘세바에 정착한다.

-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예배를 드리고, 장막을 치고, 다시 우물을 파고, 이렇게 시작되는 브엘세바의 아침은 새로운 희망과 설래임으로 밝아 온다.

   

 

르호봇인가, 브엘세바인가.

 

우물은 그랄 골짜기나 다메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그곳에는 우물있었을 뿐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누리는 참 평안과 안식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져 우물이 있고, 눈에 보이는 약간의 번영만을 따라 가다가 보다 중요한 것을 보는 것을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만다. 지난 세월, 이삭이 그랬다.

그는 10년 이상을 이처럼 허비하면서 보내야 했다. 가뭄을 피하고, 거부가 되고, 우물을 얻고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이자 모리아산의 기적을 통해 다시 살아났던 걸어다니는 간증(증인)이었던 이삭이었지만 그 역시 삶의 현장에서 만난 시련 때문에 이 땅(세상)의 것을 붙잡고 말았다. 아니 눈에 보이는 세상(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 그를 붙잡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만큼이 은혜였지만, 어떻든 그의 그루터기처럼 희미한 신앙의 뿌리에 다시 생명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잃은 탕자가 아버지를 기억하던 것처럼 그는 브엘세바의 하나님을 기억하였다.

그렇다. 르호봇은 우리의 땅이 아니다. 그것을 빨리 기억하는 것이 브엘세바의 은혜를 맛보는 길이다. 르호봇의 헛된 평화를 붙잡고서 여기가 바로 천국일거라고 생각하는 빗나간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르호봇인가, 브엘세바인가를 분별하라! 현상은 비슷하다. 그러나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영안(靈眼)이 열리지 아니하면 브엘세바 같아 보이는 르호봇의 신기루에 그만 속아 결국은 침륜에 빠져 파멸하게 된다.

브엘세바를 기억하라! 바로 거기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향해 겸손히 나아가는 자만이 이삭이 누린 평안과 안식, 그리고 예배의 기쁨을 따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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