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또 다른 이야기(창 25.1-18)

20200206(묵상)

  

 

 

아브라함, 또 다른 이야기

Gen. 25.1-18

  

   본문 관찰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후손들(1-6)

   아브라함의 죽음(7-11)

   이스마엘의 족보(12-18)

   

 

아브라함의 아들들

 

                                   아브라함/사라/이삭

       이삭 득남(21.1- )          100/90/1

       아들 이삭을 바침(22.1- )

   → 사라 죽음(23.1-2)        137/127/37

       이삭 결혼(24.67, 25.20) 140/--/40   - 모친 사후 3

       득남(에서.야곱, 25.26)   160/--/60   - 결혼 20

   → 아브라함 죽음(25.7-11) 175/--/75   에서.야곱 1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3대에 걸친 이야기가 나온다(25).

이삭은 믿음의 조상인 아버지 아브라함의 그림자와 모리아 산 위에서의 제물 경험의 기억 가운데 성장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과의 그의 씨를 통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과연 어떻게 성취되어 갈 것인가? 이것이 이삭 이후의 창세기 이야기에서 우리가 관심해야 할 부분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에게서 이삭을(7-11),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12-18), 후처 그두라에게서 시므란을 비롯한 6명의 아들을 낳았다(1-6). 이로 보건데 아브라함의 아들은 총 8명이다. 과연 이 아들들 가운데 누가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갈 것인가? 그리고 다른 아들들은 어떤 삶의 여정을 걸어가게 되는가? 여기에 대해 본문은 중요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두라의 후손들(1-6)

 

아브라함의 후손은 많고도 다양하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후에도 그두라를 후처로 취하여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그의 전 생애에서 볼 때 상처(喪妻)하고 홀아비가 된 때는 아브라함이 중년이던 나이다. 사라가 127세에, 그러니까 아브라함 137세에 죽었고(17.1,17, 23.1), 그후 그두라와 결혼하여 6명의 자녀를 낳으면서 38년을 더 지내다가 175세에 죽는다(7-8).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은 오직 이삭에게만 집중되었다. 이처럼 성경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세속(일반)사가 아닌 구속사, 즉 언약의 성취에 있다(5.3-5). 그러나 성경의 관심은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선택의 역사만이 아니라 온 땅과 온 민족에에게로도 향한다. 그두라와 이스마엘에게로부터 나오는 자녀들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위해서는 가나안이 아닌 고향에서 며느리를 찾았다. 이점을 결혼에 대한 아브라함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었다고 볼 때 과연 그두라의 태생은 어디인지 좀 궁금하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가장 잘 한 일은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린 순종이고, 다른 하나는 이삭의 결혼을 위한 자세와 진행 과정이다. 이삭이 가나안 문화와 하갈이나 그두라의 영향력이 아닌 하나님 편에서 아브라함과 야곱 사이를 잇는 자로 살아간 것은 이런 영향력이 컸을 듯하다.

   

 

하갈의 후손들(12-18): 이스마엘의 족보

 

   아들들의 이름(12-15)

   12 방백(16)

   이스마엘의 죽음과 자손의 땅(17-18)

 

이스마엘은 사실상 아브라함의 장자(16.3,15-16)이지만 구속사의 핵심 라인(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족보)은 아니었다(17.20 참조). 이것이 이스마엘과 그 아들들에 대한 가장 정직한 진술이다. 하지만 이스마엘에게서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16.7-14, 17.20).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역사 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열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부스러기 묵상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75세였더라.”(12.4b)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하갈을 첩으로 준 때는

    가나안 땅에 거한 지 10년 후이었더라.”(16.3)

   “아브람의 99세 때에 사라는 90세니”(17.1,17)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100세라.”(21.5)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23.1)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라.”(7)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20a)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60세이었더라.”(26b)

 

하나님은 우르(Ur),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24.2) 데라와 그의 후손들을 이끌어내어 하란을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24.3) 이처럼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 때가 그의 나이 75세였고, 이삭을 100세에 낳고, 그리고 175세에 죽는다. 부르심을 받은 이후 실로 100년이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 보여주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서서히 아브라함의 역사는 이삭에게로 넘어간다. 물론 태어나고 자라,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려지는 현장, 그리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함께 서서히 이동해 온다. 한 시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는 셈이다. 하지만 그 안에 든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호흡과 흐름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난 자 이삭을 통해서다. 이것이 구속사다.

이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이야기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런 차이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모든 인간사는 다 그것 나름의 의미와 목적을 따라 흘러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이 중심인가, 하나님의 이루어 가시는 일과 역사에 하나님과 같은 방향과 색깔로 참여하고 따르느냐의 차이다. 이 차이가 창세기 안에 들어와 함께 이야기되지만 중심인가 갓길인가를 결정한다. 아브라함과 함께 이야기된다고 해서 다 아브라함처럼 쓰이지는 않는다. 이는 이어지는 이삭의 이야기에서도 동일하다. 물론 우리들의 역사와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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