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유월절.逾越節(출 12.1-28)

20210425(묵상)

  

 

 

첫번째 유월절(逾越節)

Ex. 12.1-28

 

    본문 관찰

 

    유월절(逾越節, 1-14)

    무교절(15-20)

    첫번째 유월절(21-28)

 

 

유월절(Passover)

 

유월절은 넘어가다, 뛰어넘다’(13,27)라는 뜻이다.

바로에게는 장자와 모든 생축의 초태생의 죽음 예고를(11),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8,11)는 의식 절차를 따라 행하면 하나님께서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유월하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13b)는 말씀대로 된 구원의 날을 주시는데 이를 기념하고 기억하여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키는 것이 곧 유월절이다(1-14,21-28).

한편 유월절이 시작되는 한 해의 첫째 달인 아빕월 14일 저녁부터 7일 동안 누룩(yeast)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먹으며 지키는 절기가 무교절이다(15-20, 23.15). 바로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받은바 말씀을 행하느냐 행치 않느냐,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애굽과 이스라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어린 양의 를 믿느냐에 있다. 두 사람(민족)이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호와의 유월절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13)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b)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1.5b)

 

구원은 언제나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1-2).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기념하면서 의미를 두는 것이고,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출발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한 해의 첫 달 10일에 홈 없는 어린 양을 취하고(3-5), 14일에 그 양을 잡고(6,21), 그 피를 집 문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7,22), 그 밤에 고기는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8-10) 허리띠를 하고 신발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는 것이 유월절이다(11).

바로 그 밤은 애굽의 모든 초태생(初胎生)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죽고 애굽의 모든 신들에게는 하나님의 벌이 임하게 된다(12).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피가 표적이 되어 하나님께서 피를 볼 때에 재앙의 칼을 거두시고 넘어가리니라고 말씀하신다(13,23). 이는 대대로 행할 영원한 규례이며(14,24) 열번째 재앙이 선포된 이후(11) 하나님의 명령대로 출애굽 원년 아빕월 14일 밤에 그대로 지켜졌다(28). 특별히 이 날을 기념하여 7일 동안 누룩(yeast)을 넣지 않는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이 그 뒤를 잇는다(15-20).

본문을 여러 번 읽어서 그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기에 마지막 재앙이 예고되어지고 집행되어지는 그 사이에 요구될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대대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자녀들이 유월절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하라고 주신 말씀에서 분명하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27)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 재앙의 칼로부터 저들을 구원하셨는가. 그렇지 않다. 어린 양의 피를 보시면 넘어가리니라 하신 약속을 그대로 지키신 것이다. 여기에는 매주 중요한 신학(神學)이 들어있다. 어린 양의 피가 아니었으면 이스라엘도 애굽처럼 재앙의 칼에 죽는 것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어린 양이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죽은 것이다. 이것이 대속(代贖)의 원리다.

나는 불순종과 불신앙이라는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죄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나를 심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다. 나를 바로처럼 취급하셨어도 아무 할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대신해 죽은 어린 양의 피를 보시면 넘으시고(23) 멸하는 자로부터 나를 보호하신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할 수 있는 기초가 어린양의 피였듯이 나 또한 죄와 사망과 저주의 옛사람(애굽)으로부터 새사람 됨이라는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된 것은 나의 공로나 자격이나 의로움 때문이 아니고 나를 위해 유월절 양이 되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의 공로 때문이다(고전5.7b):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나의 죄는 나를 하나님의 구원으로 넘어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유월(Passover)하지 못한다. 바로와 애굽처럼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를 수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나로 하여금 사망이라는 심판을 유월(逾越)하도록 하였다. 이는 내가 자력으로 유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피를 보시면 넘으시고”(23)라는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에 된 일이다.

나를 보시고서 넘어가리니”(13), 즉 유월(逾越)하리니가 아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13)이다. 핵심은 어린 양의 피, 곧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 나서, 내가 믿어서, 내가 하나님께 잘 보여서라는 내 공로와 행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은 성경적이다.

바로의 실패는, 그리하여 그것이 곧바로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대상이 된 것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힘과 노력과 지혜를 통해서 해 보겠다고 한 것, 그것이 죄(),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바로주의](Pharaohism)는 지금도 끊임없이 학습되어지고 있으며, 이미 바로를 통해서 검증이 끝난 죽은 법칙인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무슨 해답이 남아있는 줄 착각하고서 죽음의 문을 기웃거린다. 다 사탄의 장난이다.

열번째 재앙의 칼은 어린 양의 피를 볼 수 없는 자들의 몫이다. 하나님은 결코 다른 조건이나 길을 제시하시지 않으신다. 오직 내가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니”(13,23,27)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길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문이시다. 사망을 넘어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한 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부스러기 묵상

 

    “나의 죄속(罪贖)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으니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찬송가 2523)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유월절 기간에 이루어진다(26.2).

당신이 유월절 어린 양이시기 때문이다(벧전5.7b).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있던 나를 구원하사 나를 겨냥하고 있던 저주의 심판을 무력(無力)하게 하셨다. 비로소 애굽처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심판을 넘어가신, 즉 유월(逾越)하신 것이다. 마침내 구원을 얻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재앙의 공포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된다. 죄 아래 있는 자들을 심판하실 때에 나를 넘으사구원하셨기 때문이다.

나를 애굽과 바로의 아들처럼 취급하지 않으시고 심판은 넘어가시고, 구원으로는 문을 여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애굽에 대한 재앙의 날과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복된 날이 동시에 임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날 동일한 시간에 생()과 사()가 이렇게 대조를 이룬다. 인간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그걸 넘어가지(유월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유월(逾越)하신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죽음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유월(逾越)하사 살려주신 하나님, 분명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곧 나에게 소명이라는 몫으로 돌아왔다. 죽이지 않으시고 살려주시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이것을 알고, 믿고, 행하고, 그리하여 나를 이처럼 대접해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으로 받은바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주님께로 돌려드려야 한다. 이것이 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이유다.

한 번 더 눈이 가는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28)는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와 애굽으로 대조되는 세상과 다른 점이다. 저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로부터 듣고 보고 경험했지만 하나님을 아는 일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준행하였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듣고 배우고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바로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심판, 죽음), 모세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구원, 생명).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이 두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신다: “너는 어느 그림을 따라갈래? 너의 인생이라는 그림 또한 무엇으로, 어떻게 그려지기를 원하니?”

나 역시 심판이 집행되는 인생 편에 서지 않을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나를 평가를 하실 때 어린 양의 피로 씻은 바 된 나를 품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시고 나를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치지 못하게 하실 것”(23)이다. 오늘도 이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지켜야 할 유월절이 바로 오늘이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도 또한 내 안에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유월절과 무교절 같은 날이기를 꿈꾼다. 사실은 날마다가 유월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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