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⑧ - 메뚜기(출 10.1-20)

20210422(묵상)

  

 

 

재앙- 메뚜기

Ex. 10.1-20

 

    본문 관찰

 

    G&P 줄다리기(1-11)

    들어가서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다시 데려오니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급히 불러 바로에게서 나가서(16-18)

 

    신승인패(神勝人敗, 12-20)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내가 죄를 지었으니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네가 만일 거절하면

 

    “내가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내가 그들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2)

 

하나님 vs 바로 사이의 여덟번째 대결이다.

재앙이 거듭될수록 애굽 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는 사실이 확인될 뿐이다. 한가지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당신이 애굽에 행하신 일을 모세 네가 너의 자손에게도 알리게 하려고, 또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2, 표준새번역)라는 말씀이다. 애굽에게 재앙이 이스라엘에게는 교훈이 된다 하신다.

하나님은 바로가 그러나’(9.32)의 희망을 다시’(9.34) 범죄하여 강퍅케 함으로 바꿀 것을 아셨기에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5,12,15) 메뚜기들이 다 먹어 버리도록 하심으로써 바로가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주신다. 일이 이렇게 될 것임에도 꼼수를 통해 잔머리를 굴리는 바로(7-11), 굴복하기는 하는 것 같지만 또 다시 보란듯이 원점으로 회귀하는 바로, 참으로 측은하기 그지없다는 몰골이다(16-20).

   

 

G&P 줄다리기(1-11)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겠느냐?

      나의 백성을 보내서,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3, 표준새번역)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7)

 

하나님(GOD)은 바로(Pharaoh)를 향한 여덟번째 재앙에 앞서 이처럼 재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말씀해 주신다. 먼저 바로와 애굽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표징(이적)을 보여 주려는 것이고(1), 이는 결과적으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재차 언급하신다. 그리고 더 깊은 의도가 있는데 애굽에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2) 하신다.

애굽은 두려움과 공포감에서 하나님의 기적에 접촉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적이 가져올 애굽이라는 놀라운 구원의 서곡을 듣는 것으로 이를 경험하고 있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과정과 결과는 극과 극으로 구분된다. 모든 게 다 그렇다. 지금 흐르고 있는 시간도 ’(모세, 이스라엘, 성도)에게는 구원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지만 ’(바로, 애굽, 세상)에게는 멸망으로 가는 길이지 않은가. 조금만 영적(靈的)으로 보면 이렇듯 다른데 불행하게도 세상은 이를 알지 못한다. 이렇듯 죄와 전적무지(全的無知)는 양 날개가 되어 애굽과 바로의 행로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하나님은 바로의 교만함을 아셨고, 그래서 이를 책망하신다(3). 만일 돌이키지 않고 내 백성 보내기’(4)를 계속해서 거절하면 이번에는 메뚜기 재앙을 통해 애굽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5-6). 이것은 바로의 비책(秘策, 9.32,34 10.5)에 대한 통쾌한 한 방이다. 인간은 종종 바로처럼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를 더 어리석게 하고, 그래서 그럴수록 초라해질 뿐이데 말이다.

어떻게 된게 바로는 자기 신하들만도 못하다(7, 9.20). 그러니 감히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놓고 어리석은 협상이나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8-11). 모세는 남녀노소(男女老少)와 제물(우양, 牛羊)이 함께 가야한다고 말하고, 바로는 남자만 가라고 하니, 또 다시 하나님의 명령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함이 아니면 불가능한 언행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협상은 벌써 세번째다(10-11, 9.25,28).

바로는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냉소주의자의 기질 그대로다(5.2): “그래, 어디 다 데리고 가 봐라!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너희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10, 표준새번역) 자기 뜻대로 안되면 화부터 내는 것 하며, 하나님을 비웃고 있는 것 하며, 자신이 악하니까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것 하며,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으면 이렇듯 바로처럼 사는구나 싶어 아찔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사사건건 딴지나 걸고 있는 바로, 불순종하면 그 결과가 무엇인가를 뻔히 알면서도 재앙의 불 속으로 돌진해 가는 바로, 모든 것을 다 소유했으나 없어서는 곤란한 가장 중요한 것이 없을 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지루하리만큼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을 다 가졌을지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님이 정말 아멘!’이다.

   

 

신승인패(神勝人敗, 12-20)

 

메뚜기 재앙은 바로(Pharaoh)가 일곱째 재앙이라는 폭풍 속에서도 그러나’(9.32)라는 틈을 통해 만들어 놓은 인간적인 피난처를 하나도 남음 없이 다 집어 삼켜버렸다(12-15). 인간의 잔꾀가 하나님의 지혜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집요하심이 우리에게까지 정신을 바짝 나게 만든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승리하셨고, 역시 바로는 이번에도 패배하였다. 천하의 허풍쟁이라도 이를 부정할 순 없다.

이번에야말로 바로가 정말 자신의 범죄함과 하나님의 죄사함을 마음에서부터 시인하는 걸까. 하지만 죄를 시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9.27). 기도를 요청하는 것 역시 임기응변(臨機應變)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껏 매번 그랬으니까(8.8,28, 9.28). 입으로는 신자(信者)인 것 같은데 그의 삶을 보면 영 아니다. 마치 니코틴(nicotine)에 중독되어 있는 골초처럼 일단 한번 발동이 걸리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끽연(喫煙)을 하고 보는 식과 같다.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그게 여의치 않으면 슬그머니 하나님을 찾는 것,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수단으로 취급해서 결국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지극히 저질스러운 사기 행각이다. 급할 때는, 아쉬울 때는, 자신의 능력으로 불가능할 때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16-17). 일단 위기만 모면하려고 덤벼들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20). 이렇듯 바로는 습관성 거짓 증거자다.

바로는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와 같다. 이러고도 한 나라의 왕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기적을 목도하고서도 이 정도니 더 뭘 말하랴. 그러니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내가 나에게 속을 수 있다는 생각, 또 내가 나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 잠시 해 본다. 정말 그럴 수 있다. 바로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그런데 그나마 남아있는 그의 생명을 째깍째깍 도적질해 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부스러기 묵상

 

바로가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실행이 아닌 예고된 재앙 앞에 반응을 보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7-11). 하지만 그는 이번 역시 타협이 가능한 일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게 병()이다. 이게 죽어가는 마당에 할 짓이냔 말이다. 어리석어도 유분수지 도대체 어이가 없다. 벌써 여덟번째 아닌가. 이만하면 알아들을 만도 하고, 정신을 차릴 만도 한데 어찌된 게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이럴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여덟번째 재앙을 두고 모세와 바로는 몇 차례 만남은 갖는다. 하나님의 지시를 전할 때(3,6, “들어가서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여론에 밀려서(8,11, “다시 데려오니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그리고 재앙이 진행되고 있을 때(16,18, “급히 불러 바로에게서 나가서”), 이렇게 세 번이다. 특히 쫓겨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바로가 아니라 모세의 태도다. 그는 놀라우리만큼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린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가라하면 가고, 바로가 기도해 달라고 그러면 기도해 주고, 자신을 거부하면 아무런 저항 없이 쫓겨나 주고, 그러니까 불필요한 언행(言行)을 앞세워서 바로를 자극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충실할 뿐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모습인지 모른다.

모세에게서 목회(牧會)를 보는 것, 그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받은 바 소명과 사명에 충실하는 것,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앞세우지 않고 직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 바로 때문에 평형감각을 잃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보면서 균형을 잡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이지만 기도를 요청하면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그대로 행하는 것, 한 번도 아니고 전초전에서부터 여덟째 기적까지 능력 있는 삶을 살면서도 온유와 겸손으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12.3), 이것이 모세에게서 배워야 할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다.

   

    

제목 날짜
재앙⑩, 그리고 출애굽.EXODUS(출 12.29-51) 2021.04.22
첫번째 유월절.逾越節(출 12.1-28) 2021.04.22
마지막 재앙, 그 예고편(출 11.1-10) 2021.04.22
재앙⑨ - 흑 암(출 10.21-29) 2021.04.21
재앙⑧ - 메뚜기(출 10.1-20) 2021.04.19
재앙⑦ - 우 박(출 9.13-35) 2021.04.17
재앙⑤⑥ - 악질과 독종(출 9.1-12) 2021.04.17
재앙④ - 파 리(출 8.20-32) 2021.04.08
재앙②③ - 개구리와 이(출 8.1-19) 2021.04.08
재앙① - 피(출 7.8-25) 2021.04.06
하프타임.HalfTime(출 6.28-7.7) 2021.04.06
레위지파 이야기(출 6.14-27) 2021.04.06
언약(言約)이 해법이다(출 6.1-13). 2021.04.06
첫 탐색전 - 모세 vs 바로(출 5.1-23) 2021.04.05
入애굽 길목에서 생긴 일들(출 4.18-31) 2021.04.03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2(출 4.1-17) 2021.04.03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1(출 3.11-22) 2021.04.03
소명(召命)에로의 부르심(출 3.1-12) 2021.04.03
모 세 - 80년 이야기(출 2.1-25) 2021.04.01
이스라엘 - 350년 애굽史(출 1.1-22) 202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