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起)_얍복대첩.a(창 32.1-20)

20200222(묵상)

  

 

 

()_얍복대첩.a

Gen. 32.1-20

  

   본문 관찰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5)

   그가 400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6)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7a)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11a)

 

      A 플랜1 - 에서에게 사절단을 보내다(1-6)

         X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꿇다(7-12)

      A’ 플랜2 에서에게 예물을 보내다(13-20)

   

 

험악한 세월이야기a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47.9)

 

아직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야곱이다.

20년 전(31.38,41),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이 연로하신 아버지 이삭의 임종에 맞춰 함께 장례식이 있으리라 호언했던 그때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 일 때문에 외삼촌에게 몇 날 동안’(27.44) 소나기를 피하듯 지낸다는 게 그만 세월이 지났고, 그 사이 네 아내로부터 12아들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재산도 많아진 거부(巨富)가 되었다. 이제 그는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형의 저항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플랜(1, 2)을 동원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럼 벧엘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야곱은 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아무런 힘이 없음을 절감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는다.

그가 하나님께 항복하는 날을 맞게 되다니 놀라운 은혜의 강이다. 한 날개는 하나님께(언약에 기초한 기도, 9-12), 다른 한 날개는 사절단(플랜1)과 예물(풀랜2)에 의지하는 야곱에게서 아직도 여전히 잔머리를 돌리는 꾀돌이 야곱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나 여전히 영적으로는 성인아이인 야곱, 그는 이 모습으로 귀향할 순 없다. 그리 된다면 20년은 허송 세월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신청한 [얍복대첩], 얍복나루의 결투’(24-32).

   

 

꾀돌이작전(1-6,13-20): 플랜1, 그리고 플랜2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28.12b)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들을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1-2a)

   “그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더이다.”(6b)

 

하나님의 사자’(1-2)에서의 사백 인’(6) 사이에 야곱이 서 있다. 사실 20년 전에 벧엘에서 야곱은 이미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었다(28.12). 그런데 형 에서의 400인은 처음이다. 이 사이에 긴장이 흐른다. 여기에 대해 야곱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놀랍게도 재산을 두 떼로 나눔(7-8) 기도(9-12) 세 떼의 예물 보냄(13-21) 가족들 뒤따름(22-23)이라는 순서를 따라 에서와의 만남을 준비한다.

에서는 마하나임(‘하나님의 군대’)과 에서의 군대(400) 사이에서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언행(1-2)은 눈 녹듯 사라지고 없고, 보이는 형의 힘 앞에 떤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7a)

야곱의 병법은 실효성이 있어 보일 만큼 탄탄했다(13-20). 기도했지만 또한 최선을 다하다로 볼 수도 있고, 기도했는데 플랜1과 유사한 또 다른 제 2의 플랜을 세우는 게 맞느냐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어떻든 야곱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최선을 다한다.

   

 

기도하는 야곱(7-12):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보지만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 형을 어찌해 볼 방법이 못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양과 염소가 아니라 군사를 모집해 왔어야 했는가를 생각했을까. 모를 일이다. 어떻든 하나님의 사자들(하나님의 군대)을 보았음에도 앞서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실 하나님을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미 벧엘의 하나님’(31.13a)이 나타나셔서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31.13b) 하셨고, 이 명령을 따라 귀향길에 오른 것 아닌가.

더더욱 20년 전 아버지의 집을 떠나 외삼촌에게 피하는 길에 나타나셔서 야곱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지금 이 길은 20년 전부터 오늘 이때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있는 것임을 누구보다 야곱이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때 야곱은 이처럼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크게 다음 두 가지를 언행한다. 하나는 기도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11a) 하나님만이 진정 위기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부터 구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은 복되다. 이처럼 고난과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찾고 두드리고 구할 수 있는 자는 복되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복되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약속)에 호소한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12) 이게 정석(定石)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23.19)

드디어 야곱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주특기(비밀병기)인 거짓말과 속임수를 동원하는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제 이 모든 것을 안고 하나님의 품에 엎드린다. 하나님의 식대로, 즉 하나님의 말씀(언약)대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자리로 내려앉는다. 그는 두려워함에 대해 감추려들지 않는다.

그 옛날 형의 옷을 입고,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아버지 이삭 앞으로 나아갔을 때 아버지의 여러 의문 앞에 야곱임을 감추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를 속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두려워함을 감추거나, 그렇지 않다고 위장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이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아무런 자격도 힘도 능력도 없음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토한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흐느낀다.

   

 

부스러기 묵상

 

창세기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얍복 나루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일종의 전초전에 가깝다.

어쩌면 이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야곱에게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도 무릎을 꿇는 모습이 영락없이 우리들의 모습이어서다. 사실 400명의 군사가 밀고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눈썹 하나 끄떡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하며 충만한 믿음에 서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좀 밉상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바들바들 떨며 징징거리고만 있다면 천하의 야곱에게 저의기 실망하는 것 밖에 없지 않겠는가.

때때로 우리 역시 하나님을 완전히 실망시키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그런 모습으로 삶의 무대를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는데 비 오지 않을 줄 믿습니다!’라고 소리치며 우산을 준비하지 않고 집을 나서는 것도 좀 생각해 볼 일이어서다. 이처럼 우리네 삶은 여러 색깔로 물들여진 도화지와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지라도 지금 야곱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럼에도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쪽이지 않나 싶다. 비록 흔들리고는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다. 흔들리자 하나님 안으로 피난하는 것도 아니고, 흔들리자 하나님 밖에서 답을 찾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삶의 모든 것을 가슴에 안고 어떻게든 지켜내겠다고, 그래야 한다고, 하나님이 지난 어느 인생의 지점에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도 하셨다고, ‘하나님, 이번에도 살려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항복하는 중이다.

난 이런 야곱이 참 좋다. 이젠 헛된 자신의 거짓말 솜씨를 믿고 당당하지도 않다. 또한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낙심하여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운명에 맡기고 있지도 않다. 그는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모습으로 창세기 32장을 걸어간다. 그리고 곧 있을 얍복 나루의 한판 승부를 맞을 준비를 한다. 이게 야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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