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형들, 진실 앞에 서다(창 44.1-34).

20200913-14(묵상)

  

 

 

요셉과 형들, 진실 앞에 서다.

Gen. 44.1-34

  

   본문 관찰

 

   요셉의 시험(1-13)

   유다의 중보(14-34)

      섭리의 조각구름(14-24)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16b)

      유다의 참회록(25-34)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32a)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33)

   

 

이루어진다!

 

즐거운 잔치’(43.31-34)는 불행의 전주곡이었을까.

요셉은 어제의 잔치에서 음식을 5배나 베냐민에게 더 주더니(43.34), 이번에는 베냐민의 양식에 자신의 은잔’(3)을 넣어놓게 한 후 아버지의 집으로 귀향하도록 한다. 그리고는 사명이 주어진 자들을 보내 행렬을 급습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이를 통해 요셉은 베냐민을 향한 형들의 진심을 알아보려 한다. 형제들은 지난 22년 전에는 아버지로부터 더 사랑을 받은 자신을 미워하고 버렸다. 그럼 이번에도 허물이 드러남과 함께 더 사랑 받는 베냐민을 미워하고 버릴 것인가. 어떤 식으로 일어난 문제를 바라보고 또한 이를 해결할 것인가. 과연 형제들은 이 요셉의 시험지에 어떤 답안을 제출할까.

   

 

요셉의 시험(1-13)

 

다시 22년 전, 채색옷을 입고 형들을 문안하러 간 요셉을 죽이고 팔아버렸던 형들이 이번에도 자신처럼 편애(偏愛)를 받은 베냐민(43.34)을 버리고 자신들만 살 길을 찾아 또 다른 음모를 꾸밀 것인가, 아니면 흉년 1-2년차에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이번에는 은잔이 발견되는 허물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해 서로 희생하며 고통을 자신의 몫으로 대신할 것인가. 어쩌면 요셉은 이번 일을 통해 진정한 형제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믿음,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한 회복을 꿈꾸고 있는 지로 모른다.

일은 걱정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다 잘 되었다. 1년이나 구금되어 있던 시므온도, 아버지 야곱과 유다의 생명과도 결탁되어 있는 베냐민도, 그리고 흉년을 이길 수 있는 양식도 한아름 안고 아버지가 계신 헤브론으로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베냐민의 양식자루에서 총리의 은잔곧 허물이 나오다니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이미 이처럼 말해 버린 후여서 더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당신의 종들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9)

   

 

섭리의 조각구름(14-24)

 

누구보다 유다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통증에다 오금까지 저렸을 것이다. 가장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유다와 그 형제들은 가나안(헤브론)으로 가던 길을 되돌려 다시 요셉 앞에 엎드린다(43.26 참조). 형들은 요셉이 꾸민 절도 행위(시험)하지만 진짜 문제는 베냐민 문제를 형들이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있다.- 꼼짝없이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요셉은 자신의 나이 17세 때부터(37.2) 그의 나이 39세까지(41.46,53-54,42.1, 43.1-2, 45.6,11 참조), 그러니까 대략 22년 전에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자신을 향한 형들의 태도가(37.18-36) 바로 지금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베냐민을 향해서는 어떤지, 동시에 총리의 특별식(特別食, 43.34)과 은잔이 발견된 허물(12)에도 불구하고 베냐민에 대해 어떤 언행을 취할지를 보고자 했을 것이다.

지난 과거에는 속이던 형들이 지금 이번에는 자신에게 속아서 시험을 당하는 참으로 놀라운 시험을 통해 형들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는 요셉의 노림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형들은 회개를 말로서만이 아닌 마음과 행동과 풀어가는 과정까지를 통해 22년 전과 달라져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만일 형제들은 지난 22년 전 요셉을 미워하여 팔아버렸던 때의 모습이라면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슬피 울며 죽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지금 여러 언행으로 보여준 것처럼 과거와 달라졌다면 요셉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맞다.

이에 유다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16b)라고 고백하며 베냐민을 위한 중재에 나선다. 이젠 우리 모두가 다 죄의 값을 지불하겠다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의 고백을 한다(16b). 베냐민만 종으로 삼겠다는 요셉의 말에 다시 온 몸으로 중재를 이어가는 유다의 언행에서 22년 전의 죄악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조각구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 놀라운 섭리의 조각구름이 우리와 가정과 교회에도 보여야 되지 않겠는가.

   

 

유다의 참회록(25-34)

 

유다는 베냐민이 아버지 야곱에게로 되돌아가야 할 이유를 호소하듯 간청한다. 먼저 베냐민은 야곱의 노년에 아내 라헬을 통해 얻은 두 아들 중 생존자인데 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5-29). 또한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30a)어서 베냐민이 함께 귀향하지 못할 경우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버지 야곱에 대한 사랑에 호소한다(30-31).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다는 베냐민만 종으로 삼겠다는 요셉의 말(10,17)에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고백한다(32-34). 유다는 베냐민을 내어 놓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값으로 지불하겠다 한다. 형제를 대신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자리까지 성장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돌아보니 지난 22년은 요셉만 성장하고 성숙한 게 아니었다. 모두가 다 아픈 만큼 성숙해 있다. 죄를 알고(42.21), 가족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을 줄도 아는 자로 모두가 서 있다.

   

 

부스러기 묵상

 

그래서 유다의 후손으로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일까.

유다의 생명을 건 자기희생은 훗날 유다의 후손으로 오실(오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한다. 마침내 야곱가문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22년 전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유다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이웃(형제, 교회, 성도, 가족)을 구하려 한 적이 있는가. 이게 어찌 하루 아침에, 맘 먹는 순간 그리 될 수 있는 것인가. 놀라운 것은 요셉의 나이 17세였을 때와 22년이 지난 때에 일어난 비슷한 상황에서(요셉의 편애 vs 베냐민의 편애) 야곱가의 형제들은 전혀 다른 언행을 하는 자로 성숙해 있다.

이제는 자신을 희생하며 형제들과 아버지를 위해 던지고 있고,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만나게 한 베냐민을 버리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다. 요셉은 보았다. 지난 22년 전에는 자신을 죽기고자 했고 버렸던 동일한 그 형들이 이제는 서로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단순히 형들이 절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상처는 별이 된다. 22년 전, 그 아픔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 사이 모두들 실패와 좌절, 그리고 아픔과 절망의 세월들을 지나왔다. 애굽의 요셉만 그런 게 아니라 가나안(헤브론)의 가족들 역시 하나 같이 다들 고통의 세월을 품고서 모진 세월을 달려왔다. 그 속에서 조금씩 성숙해 갔고, 이제는 형제를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냥 시간만 지나온 게 아니었다. 그냥 요셉의 꿈만이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이제는 어디에 내어놓아도 쓰러지지 않을 강한 용사들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 마침내 애굽에서도 살아남아 마침내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어낼 자들로 준비되고 있었다. 이것이 요셉을 먼저 애굽에 파송하신 하나님의 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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