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탐색전 - 모세 vs 바로(출 5.1-23)

20210414(묵상)

  

 

 

첫 탐색전 - 모세 vs 바로

Ex. 5.1-23

 

    본문 관찰

 

    애굽의 바로(1-9) - 여호와가 누구이기에(2)

    이스라엘 백성(10-21) - 왕은 어찌하여(15)

                                     - 너희가 우리를(21)

    하나님의 모세(22-23) - 주여 어찌하여(22)

 

 

출애굽 스타트

 

참으로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모세와 바로의 첫 대면은 일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 뿐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도 비웃음을 치며 깐죽거리기 시작한다. 아예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9)이라 폄하해 버린다. 살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은 가중되는 노역 때문에 모세를 불신하기에 이른다(10-21; 참고. 4.31). 모세는 시작하자마자 위기에 봉착하고, 이때 이를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다 고통스러울 뿐이다. 위기다. 분명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위기가 시작되었다.

   

 

애굽의 바로(1-9)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2,9b)

 

바로가 어떤 사람인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2) 모세와 바로의 대화는 서로가 일방적이다. 타협점이 불가능하고 서로의 생각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이 일로 해서 이스라엘의 노예생활은 더 무겁게 되었다(7-9). 바로가 의도한 것은 이스라엘이 모세가 말하는 것이 거짓말’(9)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상이 하나님에 대해서 갖는 전형적인 생각이다. 진리를 거짓이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그가 몇 마디의 말로 바뀔 것이라 바라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싶다. 세상이 얼마나 거대한 성벽과 같은 것인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마치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격이다.

모세와 바로의 대결은 하나님과 애굽 신의 싸움이다. 그런데 지금 이 영적 전쟁이 애굽 신의 우위로 첫 전초전이 마무리된 듯하다. 그러나 배수진을 친 바로의 해법이 고작 고통을 더 가중시키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직시(통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이게 없다. 이런 영적 통찰이 없다. 그러니 두려워하고 바로의 처분만을 의지할 뿐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10-21)

 

    “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너희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15,21)

 

하나님이 개입하셨으나 어찌 된 것이 일은 되는 게 없다. 오히려 더 불행하고 고통스러워질 뿐이다(10-14). 백성들은 이렇게 된 원인을 유감스럽게도 바로에게서 듣고 싶어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왕은 어찌하여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15) 그리고 그에게서 듣게 된 대답은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17)는 것 때문이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 이것은 이미 모세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바로를 만나기에 앞서 전달해 준 것이었다(4.27-31).

그런데 좀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니까 모세를 원망하는 것으로 일차적인 반응을 보인다(20-21). 이렇게 반응하는 것의 옳고 그르다는 뜻이 아니라 이것이 이스라엘의 가장 정직한 실존이다. 상황을 인식하는 눈, 사건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실력, 바로의 정체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영성이 없다보니까 단지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좌충우돌한다.

모세와 바로, 그 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측은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하나님을 염두에 둘 여유가 없다. 단지 자신들에게 닥친 고통의 짐만이 사태를 바라보는 유일한 잣대다.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이스라엘의 모습,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길가에 있다 바위 위에 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8.12-14)는 인간 심성의 밭처럼 지금 이스라엘이 그 꼴이다. 이미 모세를 통해서 들은 하나님의 애굽 메시지가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4.27-31), 이게 결정적인 문제다.

   

 

하나님의 모세(22-23)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는 고통스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에게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도 거부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3.19-20, 4.21-23). 이 사실들을 다 알고 있는 모세였지만 그 역시 사람 아닌가. 그 역시 흔들린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 누구 하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 어찌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종들의 영적 고통 아닐까.

하지만 하나님은 대사를 행하시기에 앞서 이 은혜를 받기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격 없었는가를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로 되어 있는 이스라엘, 하지만 당장 보여지는 상황이 아니다 싶으니까 고통 너머의 세상을 보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이스라엘, 바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버둥거리는 이스라엘,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편 모세는 이 모든 것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그리고 기도한다. 모세는 달랐다. 하나님만이 해답임을 아는 사람다운 모습이다. 모세는 자신의 초라함보다는 백성들의 고통이 더 참기 어려운 짐이었고 아픔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사명과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만 앞서 광야에서 던졌던 질문과 같은 그런 자리로 추락하지 않는다.

   

 

부스러기 묵상

 

바로는 이스라엘에 대해 철저하게 냉혹하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어떻게 될 것 같으면 목표물을 본 맹수처럼 달려든다. 그런 그에게 자비를 베풀라 한다. 이게 이스라엘의 순진함이다. 하나님을 향한 냉소주의(2)가 판을 치는 애굽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진리를 거짓말이라 날조하는 여론몰이 앞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거대한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은 모습이 지금 애굽의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마음대로 될 것으로 생각하는 세상 앞에 이스라엘과 모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도대체 출구가 보이질 않는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셨음에도 누구 하나 그걸 믿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다. 이게 5장의 솔직한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바로를 이길 자는 누구인가. 이스라엘, 혹은 모세인가. 아니다. 모두가 다 나가 떨어져 버렸다(15-23). 지극히 단순하고 평이한 결론이지만 하나님 외에는 바로와의 싸움을 승전(勝戰)으로 마무리할 자 아무도 없다.

이스라엘이 깊어가는 고통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은 이것이다. 인간이 짊어지고 가는 삶의 숙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인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길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이다. 보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좌절과 실패가 깊어지면 그럴수록 하나님의 승리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다(4.27-31 5). 그들은 일단 말씀대로 나갔다(1).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했더니 되더라.”였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실전에서는 이론처럼 되어주질 않았다.

이제 그 다음이 문제다. 과연 이스라엘은 이 결과 앞에 어떤 논리를 개발할까. 우리를 봐도, 이스라엘을 봐도 그게 좀 그렇다. 그래서 답답하다. 5장처럼 살아서는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삶의 흔적들은 많은 부분 5장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왕은 어찌하여 ?”(15), 그리고 모세를 향해서는 너희가 우리로 그들의 손에 죽이게 하는도다.”(21)라는 흘러간 옛노래를 반복하고 있으니 이걸 어쩌나.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을 보며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본다.

세상(바로)는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한다. 이게 세상이다. 하지만 이 망령된 생각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에서 어찌될까. 이것이 하나님(모세) vs 세상(바로)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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