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세 - 80년 이야기(출 2.1-25)

20210408-09(묵상)

  

 

 

모 세 - 80년 이야기

Ex. 2.1-25

 

    본문 관찰

 

    왕궁수업 40(1-10)

    광야생활 40(11-25)

   

 

350 + 80 = 430

 

시대를 역류하는 산파들의 신앙과 삶(1.15-22)에 주목한다.

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무엇이 옳은가를,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가를 깨닫게 하고 또 도전하게 했음이 분명하다. 참으로 장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350), 그것도 고통과 고난과 시련의 파도에 휩싸여 지내는 기간이었음에도 끝까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신실한 백성들이 남아 있음이 놀라울 뿐이다. 아직 율법도 주어지기 전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산파들 모세의 부모로 이어지는 믿음의 사람들의 언행(言行)을 주목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왕궁수업(1-10, 7.20-23, 11.23)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믿음으로 그를 석 달 동안이나 숨겨 두었으며

      이집트 왕의 명령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11.23, 현대인의성경)

    “그때부터 모세는 이집트의 학문을 다 배워서

      말과 행동에 뛰어난 인물이 되었습니다.”(7.22, 현대인의성경)

 

출애굽기 122절이라는 바로(애굽)의 법이 시퍼렇게 시행되던 바로 그때에’(7.20a) 모세는 태어난다. 1장이라는 암흑기를 살아가면서도 모세의 부모가 될 두 레위인은 당당하게 결혼을 한다(1, 6.20, 아므람과 요게벳). 그리고 아이를 잉태하고 열 달 후에 아들을 낳는다(2). 하지만 그 당시는 애굽으로부터 강제 노역은 기본이고,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곧바로 죽음을 당해야 하는 처참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따라 보란듯이, 그것도 당당하게 승부해 간다.

죽여야 할 아들을 3개월이나 남이 모르게 기른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건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 부모는 3년 전에 이미 모세의 형 아론을 낳았었다(7.7). 그리고 그 위에 미리암이라는 비교적 성장한 누이가 있었다(4,7). 그렇다면 모세는 이들에게 셋째 아이다. 모세의 부모는 11녀를 이미 둔 상태고, 그래서 아들이 태어나면 죽음인 바로의 포고령(1.22) 앞에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로 하여금 이 위기의 때에 앞서 두 자녀를 주셨으니 이런 난세의 때에는 아이를 더 낳지 않아도 되지 않겠소!”

그럼에도 셋째를 가졌다. 과연 어느 부모가 자기 자녀를 죽음으로 가는 길로 끌고 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모세의 부모는 또 다시 잉태를 하고서 아들을 낳고, 바로의 낮을 피하여 100일이 가까울 무렵까지 기른다. 모세의 부모는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2),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7.20) 아이임을 놓치지 않는다. 이제 곧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때가 차고 있지 않은가(15.13,16a).

부모는 애굽이라는 태에서 하나님이 언약하신 400년을 보호하신 후에 마침내 가나안에 새생명 가운데 잉태케 하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바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11.23b)던 것이다. 가까운 훗날 이들이 자라 약속의 땅의 주역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이 바로의 논리, 애굽의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었다.

그 부모의 그 아들이다 싶다. 모세를 보는 눈이 남달랐고(2, 11.23), 그래서 모세를 양육하던 때에 아브라함의 언약을 그에게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40년의 왕궁수업 속에서도 애굽되지 않고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11.24-26). 이것이 사도행전 722절이었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을 볼 수 있었던 모세였다. 그는 이미 아브라함과 맺어진 하나님의 언약(15.13,16a)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야생활(11-25, 7.23-29, 11.24-26)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7.25)

    “장성한 모세는 믿음으로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일시적인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 당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11.24-25, 현대인의성경)

 

이제 모세의 나이 40세다(11-12, 7.23-24). 연대기로 계산하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한지 390(350+40)년이 된 셈이다.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400년이 가까이 왔다(15.13,16a).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던 430년과는 아직도 4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12.40). 그렇다면 모세는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닌 지금 뭔가를 위해 일하기 시작한 셈이다.

모세의 언행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고 모세의 자의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모세의 인생을 심각하게 꼬이게 만드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어떤 소명(사명)을 주신 적이 없다. 그럼에도 모세는 서둘렀고, 사람을 죽이는 폭력까지 동원한다. 이건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는 것,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이 된다.

그것만큼 아직 모세는 준비되지 못했다. 모든 일은 의욕과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걸 이룰 수 있는 자질과 성숙 역시 중요하다. 모세를 보면서 몇 가지 경계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본다. 첫째, 내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적임자라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 둘째, 나의 열정이 하나님의 계획보다 앞설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 나의 생각과 열정을 앞세워 일할 수 있다. 셋째, 뜻이 정해졌다면 수단과 과정이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 40년 뒤에야 행하실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동조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

한편 모세는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어머니 요게벳에게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다(1-10, 6.20, 15.13,16a, A). 동시에 애굽의 선생들로부터도 애굽의 모든 학문을 다 배웠다(7.22, B). 그런데 모세는 모든 것이 보장된 B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게 될 A를 선택한다.

모세는 부모의 기대와 바램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40년의 애굽 왕궁이 가져다 준 풍요와 보장된 성공의 조건들도 그가 영원한 가치를 붙드는 것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는 애굽, 즉 세속화되지 않았으며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요셉처럼 자기와의 싸움에서 또한 승리했다. 어머니 요게벳의 영적 영향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생명을 건 모범을 보였고, 그 증거가 바로 모세였다. 그런 그녀가 모세에게 뭘 기대하고 소망했겠는가. 역시 부모인 우리로서도 손에 땀이 나는 대목이다.

   

 

부스러기 묵상

 

애굽(세상)과 바로의 패배를 재촉하는 사람들이 빛난다.

먼저 산파들이다(1.15-22). 그리고 모세의 부모들이다(1-2). 또한 바로의 딸이다(5-10). 산파들과 모세의 부모들은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어떻게 된 게 바로의 딸까지 이 일에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바로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람 모세다.

모세는 40년의 궁중수업(7.22)에도 불구하고, 또한 어찌 보면 애굽의 왕인 바로의 딸까지 합세해서 모세를 회유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머니 요게벳의 품에서 자랄 때 가르침을 받았던 하늘의 법칙에 믿음으로 서고 만다. 바로의 품에서 애굽(바로, 사탄)을 대적하는 자로 자랐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히는 역설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 생애의 2/380년을 보낸다. 40년은 광야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11-22, 7.23-29, 준비기). 그리고 뒤 40년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40년을 이끈 지도자로서 보낸다(3.1-34.12, 7.30-44, 사역기). 왕궁과 광야는 모든 것이 다 다르다. 200만이라는 민족을 이끌 지도자가 되기 위해 그는 광야라는 현장에서 준비된다. 다른 사람들은 광야에서 실패하더라도 모세만큼은 그럴 수 없다. 이것이 광야교회’(7.38)가 갖는 독특성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루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광야에서 맞는다. 모세와 하나님의 시간표는 달랐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부르짖는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24)신다. 그 사이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애굽시키셔서 준비시키고 계셨다. 모세는 자기 열심에 의해 준비되는 사람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애굽과 히브리인 모두가 다 모세를 버렸다(14-15). 그러나 애굽처럼 사는 것을, 애굽에서 사는 것을 거부한 모세를 하나님은 귀히 보셨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40년은 하나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광야에 익숙한 사람으로 준비되는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기막힌 섭리하심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약속과 구원이라는 실타래를 모세가 풀려고 했을 때는 엉키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려 하신다(23-25). 서서히 밑그림이 드러나고 있다.

한편 갈대 상자’(3)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라는 점이 뭔가 깊은 복선이지 않나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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