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서2(출 21.18-36)

20210927(묵상)

   

 

 

언약서[2]

Ex. 21.18-36

 

    본문 관찰

 

    언약서(20.22-23.33, 24.7 참조)

       언약서: 손해보상법(18-36)

  

 

손해보상법

 

과연 율법의 정신은 무엇일까.

피해를 준 만큼 보상해 주고, 피해를 받은 만큼 보상을 받는 것으로 다 해결이 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인지, 이 정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것인지, 더 이상 요구하지 말라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이 쌍방 간에 권익이 보호되는, 양 측이 서로 상생(相生)하는 길이 최선일 것 같다. 그래야만 어떻게든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무모한 보복의 악순환을 방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 손해를 입힌 자(18-32)

 

    ∙이웃 간의 싸움(18-19)

    ∙주인이 종을 쳤을 경우(20-21)

    ∙임신한 여인을 낙태케 하였을 경우(22-25)

    ∙사람이 종의 몸의 일부(, )에 손상을 가했을 경우(26-27)

    ∙소가 사람을 받았을 경우(28-32)

 

동해보복법(23-25)이 함께 언급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받은 만큼만 되돌려 주라는 뜻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핵심(가치)는 그 이상의 보복은 금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해자 역시 이미 피해를 입게 한 일에 대해 필요 이상의 보복과 보상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안정 장치로 여겨진다. 동시에 피해자 역시 필요 이상의 보상을 기대하거나 요구함으로써 새로운 갈등과 싸움의 빌미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guide line)인 셈이다. 즉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원리가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율례(규정)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해되어온 율법 가운데 하나다. 율법의 정신은 없어지고(무시하고), 율법의 단순 적용만 난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요구할 때 율법대로라는 명분에 따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합법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이 자행되었다. 그러면서도 성경대로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까지도 쉽게 뛰어 넘어버린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작 이 법에 의해 교묘한 보복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들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5.38-42)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동해보복법]은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그래서 충격적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이 율법의 근본 정신이었다. 하지만 이를 망각하게 되자 율법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당당하게 보복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는 근거로 밖에 이 규례를 사용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율법이 얼마나 살벌하고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느냐는 얘기다.

하나님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되갚아야 할 보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최대한으로 시행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동해(同害)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말하자면 무모한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입법 취지였다. 지금 주님이 이 정신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하신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인 복음이다(5.17).

   

 

물질적 손해를 입힌 자(33-36)

 

    ∙짐승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졌을 경우(33-34)

    ∙소 끼리 받아 죽였을 경우(35-36)

   

 

부스러기 묵상

 

제목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용은 대략 이런 동화다:

코뿔소와 사자가 자기만 물을 먹겠다며 싸운다. 그러다가 지쳐 잠시 휴전 중인데 머리 위에 독수리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때 코뿔소가 결국 싸우는 것은 독수리 먹이가 되는 것 밖에 뭐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이를 사자와 이야기하면서 둘은 서로 화해한다. 그리고 사이좋게 둘이 함께 물을 마신다.

오늘 말씀과 뭔가 연결이 되는 것 같아 그 동화가 내 생각 속을 맴돌고 있는 중이다. 서로 살 생각, 즉 상생(相生)을 해야지 서로 죽일 생각, 그러니까 공멸(共滅)하겠다고 칼을 뽑아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영혼 없는 미물에 불과한 동물도 이 사실을 아는데...

가해자는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이다. 오직 피해자만이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피해자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만들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왼편 뺨을, 겉옷을, 십 리를 바로 이처럼 함께 나누어야 할 때를 살아가는 자들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래주셨으니까 우리도 이제는 그래야 할 것 같다. 내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걸 좀 더 마음 깊이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멀고 긴 신앙연습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비록 더딘 걸음일지라도 한 걸음씩 또 한 걸음씩 그렇게 시작해 보자. 율법을 살아 숨쉬게 하는 복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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