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스타트(출 13.1-22)

20210428(묵상)

  

 

 

가나안 스타트

Ex. 13.1-22

 

    본문 관찰

 

    무교절(3-10)

    초태생(1-2,11-16)

    광야길 - 구름기둥과 불기둥(17-22)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나님은 광야세대까지 내다보신다.

하나님의 이야기가 단절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애굽 세대가 할 일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8,14). 출애굽 이전에 유월절과 무교절이 명령되고 준행되었다12.1-28). 그런데 놀랍게도 출애굽 이후에도 똑같이 이 두 절기가 명령되고 있다(12.43-13.10). 그만큼 비중이 있다는 얘기다. 하나님은 출애굽이 갖는 영적 의미와 교훈이 광야에서 출생하여 가나안의 주류가 될 후손들에게까지 연속성을 가지고 전승되기를 원하셨다: “아빕월 이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4-5,10)

   

 

MADE IN GOD(1-16)

 

무교절은 앞에서 언급했듯이(12.15-20) 해마다 출애굽을 기념’(3)하기 위해 명령된 절기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건을 오늘이라는 시간에 그대로 되살려야 할 책임이 부모들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8). 그러니까 광야세대의 부모들도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3a) 행하는 이 예식을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말미암음이라.”(8) 가르쳐야 한다.

절기는 때가 되면 치러야 하는 무의미한 단순 반복이 아니다. 그 안에 흘려야 할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하고, 다시 재현해야 할 영적 교훈이 후손들에게 그대로 살아 있는 가치로 전수되어야 한다. 이 책임이 부모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평범하지만 그러나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가슴 떨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5b,10,14).

한편 초태생(初胎生,1-2,11-16),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에 관한 규례 역시 하나님의 주권, 그러니까 애굽의 초태생(初胎生, 11.1-12.14,21-30)들처럼 취급하지 않으시고 살려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살려주셨으니 처음 낳은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명령이다. 이것 역시 출애굽 부모 세대들이 이것이 어찌 됨이냐?”(14a)라고 묻는 광야 자녀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법이다.

   

 

광야행진(17-22)

 

하나님은 비록 가까울지라도’(17) 그 길이 아니라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18)는 길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이후의 여정을 인도하신다. 왜 이러실까. 언뜻 보기에는 돌아가는 낭비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 하실 때는 하나님이 뜻하신 무엇인가가 들어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7b) 이렇듯 하나님은 옛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싫어하신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는 성도의 길은 때로 이처럼 험한 십자가 길이다. 하지만 그 끝은 부활의 영광이 임하는 아침이다.

그렇다면 이것의 사인(sign)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다(21-22). 그러니 믿고 따라가면 된다. 부모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없듯이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으로 저들을 이끄사 소원의 항구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앞으로 주어지는 광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는 것이어야 한다. 같은 의미에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런 언행은 삼가야 한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만나는 광야에서도 동일하다.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나옴(19)

아버지 야곱이 이것까지 내다보았을까: “요셉은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49.22) 이 부분에서 놀라운 것은 자손에게 한 요셉의 유언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50.25)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15.12-21) 야곱(49.22) 요셉(50.25) 모세(19)로 이어지는 언약벨트. 특별히 요셉은 조상들의 언약을 믿었고, 모세는 이를 기억하고 응답(성취)함으로써 아브라함언약을 또 다른 한 면에서 성취해 낸다.

   

 

부스러기 묵상

 

나는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잘 전승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기적과 은총은 축복임과 동시에 그것을 이루신 하나님을 높여야 하는 책임이 함께 주어져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신앙의 전승은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행간(行間)을 읽어보면 부모는 자녀가 절기를 이해하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명하신 기한에 그것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알게 된다(14). 물론 자녀에게 절기를 가르치면서 지키는 것과 함께 말이다(8).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가 지켜지고 이어지는 것은 가정에서부터라는 말씀이 부모인 나에게 내 가정과 자녀를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 일본(日本) 오사카(Osaka)에서 일본 선교사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일본의 기독교가 점차 그 힘을 잃어가는 것은 가정 안에서 신앙의 계승이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믿는 부모들마저도 자기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영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한 세대가 가면 일본의 기독교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 했다. 벌써 일본인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문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점, 이게 아프다.

모태신앙(母胎信仰)으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8절을 듣고 배웠고, 그것과 함께 14절 같은 질문들을 갖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리고 교회는 이를 가르쳐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성탄절에 대해서 14절처럼 질문하기도 전에 해마다 자연스럽게 그것은 8절처럼 내 안에 쌓여갔다. 어쩜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정의 부모와 자녀에게 기대하시는 점이었지 않았나 싶다.

이제 동일한 특권과 책임이 부모인 나에게도 주어지고 있음을 알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자녀의 대()에까지 이어지도록 건강한 부모로서의 영성을 유지하며 살아야겠다. 그래서 내 부모가 나에게 영적 유산을 전승해 주었듯이 나 역시 자녀들에게 아름답고 빛나는 하늘 영광을 유업(기업)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언제나 첫 번 유월절과 무교절의 환희가 나에게서, 그리고 자녀들의 자리에서 각각 언제나 새롭게 재현되어지도록 먼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일, 이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신앙과 삶의 자리가 아닌가. 내가 맛본 출애굽(구원)의 영광스러움이 동일한 신앙고백으로 대()를 이어 자라고 열매 맺도록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 멈출 수 없는 행복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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