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숭배자들의 최후(출 32.15-35)

20211016(묵상)

  

 

 

금송아지 숭배자들의 최후

Ex. 32.15-35

 

    본문 관찰

 

    모세의 언행(15-20)

    아론의 책임 전가(21-24)

    레위 지파의 헌신(25-29)

    모세의 중보기도2(30-35)

  

 

()에 대한 책임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24.18a)

    ∙모세가 돌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32.15a)

 

모세와 아론, 두 지도자의 대조가 극적이다.

지금껏 출애굽의 노정에서부터 함께 동역해 온 형제였다(4.14-16,30-31, 7.1-2,6-7, 12.1,43, 16.9-10).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40일의 부재 기간(24.18, 31.18, 32.1,15)에 아론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특별히 아론은 자신의 언행을 교묘하게 편집한다(1-6 22-24). 하지만 모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위기의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에 전력투구함으로써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영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한편 레위지파에 의해 우상숭배자들이 제거될 때 아론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낸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20) 버린 것은 잘 한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만들어 친필로 쓰신 증거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린 것은 어떻게 될까(19). 여러모로 긴장 국면이 고조되고 있다.

   

 

아론의 책임 전가(21-24)

 

모세는 아론에게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21)라고 물었다. 모세는 작금의 사태를 큰 죄’, 즉 중죄(重罪)로 받아들인다. 이때 아론은 백성이 모여자신에게 한 말(1)을 그대로 모세에게 전하는 것으로 끝이다(23). 이것은 금송아지를 숭배함으로써 야기된 언약파기의 책임이 자신에게는 없고, 백성들이다는 책임전가를 염두에 둔 대답이다. 모세는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에는 지도자인 아론의 책임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아론은 이를 비껴가려 하고 있다(22).

하지만 아론의 비겁함과 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백성들에게 금을 가져오라 한 것까지는 같지만 그 다음, 가져온 금을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24b)는 말은 순 거짓말이다. 출애굽기 기자는 아론이 부어서 새겨 만드니”(4a), 즉 아론이 금을 녹여 금송아지를 만들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지금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이러고도 지도자 아론일까.

더 있다. 아론은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4b)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5) 하였고, 다음 날 40일 전에 시내산언약을 맺을 때 했던 것 그대로 금송아지 언약식을 벌인 것(6; 24.1-11), 이 극악한 죄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하지만 모세는 작금의 걷잡을 수 없는 방자함의 원인이 아론 때문임을 정확하게 간파한다(25a).

이 일은 내적으로 만이 아닌, 외적으로도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25b). 한편 모세가 언급한 원수가 누굴까? 지금껏 이스라엘의 원수는 애굽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희를 애굽케 하셨다. 그런데 원수는 애굽(12)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언약을 맺어 성막(예배)에 참여하게 될 이스라엘과 그들이 거하는 곳에도 원수는 호시탐탐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을 무효화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다. 백성을 지나 아론까지 넘어뜨렸다면 이스라엘의 심장부까지 원수가 가라지를 뿌린 것이다. 그럼에도 아론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원수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으니...

   

 

레위 지파의 헌신(25-29)

 

비로 이때 모세가 빛난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이스라엘을 품고 하나님 앞에 넙죽 엎드려 중보기도했고(11-13), 그 문제의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20) 했으며, 급기야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를 모으는데 이때 레위지파가 헌신하여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가담한 자기 형제(친구, 이웃) 3천명을 죽임으로써 죄악을 해결한다(26-28).

이 일을 마치고서 모세는 레위지파에게 헌신에 따른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선포했는데(29), 실제로 신명기 33장에서 세 번째로 언급하면서 레위지파를 가장 길게 축복한다(야곱의 축복에서는 유다와 요셉이었다. 49.1-28 참조). 놀라운 것은 신명기에서 시므온과 레위 중 레위는 이처럼 회복되는데, 시므온은 언급조차 없다. 레위는 흩어질 것이라 했는데(49.7b), 분명 각 지파 속으로 흩어지지만 복을 받는 것으로 성취된다.

이렇게 해서 레위지파는 지파가 시작될 때의 아픔과 절망을 다시 복으로 되돌리는 일에 성공한다(49.5-7 33.8-11). 하나님은 복을 화로, 화를 복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언약의 복을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화로 바꿔버렸고, 레위지파는 화를 복으로 되돌렸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죄악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분명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레위지파처럼 하나님의 부르심 앞으로 나아오는 일, 참으로 멋진 그림이다. 죄악을 끊고 거룩으로 역전시키는 삶, 우리 역시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 안에서 이처럼 쓰임 받고 싶다.

   

 

모세의 중보기도2(30-35)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21,30,31,32,33,34)임을 주목한다. 이것은 죄에 둔감한 이스라엘과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때문에 모세와 이스라엘 이 둘 사이의 반응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모세는 통분히 여기고, 하나님을 향해 중보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정작 죄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숭배(예배)할 뿐만 아니라 시내산언약에서 보여준 모습을 금송아지에게 재현한 듯하기까지 방자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다(6; 25.11b).

이러한 때에 모세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비록 앞서 드린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지만(11-13 14), 그럼에도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참여한 3천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았으니(28) 모세의 마음이 결코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모세는 곧바로(이튿날)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보며 다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도 그는 비장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2)

하나님이 기록한 책(32; 69.28, 3.16, 4.3, 3.5, 20.12 참조)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으시면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하나님의 용서를 위한 속전으로 드릴 비장한 각오를 고백하고 있다. 이것이 무능력한 지도력(아론, 23)과 건강한 영적 지도자(모세, 32)의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14,34-35):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34a)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와 연결시켜 보면 사자’(33.2)만 보내고, 정작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33.3a)라 하신다. 머리카락이 서는 것 같은 심상찮은 대목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바꾼다(33.12-13 14): “내가 친히 가리라!”(33.14) 참으로 놀라운 중보기도의 능력이다. 마침내 가나안을 향한 행진 나팔은 다시 울려 퍼진다(34).

   

 

부스러기 묵상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9.20)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 때문에 3천명이라는 백성들이 죽었다(28).

그런데 왜 아론은 포함되지 않았을까? 다소 엉뚱한 생각인 줄 알지만 금송아지 우상숭배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든 생각이다. 아론이 회개했다는 말도 없다. 그도 역시 금송아지 가루를 탄 물을 마셨을 텐데... 그런데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시작된 폭풍이 지나고 난 후에 아론은 여전히 건재하다(34.30,31). 여러모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병행구인 신명기 96-21을 읽다가 아침 안개 거치듯 의문이 풀렸다. 하나님은 아론을 멸하려 하셨으나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죽이지 않으신 것이다(9.20).

 

    모세의 기도

    ① 금송아지를 숭배한 이스라엘을 위해(32.11-13): 공동체

    ② 아론을 위해(9.20):

    ③ 우상숭배자 3천을 제거한 후(32.30-35): 공동체

    ④ 하나님이 가나안에 함께 동행하시기를 위해(33.12-13): & 우리

 

모세의 전방위 사역이 눈부시다. 그는 하나님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백성들의 죄악이 용서되어지기를 위해, 연거푸 바람 잘 날 없는 이스라엘의 휘청거림 앞에서 자신 역시 그 죄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호렙산 아래 위를 오가며 동분서주(東奔西走)한다. 무엇보다 그는 기도의 자리에 온 몸으로 무릎을 꿇는다. 진정으로 생명을 건 기도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언행(言行)할 수 없는 인고의 몸부림, 그랬기에 하나님은 그때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 가신 것이다.

가장 막다른 절망의 순간에도 그는 희망을 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기도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때에도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그에게는 절망도 사치스러운 것이었고, 포기한다는 것은 곧 불신앙을 의미했다. 모세에게는 기도할 수 없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님마저도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뜻을 돌이키실 만큼 그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흔들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9.20)

 

모세처럼 사람을 살리는 기도를, 공동체를 회복하는 기도를, 문제를 해결하는 기도를 드리며 살고 싶다. 그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11,31). 문제는 이스라엘이 일으켰으나 그 해결은 늘 모세의 몫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죄에 대한 분노와 죄인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때문에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신다. 어떻게 살면 모세처럼 기도할 수 있을까. 내게도 죄인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있는지...

 

   
제목 날짜
언약 갱신하기: 회복(출 34.10-28) 2021.10.18
언약 갱신하기: 준비(출 34.1-9) 2021.10.18
은총 입은 기도의 사람, 모세(출 33.12-23) 2021.10.12
금송아지 후폭풍(출 33.1-11) 2021.10.12
금송아지 숭배자들의 최후(출 32.15-35) 2021.10.12
기도④: 모세의 기도(출 31.18-32.14,30-35) 2021.10.12
Made by B & O(출 31.1-17) 2021.10.10
성막과 그리스도9(출 30.11-33) 2021.10.10
성막과 그리스도8(출 30.1-10, 34-38, 37.25-29) 2021.10.10
제사장의 상번제(출 29.38-46) 2021.10.07
대제사장 위임식(출 29.1-37) 2021.10.06
대제사장의 예복(출 28.1-43) 2021.10.06
성막과 그리스도7(출 27.9-21) 2021.10.05
성막과 그리스도6(출 27.1-8) 2021.10.05
성막과 그리스도5(출 26.31-37) 2021.10.03
성막과 그리스도4(출 26.1-30) 2021.10.03
성막과 그리스도3(출 25.23-40) 2021.09.29
성막과 그리스도2(출 25.10-22) 2021.09.29
성막과 그리스도1(출 25.1-9) 2021.09.28
시내산 40일기(출 24.12-18) 2021.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