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7-20(묵상)
순종의 복 vs 불순종의 화
Lev. 26.1-46
본문 관찰
율법의 근원 원칙(1-2)
순종에 따른 축복(3-13)
불순종에 대한 저주(14-45)
계약적 축복과 저주
성결법(17-26) 전체의 결론부다.
하나님 자신의 언약적 서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순종을 권고하시기 위해서 오직 상(축복, 1-13)과 징계(저주, 14-46)라는 두 가지 수단을 사용하신다. 이로써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스라엘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시내산언약(출 19-24장)이 체결되었을 때는 그 관계의 장래에 대한 축복만 있었고, 저주는 언급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처음 결혼한 것과 같은 허니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이스라엘이 황금 송아지와 언약을 세움으로써 하나님과의 ‘결혼사역서’를 거역한다. 결국 나무나 빨리 하나님을 배신하였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준엄하였으며(출 32-33장), 이어서 언약이 회복되었다(출 34장). 이 새롭게 회복된 언약에서 축복과 저주가 언급된 것은 당연하다.
순종에 따른 축복(1-1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 ”(3)
축복의 조건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1)와, 안식일 준수 및 성소를 공경하는 것이다(2).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3), 이때 주어지는 상급이 뒤따른다(4-13). 먼저,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5b) 하신다(4-5). 또한, 하나님께서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6a) 이로서 번성하고 창대하게 돌보실 것을 약속하신다(6-10). 셋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막을 너희 중에서 세우”(11a)시고 이스라엘 중에 행하여 저들과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신다(11-13).
불순종에 따른 저주(14-46)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내가 … 놀라운 재앙을 내려 …”(14-16a)
한편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14)에서처럼 불순종에 대한 경고를 축복에 비해 4배나 길게 언급된다. 만약 불순종하면 징계와 심판이 예고되고 있다. 이는 각종 질병과 수확물의 약탈(16), 전쟁 패배(17), 가뭄과 흉작(18-20), 불경기와 기근과 전쟁(21-26), 그러고도 돌이키지 않으면 끝내는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멸망할 것이다(27-33). 이렇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땅은 안식을 얻겠지만(34-35), 이스라엘을 흩으실 것이며 포로의 땅에서 곤고하고 쇠잔해 갈 것을 예언한다(34-39).
그러나 최종 결론 부분은(40-45)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들을 맞아 구원의 은혜를 내리실 것을 분명하게 언약(권고)하고 있다(잠3.11-12). 이처럼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저들을 회복하실 것이다. 결국 선(先) 징계와 심판이지만 이는 후(後) 회개와 회복을 위해 더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 징계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부스러기 묵상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들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45)
레위기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호흡하며 숨을 쉰다.
놀랍다. 레위기여서 더 그렇다. 언약에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다. 여기에 대해 이스라엘이 지불해야 할 최종적인 값은 놀랍게도 出예루살렘이라는 멸망과 入바벨론이라는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인가. 만약 여기서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그것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고 회복할 수 없는 최종적 결말이라는 점에서 그 무엇으로로 다시 채울 수 없는 절망이고 파국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길고 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회복에 대한 약속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40-42) 이것은 이스라엘이 홀로 작사한 희망사항이 아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다(44). 그랬기 때문에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고, 우리의 희망은 복음이 열어가는 것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