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3(묵상)
하나님의 빛, 성소에도 죄가 있는 곳에도
Lev. 24.1-23
본문 관찰
등잔대와 진설병(1-9)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죄(10-14)
동태복수법(15-23)
성막과 신성모독
성소와 관련된 두 성물, 등잔대와 진설병에 관한 규례와(1-9),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죄와 살인죄에 대한 규례가 다시 추가로 주어진다(10-23). 이것들이 소홀히 되지 않도록 다시금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절기(23장)를 다루다가 갑자기 성소와 신성모독을 다루는 율법으로 넘어가는 것은 흐름상 부자연스럽다.
등잔대와 진설병(1-9)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사(예배)는 절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 영원한’(3,4,8), ‘항상’(4,8), 그리고 반복적으로 드려져야 한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성소의 등잔불인데(2-4), 이 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꺼지지 않고 항상 켜져 있어야 한다.
등잔대(2)는 7가지에 등을 달아, 감람유를 통해 불을 밝혀 성소를 환하게 한다(출 25,37,40장 참조). 이는 하나님이 빛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또한 ‘정리할지니’(3,4)는 제사장들이 아침마다 등잔대에서 타고 남은 재를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고 심지를 갈아 주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한편 떡상(5-9)은 열두 개의 떡을 여섯 개씩 두 줄로 진설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떡’이다. 안식일마다 새로운 떡으로 바치고 떡상에서 내리는 묵은 떡은 ‘진설병’(출25.30)이라 하여 제사장들이 먹는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의미한다. 성만찬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죄(10-14)
동태복수법(15-23)
이스라엘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위기 상황의 사례(case)를 들면서(10-14), 이와 관련한 율법이 선포된다(15-22). 특별히 신성모독과 살인죄가 모두 사형으로 다스려지고 있다. 이는 십계명의 정신과 같은 의미이다.
슬로밋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모독, 11)하는 일이 일어났다. 다름 아닌 하나님과 부모를 가볍게 여긴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그를 돌로 쳐 죽이라 하신다. 본토인은 물론 거류민 곧 외국인( 이스라엘化된 이방인으로써 순수한 외국인, 일시적으로 고용한 외국인과 구별된다)들도 이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22).
한편 동태복수법(lex talionis)이 소개된다(17-21). 이것은 개인적인 복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수의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20a)는 율법이 원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는 최대 그 이상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한 자를 의협심이나 정의감에 불탄 나머지 또 다른 이름의 보복과 복수가 난무하게 되는 것을 금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부스러기 묵상
“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더라.”(23a)
신성모독은 늘 오용되고 변용되고 남용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할 때도, 심지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까지도 신성모독죄라는 프레임에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했었을 정도다. 율법에 따라 증인을 세우면 꼼짝없이 협의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얼마나 악하고 파렴치하냐면 율법의 이름으로 신성모독죄든, 동태복수법이든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짓 증인이 그 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