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王 대관식: 사울을 찾습니다(삼상 11.1-15).

20250928(양무리교회)

 

 

 

사울대관식: 사울을 찾습니다.

삼상11.1-15

 

 

    사울대관식, 그 전후사 인식

 

    先_ 부르심 - 9.20-21

    後_ 기름부음 - 10.1

          _ 하나님의 영이 임하다 - 10.10

          _ 정치적 즉위식: 제비뽑기 - 10.17-

          _ 종교적 대관식: 왕이로소이다! - 11.15

    結_ 왕이다, 그 이후... - 13.1-

 

 

사울이 오고 있다.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진다는 것은 사사시대가 끝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과정, 그러니까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분위기가 혼돈스럽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는 길이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무엘상 9-10장에서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있음에도 뭔가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엿보인다.

그러면 사울에게서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할 어떤 결격 사유라도 발견되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일단 이 문제는 사울 자신의 약점이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크게 두 흐름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이러한 엇박자가 발견된다. 큰 그림에서 왕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진행되는 일이다. 그런데 왕을 원하던 백성들은 두 얼굴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낮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오늘 살펴보려는 것은 이것을 상대하는 사울이다. 이 모든 혼돈스러운 소용돌이 가운데 사울은 어떤 사람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를 맞이하는가.

 

 

혼돈[1]

제비뽑기 그 이후(10.25-27)

 

    *10.17-24 정치적 즉위식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하고

      멸시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27)

 

지금 바로 앞 단락, 사무엘상 10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고(1-8; ),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 임하였고(9-16; ), 제비뽑기를 통해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혔다(17-24; ). 그런데 이런 특별한 날에도, 두 종류의 사람은 거기에도 있다.

 

    A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26)

        vs

    B 어떤 불량배’(27; ‘행실이 나빠’ - 2.12 참조)

 

하나님이 택하신 자’(24)인 사울을 통해 이미 큰 일이 시작되었고 밝히 드러났다. 그러자 이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다(A).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반대하고 이를 허무는 자들이 있다(B). 분명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며 일하심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 눈에 보여지고 있음에도 말이다(①②③).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안이 그렇듯이, 지금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신앙공동체에도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쉽게도 지극히 일반적이다. 어떻든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있고,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전하는 메시지 곧 설교가 있고,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나타내시는 제비뽑기가 있고(), 왕으로 세우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고(), 이에 온 백성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분위기에서도 이와 반대되는 행실이 나쁜(불량배들; 2.12 참조) 자들의 등장이 멈춰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없고,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결여된 것 때문이다.

하지만 사울은 달랐다. 그럼에도 사울은 일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잠잠함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조용히 품으며 왕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정죄하고, 응징하고, 벌을 받게 할 수 있는 쪽으로 행실이 나쁜 불량배들에게 언행하지 않는다.

 

 

혼돈[2]

암몬 vs 사울(이스라엘 33만 군사; 1-11)

 

    *11.1-13 - 암몬을 물리치고 길르앗 야베스를 구하다.

    *11.14-15 - 종교적 대관식: 이스라엘 초대 이 되다.

      13.1a - 사울이 왕이 될 때에 40세라.

 

아직 사울은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지기 전이다(14-15 참조). 하지만 이미 10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이 다 아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10.24)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무렵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암몬이 길르앗 야베스에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1a). 그런데 암몬의 전쟁에 따른 선전포고가 심상찮다(2). 물론 더 심각한 것은 이것에 대한 길르앗의 언행이다(1b,3). 사사시대를 넘어 마침내 왕정시대를 시작할 사울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울이 하나님과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전히 이스라엘은 혼돈이다. 물론 언제나 어디나 혼돈(갈등)과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사울이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으로 사무엘에 의해 밝히 드러났음에도 전쟁과 사울을 연결할 마음조차 없다는 점이다. 이렇듯 사울을 인정할 마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혼돈의 시대라는 뜻이다.

사실 이 전쟁의 시그널에 이스라엘이 보여야 할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사사기에 의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그 고통 가운데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자 사사를 세우신다. 그리고 사사는 평화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암몬전쟁에 이스라엘이 보여야 할 반응은 당연하다. 그런데 회개도 없고, 하나님께 부르짖음도 없고, 사무엘과 사울을 찾는 것도 없다. 곧바로 항복선언이다: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1b)

이 불신앙과 영적 무기력과 하나님에 대한 그 어떠한 요구도 없는 파렴치함이라는 혼돈의 파도는 길르앗 야베스를 통해 온 이스라엘을 뒤덮을 시한폭탄 같아 보인다. 그 선두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서 있는 형국이다. 사사시대가 문을 닫는 그 끝자락에서 또 다시 불신앙이라는 혼돈의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 어찌 이스라엘만의 혼돈이겠는가.

 

    [패배주의 멜로디]

    *우리 형편으로는 어쩔 수 없어, 당연히 안 되지. , 그러고 말고!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어, 그래 없어, 나도 알고 너도 알지!

    *또 이번에도 헌신하라고? 자기나 하지! 이번에는 포기해, 그게 맞아!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득이고 옳아, 그러자구, 예산도 사람도 없잖아!

    *네 주제를 알아야지, 뭐 하자는 뜻이야!

    *우리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어!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둘째는, 이미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10.24)로 사울을 지명하여 부르시지 않았는가. 이는 모든 이스라엘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앞에서, 이럴 때 필요하다고 요구하던 왕이 아닌가: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8.20)

그런데 10장에 이미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이 선택해 놓으신 사울을 찾지도 않는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기껏 한다는 것이 구원할 자’(구원자, 3b), 그러니까 사사기의 사사를 찾는 수준 정도의 요구다(3,9,15 참조). 그것도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3b)이다. 사사에 대한 기대도, 왕에 대한 희망도,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구원의 요청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패배주의다.

 

 

사울 스타트: 사울을 찾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13b)

 

이때 사울은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6)되어 길르앗 야벳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1-11). 그리고 이후에 자신을 거부하는 자들까지 용서하는 성숙함을 보여준다(10.27 11.12-13). 이를 기회로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15a) 나라를 새롭게 한다. 마침내 공식(공개)적으로 인정을 받아 왕의 대관식이 열린다. 사울은 참으로 신실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정확하고 정당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혼돈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울은 안녕하다. 이번에도 사울은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한다(12-13). 앞에서는 행실이 나쁜 불량배들에게 잠잠했지만(10.27), 그러나 이번에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13)

이것이 지도자가 보여주는 리더십이다. 이것이 혼돈과 불신앙의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다. 이때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행이나 공과를 앞세우지 않는다. 자칫 눈에는 눈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그러므로 사울처럼 여호와께서를 늘 앞세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부스러기 묵상

 

사울은 이 혼돈의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자로 하나님의 시야에 들어온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준에 적합한 자로 하나님께, 사무엘 선지자에게,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등장한 사울은 그에게 성령이 임함으로서 지금 진행되는 일련의 흐름이 사무엘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사울 자신의 능력이라는 그릇에 정치적 야망을 담아 왕의 권력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겸손으로 순종하며 주를 따르고 있는 사울이라는 것을 사무엘상은 분명히 밝히는 중이다.

사울이 정치적 즉위식이라 할 수 있는 제비뽑기(10.17- )에서 온 이스라엘 앞에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침내 11장에서 종교적 대관식이라 할 수 있는 왕이로소이다!’(15)에 준하는 대관식을 갖게 되기까지 사울이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하면 이렇다. 다름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는 자로서의 너그러운 모습이다.

이로써 사울의 등장은 왕정시대의 앞날을 희망과 긍정으로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하나님은 이 사울을 이스라엘에서 찾아내셨다. 그리하여 그를 새사람(새마음; 10.6,9)으로 이끄시고, 성령으로 감동하게 하시고(10.10),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마침내 사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진다.

지금까지는 기스의 아들로서 살아오다가, 그 길 끝에서 선지자 사무엘을 만나고, 하나님은 여기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제비뽑기를 통해 이스라엘 앞에 공식적으로 그를 택하여 세우시는 일을 하시고, 마침내 암몬전쟁을 승리로 이끌기에 이르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15a) 나라를 새롭게 한다. 사울은 왕이 되기까지 작은 허물도 없어 보였다. 하나님은 그를 찾아내셨고, 그는 하나님의 기대에 온전히 반응한다

이것이 사울의 인생전반전 40년이다(13.1a). 거의 완벽에 가깝다

 

 

  • 2025년 9월 28일(주일)에 양무리교회에서 한 설교입니다. 계속해서 사무엘상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 설교는 일단 사울의 생애 부분까지만 1차로 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등장하는 16장 정도에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설교문은 대부분 이번 설교를 위해 작성한 것이고, 건너뛴 본문은 이전에 묵상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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