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설교(Preaching)
1400송구영신 | 사6.1-5
임마누엘의 영성(3): 부르심 앞에서
성경을 ‘임마누엘’의 관점에서 읽어볼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를 조망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계시하시고, 이를 나타내 보이시는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이를 위해 먼저 하나님이 ‘임마누엘하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임마누엘의 첫 징검다리는 구약 이사야 7장 14절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약 700년 후에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성취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로서 마침내 임마누엘하신다.
그런데 이 임마누엘은 다시 세상 끝날까지로,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이 성취되는 그날까지를 바라본다. 이로 보건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 <2024 송구영신예배> 역시 임마누엘의 은혜와 영성 안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임마누엘의 영성
주의 징조(사7.14): 임마누엘 예언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 임마누엘 성취1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2-23)
구속(십자가): 복음서 – 교회 - 요한계시록: 임마누엘 성취2
그가 오셔서 한 일이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 “다 이루었다!”(요19.30)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바로 이 세상 끝날 날까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그러니까 임마누엘하리라 하셨고(구약), 그 약속의 성취로 그리스도가 임마누엘로 오셨고(신약), 그가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마1.21b)을 ‘다 이루었다!’ 하셨고, 동시에 그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 하셨다(마28.20b).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시다.
이처럼 임마누엘 안에 살아가는 오늘 역시 임마누엘 안에서다. 이 임마누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삶의 여정을 이사야 6장 1-5절에서 살펴보자.
이미 임마누엘과 아직 임마누엘, 그 사이
이사야 6.1-5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왕조의 뒤를 잇는 유다의 다섯 번째 왕 웃시야 왕의 때다. 그런데 유다가 심상치 않다. 하나님은 유다 나라와 함께 하신다. 그러나 정작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였다. 다윗언약이 있고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선지자 이사야가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유다의 형편은 참담하다.
∎이사야 선지자(1.1) – 웃시야(52) → 요담(16) → 아하스(16) → 히스기야(29)
∎이사야
∙1장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1.2)
∙6장 –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6.1a)
∎웃시야 – 역대하 26.1-23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10)
자, 웃시야가 하나님을 구하는 형통한 날에는 블레셋과 암몬을 지배했다(6-8). 하지만 강성해지자 교만하여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하여 제사장 행세를 하고 만다. 그 결과 문둥병에 걸려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지냈다(16-23).
설상가상으로 유다는 국상(國喪)을 치르면서, 그러는 중에 하나님은 임마누엘이시지만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범죄했을 때 그때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이처럼 온 나라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났을 때(A), 그러면 이것으로 끝인가. 이것이 이사야 6장이 위치하는 절묘함이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6.1a, A)
→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6.1a, B)
[1] - ‘내가 본즉’
이사야로서는 ‘하나님을 보았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하셔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하신 것이 선행된 시간이다. 이처럼 어둠과 고난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은 하나님이 임하신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사야는 이 일이 시작된 것을 본 것이다. 무너진 유다의 소망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유다는 영적 어둠에 무너져 있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신다.
*유다는 ‘천지’(1.2)가 증인이 된 죄악 가운데 희망마져 사라진 상태이지만 하나님은 찾아오신다.
*아담은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타락했으나 하나님은 에덴동산으로 아담을 찾아가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그에게 당신을 나타내신다.
*가인과 그의 예배(제물)은 받지 않으셨으나 그를 찾아가셔서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b) 하셨고,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도 하나님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으냐?’(창4.9a)라고 하시며 가인을 찾아오신다.
*사울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9.4)라고 하시며 사울을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이사야가 목회하는 유다에, 아담과 가인과 사울에게, 이들 모두가 다 한결같이 하나님이 사랑과 자비와 은혜와 긍휼로 찾아오실 그 아무런 자격과 공로와 선행과 행함이 없을 때에, 오히려 영적으로 무너진 침체와 심판의 대상일 수 밖에 없을 때 저들을, 오늘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내가 본즉’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로마서 5장 6-11절를 통해 이처럼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려준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것이 임마누엘의 영성이다. 우리는 악하여 죄악의 길을 따라 심판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망과 죽음의 상태에 있는 우리의 눈을 여신다: ‘내가 본즉’ 그리하여 그런 저주의 상태에 있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그 순간에도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가를 보이신다.
[2] -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우리의 소망은 하늘 보좌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자신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의 행위로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인간이 더럽힌 자신을 스스로 깨끗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이사야 6장이 펼져지는 순간 이사야는 피조물의 자리에 있음이 드러날 뿐이다. 그는 무너진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는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그런 존재가 아니다. 마침내 피조물 이사야과 거룩한 하나님이 분리된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보좌에 앉으신 주님만이 보여지고 있을 뿐이다.
어찌보면 임마누엘의 은혜는 ‘인간의 소망없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롬5.8a)다: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세상이 어두울수록 그 때에 빛나는 별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그렇다. 하나님은 그때에도 죄인은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당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렇게 임하셔서 품으시고, 안으시고, 내 손 잡고 동행해 주신 한 해를 보냈다. 그러면 오는 2025년 한 해도 동일하신 우리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