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구원의 길을 준비하라!(눅 1.57-80)

20241215(양무리교회)

 

 

 

주의 구원의 길을 준비하라!

Luke. 1.57-80

 

 

    본문 관찰

 

    요한의 출생(57-66)

    사가랴의 예언(67-79)

    요한의 성장(80)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되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로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11,13,17)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66b)

이는 세례 요한이 태어나는 출생의 비밀을 듣고, 알고, 본 사람들이 다 마음에 둔 고백이다. 요한은 이처럼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세상의 기대와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수태고지처럼 태어나고(57-66), 이어 요한의 사명과 소명이 예언 형식을 따라 전달된다. 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67)을 하는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을 통해서다.

 

 

요한의 출생(56-66):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요한의 출생 예고(1.11-18,36)가 성취된다. 이는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58)는 일이 되었다. 약속대로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기로 순종하자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64; 20 참조)게 된다. 예수님의 전령인 요한의 출생 전후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모두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된다(66):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그렇다면 이웃과 친족들은 왜 이처럼 말했을까: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66b) 따라서 이 말은 의문(불신앙)이 아니라 117절 말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자 믿음의 고백이다. 그러니까 지금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는 뜻이다.

 

 

사가랴의 예언(67-79)

 

수태고지부터 출생까지 거의 1년 동안이나 말을 못하는 자로써 자신을 실물 증인으로 삼아야 했을 사가랴의 고통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20). 아마도 사가랴는 이 긴 시간을 보내며 태어날 아들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구약이 예언하고 기다리는 메시야(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보냈을 것이다(68-70).

이 긴 언어장애가 끝이 난 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67) 토해내는 하늘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하지만 이 예언은 아들을 얻은 기쁨보다는 그가 감당해야 할 사명과 소명이 드러나면서 아버지로서의 아픔과 탄식 또한 감당하기에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76-79). 그럼에도 아버지 사가랴는 천사가 전해 준 누가복음 117절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살아가는 아들 요한이 되기를 선포한다.

요한이 태어난 것은 불임이라는 가정사의 아픔(수치)을 넘어서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1.7) 아버지 사가랴의 통찰은 그러면 무엇인가? 단지 한 아들이 태어나 제사장의 뒤를 잇는 차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가랴의 아들 요한이 태어나는 일은 메사야가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속량하사 원수 사탄에게서 구원하시리라는 일을 알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사이렌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까지다(68-71):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계속되는 아버지 사가랴의 통찰이다. 요한은 또한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을 알게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돋는 해’(78)이신 예수 그리스도(메시야)가 오셔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79)는 일을 하실 것을 외치는 자의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요한은 후에 자신의 생애에서 이를 온 몸으로 이루어낸다.

무엇보다 요한은 구약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하고, 그리스도께서 확증하신 선지자 엘리야의 사명을 성취하는 자인 하나님의 종이다. 구약은 예언하고, 신약은 성취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되고 성취되는 일임을 선언하신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4.5-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17.11-13)

 

 

부스러기 묵상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66b)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80)

 

요한은 30세가 되어 세례 요한으로 등장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자로서의 일종의 예비자로서의 공생애가 시작되기까지 그는 빈 들’(광야)에 홀로 지냈다. 출생 이후부터 30세까지라는 비교적 긴 시간에 대해 성경이 전해 주는 성장기 요한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곧 유대 앞에 등장하여 외치는 소리(메시지)를 들어보면 그는 준비된 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천사가 전한 수태고지 하나 믿고 나이만 30이 된 사람으로 서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점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며 붙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는 아버지 사가랴로부터 전해 들은 출생의 비밀과 다르지 않게 자랐고 이를 성취한다. 이러기까지 흔들림 없이 30년을 살았고 준비했던 것이다. 그는 빈 들에서 준비된다. 화려한 왕궁도, 거룩한 성전도 아니다. 명문가의 자녀들이 거치는 일종의 성공 코스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는 빈 들에서 자신과 싸웠고, 결국 사람들이 광야로 찾아오도록 만들었다.

사실 엄밀히 보자면 그는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준비를 하며 당연히 성전 가까이에서 성전 뜰을 밟으면서 자랐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로부터 가장 멀고도 반대인 빈 들에서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 앞에 쓰실 때까지 출생 때의 화려함은 사라진 채 이미 예언된 사명을 이루기 위해 준비되는 소명자로 조금씩 세워지고 있었다. 그 준비하는 세월이 30년이다.

 

    *나는 교회, 가정, 자녀, 일터에서...

       -무엇을 준비하는가?

       -어떻게 준비하는가?

 

 

 

 

 

  • *이 본문(눅1.57-80)은 2024년 12월 15일 양무리교회에서 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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