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복음의 빛을 비출 때 드러나는 3가지 얼굴들(행 17.15-34)

20240707(양무리교회)

 

 

  

복음의 빛을 비출 때 드러나는 3가지 얼굴들

Acts. 17.15-34

 

  

    본문 관찰

 

    베뢰아 320km 아덴(15)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14-21) - 선교정탐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2-31) - 아덴설교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32-34) - 반응(응답)

 

  

아덴(아테네)에서의 설교

 

마침내 복음은 그리스(Greece) 아테네까지 전파되었다.

아덴은 고대 문화와 문명을 선도했던 명성과 역사의 흔적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의 눈에는 다 하나님 없는 우상의 흔적들이었다(16). 이것은 정확한 통찰이다. 바울은 아덴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이곳에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는다. 아덴이라는 숲에 하나님이 부재(不在) 중일 때 거기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소리들이 난무하는지를 정확하게 통찰해 낸다. 그런 후에 바울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증거한다. 아덴이라는 거대한 숲에도 역시 주인으로 계셔야 하는,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며 통치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15-21) - 선교정탐

 

    “마음에 격분하여 변론하니 쟁론할새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이방 신(異方神)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베뢰아에서 쫓겨나다시피 무려 320km를 건너온 아덴(15), 그러니까 그리스 아테네다. 과연 고대의 찬란한 역사를 품은 그리스 아테네는 바울과 그가 전하는 복음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도시는 우상들로 가득하고(16),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철학자들은 이런 어리석은 말쟁이를 봤나!”라고 말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많은 신들 가운데 단지 새로운 또 하나의 가르침 정도로 취급하며 빈정거리고(18-20), 그러니까 아덴은 이처럼 보다 새로운 것들만을 기웃거리는 분위기다(21). 이에 바울은 회당과 장터(거리, 광장)에서 저들과 끊임없이 변론한다(17).

하지만 바울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16b). 왜 그런가: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영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할 수 있을까.’ 회당이 있고, 경건한 이방인들이 있어도 아덴은 영적으로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마치 현대 종교다원주의를 보는 것 같은, 결국 하나님을 많은 신()들 가운데 새롭게 등장하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취급하려고 할 뿐이다. 과연 바울은 이처럼 영적인 잠을 자고 있는 아덴(아테네)을 무엇으로,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앞에 세울 것인가.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2-31) - 아덴설교

 

MESSAGE 성경(Eugene H. Peterson, 1932-2018)

22b-23 내가 보니 아테네 시민 여러분은 종교를 진지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며칠 전 이곳에 도착했는데 오가면서 발견한 그 모든 신당들에 놀랐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THE UNKNOWN GOD’)라고 새겨진 신당도 있더군요. 내가 여기 온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 신을 여러분에게 소개하여 여러분이 대상을 분명히 알고 예배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24-29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주문 제작한 신당에 사시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을 건사하지 못해 옆에서 시중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신 분도 아닙니다. 그분이 피조물을 만드셨지 피조물이 그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무()에서 출발해 온 인류를 지으셨고 이 땅을 살 만한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넉넉한 시간과 살 만한 공간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둠 속에서 더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분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숨바꼭질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입니다. 그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시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우리는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라고 잘 말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라면 우리가 석공을 고용해서 돌을 깎아 우리를 위한 신을 만들겠다는 것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생각입니까?

 30-31 여러분이 아직 잘 모를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때가 지났습니다. 알지 못하던 그 신이 여러분에게 알려졌고 이제 그분은 여러분에게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온 인류를 심판하시고 모든 것을 바르게 할 날을 정하셨습니다. 이미 심판자를 지명하시고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에서 살리셔서 모든 사람 앞에 확증하셨습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을 칭찬해 주는 것으로 시작하면서(22b) 저들의 영적 무지에 대해서 슬쩍 꼬집는다(23). 그리고 대부분의 설교를 [하나님]에 집중한다(24-29). 그런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한다(30-31).

, 이를 좀 더 생각해 보자. 바울은 온갖 잡신들로 가득한 아덴이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고 곧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한다(24- ).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THE UNKNOWN GOD’, 23a)가 아니라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에게 예배해야 함을 선포한다. 그는 많은 신들 가운데 한 분으로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은 창조주이심을 전한다. 하지만 아덴은 신들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들이 드리는 것을 받음으로써 유지되고 살아가는 가짜 신들로 가득하다(24b-25a). 그렇다면 이들에게 신이란 인간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조신(人造神)이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나, 동시에 사람에 의해 섬김을 받을 때만이 신인 셈이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그를 섬긴다. 그러면서 만든 신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덴이 만들어 섬기는 신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신이신가. 하나님은 세상 만민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25b).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의 잡다한 신들과 다르다.

한편 하나님은 창조 이후에는 우주의 질서에 모든 것을 맡겨 놓으시고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 쉬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민족과 나라와 땅을 미리 정해주셨다(26). 중요한 것은 그리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셨다(27a).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신다(27b).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그분을 곁에 두고서도 인조신(人造神)을 만들어 섬기고 경배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신성모독(神聖冒瀆)이 아닌가. 바울은 지금 이런 죄악을 버리라 권한다(29). 그것은 우리 인간이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28a). 아덴의 어떤 시인도 우리도 그의 자녀라”(28b)고 하였음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나님 이야기에 불을 당긴다.

그러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였거니와”(30a)에 들어있는 복음의 능력이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아덴의 사람들 역시 무지했던 때를 살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는 하나님을 알았고, 복음을 들었고, 그래서 영적 무지로부터, 그러니까 인조신(人造神)으로부터 창조주 하나님께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지난 모든 무지와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죄악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회개하라!’ 하셨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30b) 그렇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바울은 여기서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선포한다(31a).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라.”(31b) 그렇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올 때다. 아덴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지만 바울은 지금 아는 것을 예배하고 섬기고 있다. 이러한 은총에로의 부르심 앞으로 나아오기 위해서는 회개라는 통로 앞으로 나아와야만 한다.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32-34) - 반응(응답)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 하여 믿으니 .”

 

바울의 아레오바고 법정에 모인 아덴 사람들(22a)에게 복음을 전했다: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3b) 핵심은 요약하면 이렇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메시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하나님은 이 죽은 자의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심판자로 모든 사람 앞에 확증하셨다.’ , 그렇다면 이제 이 청중들은 바울의 구원의 복음 설교(22b-31)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1] 첫 번째 얼굴(반응)은 히히덕거리며 또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다(32a): “바울을 비웃고 조롱하며 떠나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Message). 보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이렇게 살아간다. 이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 그리고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에 노예가 된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2.8). 주님과 진리를 좇아 사는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흔히 발견된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죄악의 도시 소돔 이 곳을 멸하시려”(13)는 계획을 롯에게 알리시면서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12)는 기회가 예고된다. 이에 따라, 롯이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때도 지금과 같은 반응이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4)

 

[2] 두 번째 얼굴(색깔)은 결단을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이다(32b): “‘다시 들어 봅시다. 우리는 더 듣고 싶소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Message) 첫 번 사람들보다는 약간 진일보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간 이후는 내 시간이 아니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도 아니다. 아무 대책 없이 그냥 내일로 미루는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가 올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한 부자 비유>(13-21), 밭에 소출이 풍성하자 심중에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곡식을 쌓아 두고 즐거워 하리라 한 부자가 나온다. 이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0)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시간에 하나님이 없는 자에게는 내일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세 번째 얼굴(모습)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은 몇 안 되는, -“몇 사람이 믿으니”- 소수의 사람들이다(34a): “그날 그 자리에서 확신이 생겨 바울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Message) 이처럼 척박한 아덴에서 놀랍게도 아레오바고 관원(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복음 앞에 믿음으로 선다. 이들은 전심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로서 마침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조신(人造神)들의 도시 아덴 앞에 선다. 이것이 복음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18a,21-24)

 

마치 온 동네(가족)가 다 다른 종교를 따르는 마을(가족)인데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헌신이었을 것 같다. 이들은 오늘(현재, 이 땅/현세) 편하자고 내일(미래, 저 땅/내세)의 불편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을 더하시는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이처럼 복음의 빛이 내게 비추이고 있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은 지금도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구원 받는 무리를 더 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총과 놀라운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설교를 사용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 아덴의 청중들과는 처음부터 빈정거림으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18-21), 그러나 그럼에도 바울은 결코 설교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오직 할 일,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도시와 청중을 파악한 만큼 그는 아덴이 들어야 할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바로 그 복음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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